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인이 문 잠금 ‘깜빡’···세상구경 나왔다 하늘로 간 ‘사순이’
14일 오전 8시12분쯤 경북 고령군의 한 민간목장 인근 계곡 풀숲. 20살로 추정되는 고령의 암사자 ‘사순이’를 수색당국이 발견했다. 이날 사순이가 우리를 탈출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전 7시24분쯤. 우리 밖을 나온 사순이는 목장과 4m 가량 떨어진 숲속에 가만히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0여분 뒤 엽사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좁은 우리를 떠나 1시간여 가량 세상 구경을 마친 사순이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사순이 포획에 동원됐던 한 소방대원은 “(사순이가)마지막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소방대원은 “사살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며 “인명피해 우려로 사살 결정이 내려졌지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포획에 나선 한 경찰관은 사순이가 더위를 피해 인근 계곡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사순이의 우리는 햇볕을 피할 곳이 없었는데, 마침 열린 문을 통해 시원한 그늘을 찾아간 것 같다는 추측이다. 사순이는 전날 목장 관리인이 사료를 준 후 실수로 잠그지 않은 우리 뒤쪽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법상 사자와 같은 맹수의 사육장은 방사장과 합해 한 마리당 14㎡ 면적과 2.5m 높이의 펜스만 갖추면 된다.
경북 고령군 한 민간목장에서 키우던 암사자가 우리를 탈출했다가 1시간여 만에 사살됐다. 고령군과 성주군은 재난 문자를 통해 사자 탈출 소식을 알리는 등 마을에서는 크고 작은 소동이 빚어졌다. 특히 목장과 직선거리로 300m에 있는 야영장에서는 70여명이 마을회관으로 긴급대피했다.
이날 대구에서 왔다는 오세훈씨(42)는 “이른 아침이라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마을로 대피했다”며 “재난문자가 울리길래 처음엔 불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배우진군(12)도 “사자가 나타났다니 꿈 같았다”며 “무섭기도 했지만 사자가 총에 맞고 죽었다고 들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캠핑장 대표인 유우석씨는 “목장에서 사자를 키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며 “매년 관계자가 나와서 검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탈출할 줄을 몰랐다”고 말했다. 마을주민인 정순이 할머니(85)도 “오래 전부터 사자가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라며 “약초를 따러 산에 올라가는데 (사자가) 울면 온 골짜기가 들썩들썩했다”고 말했다.
사순이는 2008년 11월 경북 봉화군에서 고령군으로 옮겨 사육하겠다고 대구지방환경청에 신고된 개체다. 대구환경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멸종위기 동물은 동물원 등 전시를 목적으로만 사육할 수 있다”며 “(사순이는) 현행법 개정 이전에 사육된 사례로 해당법 적용을 받지 않아 민간에서 기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사자는 멸종위기 2급 동물로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식 통관 절차를 거쳐야 사육할 수 있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사순이가 언제 어디서 수입이 됐는지, 이전 기록 등에 관해서 확인하고 있다.
탈출 1시간여만에 사살된 것을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좁은 우리에서 평생을 살았던 사순이에 대한 동정여론도 일고 있다. 포획이 아닌 사살이 적절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사순이 관련 기사에는 ‘충분히 포획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마취총 두고 왜 사살하느냐’ ‘평생 갇혀 살다가 총 맞고 죽게 돼 불쌍하다’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비극’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경찰은 소방과 고령군 관계자 등이 협의해 사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마취총 사용도 고려됐지만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탈출한 암사자가 나무 뒤쪽에 있어 마취총이 오발 날 가능성도 있었다”며 “마취총에 맞더라도 바로 쓰러지는 것도 아니어서 사자가 도주했을 경우 민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대구 달성공원에서 우리를 탈출한 침팬지에게는 마취총을 사용했다. 달성공원이 주택 밀집 지역과 가깝긴 하지만 동물원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사살이 아닌 마취총 사용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소방대원이 마취총을 발사해 침팬지 포획에 성공했지만 이 침팬지는 마취 후 동물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던 중 기도가 막혀 숨졌다.
목장 주인인 강모씨(50대)는 사자를 키우고 싶어서 키운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강씨는 지난해 8월 목장을 인수하면서 사순이도 어쩔 수 없이 사육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맹수인 데다 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서 환경청에 문의했는데 인수하거나 처리하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며 “동물원에도 의뢰했지만, 맹수 특성상 서열 다툼이 있을 수 있다며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사순이와 함께 사육된 수사자는 강씨가 목장을 인수하기 전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관리소홀 등으로 목장주를 처벌할 규정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