“내면의 힘 키워 기쁘게 아이들을 만나도록 돕는다”
인간의 본질은 부족함 아니라 온전함
교육의 본질은 온전함 일깨우는 사랑
교육자는 존재에 다가가는 ‘존재 코치’
패러다임 전환해 아이와 교사 살려야
“너무 흔하고 나도 늘 겪는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파장이 커서 놀랐어요.”
“우리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어요.”
“내일이 개학이라 마음에 돌덩이가 놓여진 거 같이 무거워요.”
“학교에 출근할 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학생이 있어요.”
“마음이 너무 아픈데 뭘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난 11일 저녁 7시 온라인으로 만난 25명의 교사들은 지난 한 달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면서 모임을 시작했다. 그들의 안부는 모두 최근 벌어진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이들은 ‘버츄코칭리더 교사성장학교’ 모임에 소속된 현직 교사들이었다. 이 학교를 이끄는 권영애(56) 사람앤사랑연구소 소장은 교사들의 불안과 두려움에 공감하면서 모임을 시작했다.
■ ‘우주 최고 선생님’의 교육 비결은 미덕 교육
지난 2018년 문을 연 버츄코칭리더 교사성장학교는 1년간의 온·오프 만남을 통해 교사의 마음 안의 두려움 정체성을 알아차리고, 잃어버린 내면의 힘, 사랑 정체성 등을 일깨워 기쁘게 아이들을 만나러 가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교실을 바꾸는 데는 그 어떤 외부 방법도 교사의 내면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권영애 소장의 체험에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명퇴한 그는 ‘아이들은 어디에서 성장할까’에 대한 답을 지식, 노하우 등 외부에서 찾고자 심리학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교실에 적용해 보았지만 20년이나 실패감은 지속되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복도에서 공놀이 해도 돼요?”고 물었다. 점심시간에도 인터넷강의를 들으며 교육에 대한 공부에 몰입해 있던 그가 허락을 했고, 다른 아이들이 복도에서 금지된 공놀이를 하는 이 아이를 끌고 왔다. 자신이 공부에 몰입하느라 아이에게 공놀이를 허락했다는 것도 잊은 그는 “내가 언제 공놀이를 허락했냐”고 아이를 꾸중했다. 아이는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가 집으로 갔고, 아이 부모의 민원으로 교실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때부터 외부의 교육적 방법을 연구하고 시도하는 걸 중단했어요. 오직 아이들과의 존재함에 집중하는 1년을 보내기로 하고 따뜻한 눈빛, 손길,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의 변화에 울었습니다. 그 기적이 10여년 이어졌어요. 교육은 외부 방법이 아닌 교사 내면에서 나오는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걸 20년의 무수한 실패 끝에 깨달은 거예요.”
이같은 깨달음에 우연히 만나게 된 ‘버츄프로젝트’는 그의 교육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버츄프로젝트는 미국의 임상심리치료사가 개발한 인성 코칭프로그램으로 미국 전역의 교실에서 변화를 일으킨 뒤 유엔(UN)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아이들을 내면에 이미 모든 버츄(virtue), 즉 미덕을 갖춘 존재로 바라보며, 그 미덕들을 스스로 깨울 수 있게 안내하는 코칭 프로세스이다. 핵심은 아이들을 부족한 존재가 아닌 미덕을 이미 가진 온전한 존재로 본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떠들지 마!”라는 말 대신 “ 네 안에는 경청의 미덕이 있어!”라고 할 때 아이들은 분노 행동보다 존중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실천한 미덕 행동은 격려해주고, 잘못했을 때는 다시 미덕을 깨울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다. 아이들의 스스로 자기를 바라보는 정체성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부족한 아이, 결핍을 메꾸어야 하는 ‘작은 나’에서, 이미 사랑을 가진, 미덕을 가지고 있는 ‘큰 나’로 전환되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욕설과 폭력, 왕따가 사라졌다. 반에서 가장 약한 아이를 서로 돕기 시작하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교실 문화로 바뀌었다. 학년 말에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우주 최고 선생님상’을 주었다.
그는 이런 기적이 혹시나 ‘우연의 운’인지 궁금해서 다음해에는 동료 교사들이 맡기 꺼려하는 유명한 ‘문제아’도 자청해서 맡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동료 교사들이 대체 무슨 비결이 있는지 궁금해했고, 그 경험을 책 ‘그 아이만의 단 한사람’으로 펴내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방송 출연과 강연 요청이 줄을 이었다. 그의 강의를 들은 다른 교사들도 교실의 기적을 체험했다. 그는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 앞에 명퇴를 결정하고, 버츄코칭리더 교사성장학교를 열었다.
■ 어린 생명 살리는 교직의 위대함 일깨워야
많은 교사들이 학부모 민원, 학생 폭력과 폭언 등을 겪으며 잃어버린 교사의 내면의 힘, 사랑 정체성을 찾고 싶다고 이곳에 온다. 학교폭력 신고가 너무 자주 일어나 거의 매일 수시로 학교 앞에 와 있는 경찰차, 선생님에게 욕설과 음란행위를 하고 그걸 재밌다고 깔깔거리는 반 아이들, 사사건건 ‘아동학대’라며 학생들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학부모, 싸우는 두 아이를 뜯어말리자 선생님을 때리는 아이들, 밤이고 주말이고 쉬지 않고 울려대는 학부모의 민원 전화로 생긴 전화 벨 소리 공포증…. 이곳을 찾은 교사들의 사연들이다.
권영애 소장도 예전 교사 시절 학폭 담당교사를 맡았을 때, 어두운 동굴로 끌려 들어가듯 출근했고, 학교를 나설 때면 파김치가 되었다. 당시 그의 에너지는 동굴 안에 있는 촛불처럼 바람이 불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는 최근의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생활지도가 명백한 사안도 학부모의 단순 민원만으로도 학교장에게 즉시 신고 의무를 부여했어요. 교사는 항변 기회조차 없이 즉시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되며, 교육청은 담임 업무 중단, 직위해제를 명해요. 교사는 학교장, 교육청의 보호조치 없이 홀로 2년 이상 무죄를 입증해야 해요. 이는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위배됩니다. 대부분의 교사가 무죄로 판명되지만, 그 시간 동안 교사는 아이들, 학부모, 동료, 학교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삶이 무너져요. 이는 사회적 타살입니다. 교사가 죽어가면, 교육도 함께 죽습니다.”
그는 특히 “교사의 정서와 아이의 정서가 만나지 않으면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선생님 짜증나요, 나에게 말 걸지 마요, 저리 가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도 아동학대로 입건될 수 있었다고 봐요.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기쁨, 직업적 소명을 가지고 교직을 택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현실 앞에 교사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진 느낌일 거예요. 점점 삶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어요.”
그는 교사로서 직업 소명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낸 질적연구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을 만큼, 교직은 다른 직업보다 소명감이 강한 직업으로 본다.
그는 지금의 교권 추락 사태에 대해서 “당연히 아동학대와 정서폭력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등 제도적 보완도 해야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교육자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부족한 존재로 보면 교육이란 부족한 걸 메꾸고 채우는 게 된다. 아이들을 몸-마음-영혼이 있는 온전한 존재로 보면 교육은 그 온전함을 일깨우는 것이고 교사는 그 온전함을 일깨우는 ‘존재 코치’가 된다. 존재는 존재에게 사랑으로 다가갈 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기존이 교육이 두려움에 기반한 교육이라면, 이는 사랑에 기반한 교육이다. 교육이 두려움에 기반하게 되면 각종 지식과 방법론에 목을 매게 된다. 교육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게 그의 간명하고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는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이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어린 생명입니다. 교직은 이렇게 어리고 귀한 생명들을 성장시키는 위대하고 존엄한 일이라는 걸 교사도 부모도 사회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도만 정비하는 것으로는 안 되고, 교직의 위대함을 일깨워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준 단 한사람이 있으면 그 힘으로 살아낼 수 있음을 많은 심리학적 연구 결과가 말합니다. 어렸을 적에 ‘그 선생님이 날 사랑해
줬지’ 그런 기억 하나 있으면 삶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런 체험을 줄 수 있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이에 따라 교사성장학교도 교사들을 ‘존재 코치’로 성장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교사 자신의 온전함을 일깨우고 자신의 내면에 충분히 가득차 있는 ‘사랑’의 미덕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다가감으로써 아이들의 얼어있는 마음을 녹이고 훌쩍 성장시키게 돕는다.
그는 최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교사들과 함께 이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책 ‘선생님의 해방일지’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 대해서 “평범한 교사들이 제도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해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는 종종 교사들로부터 “사회가 제대로 보상도 안 해주는데 왜 교사가 아이들을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교사는 ‘존재 코치’ 정체성으로 살 때, 가장 행복하고 그건 너무 자명하니까요. 사람은 두려움을 넘어 사랑에서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는 존재 코치이고, 결국은 선생님도 그 길을 가게 되실 것”이라고.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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