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도 이준석도 언급한 ‘文 정부 7년차’…정치권의 ‘네 탓’이 낳은 씁쓸한 표현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SNS에서 “집권 7년차… 갈수록 힘에 부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우리가 문재인 정부보다 이게 낫습니다’ 광고해도 모자랄 판”
전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의힘의 날 세우기와 이에 맞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비판 논평 등이 ‘문재인 정부 n년차’라는 씁쓸한 표현까지 낳고 말았다.
여당의 전 정권 비난과 이를 받아치는 민주당 대응이 맞물려 탄생시킨 셈인데, 정치권의 ‘네 탓’을 보는 국민들만 더욱 지쳐가는 분위기다.
여러 비판과 논란 속 마침표를 찍은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둘러싸고 지속된 여야의 날선 공방이 해당 표현의 직접적인 탄생 배경으로 지목된다.
잼버리 운영 미숙 논란이 불거진 이달 초 대통령실 관계자가 한 매체 통화에서 “전 정부에서 5년 동안 준비한 것”이라고 말한 게 논쟁의 시작점으로 보인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4일 서면브리핑에서 해당 보도 내용을 두고 “윤석열 정부의 남 탓은 이제 지겨울 지경”이라며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남 탓을 언제까지 하려고 그러냐”고 따져 물었다.
강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져야 할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 말라”며 “권력을 누리기만 하고 책임은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행태는 국민을 절망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는 “지금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제적 망신거리로 전락한 잼버리 대회를 책임 있게 수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부대변인은 5일 논평에서 “새만금 잼버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수석비서관급 회의에서 직접 챙길 만큼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행사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5년간 행사 준비의 틀을 깨지 않은 채,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전북지사를 중심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정부는 행정·재정적 지원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잼버리를 자신의 치적 알리기에 적극 활용했던 전북도 전현직 지사는 대체 무엇을 하였나”라고 물었다.
아울러 “이러한 와중에도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와 소속당 전현직 전북지사의 무책임한 작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는 등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를 언급한 국민의힘의 공세는 “대회가 끝난 후라도 관계 기관은 문재인 정권 5년간 이번 세계 대회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고,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은 어떻게 지출했는지 철저히 검증해주길 바란다” 등 메시지에서 계속됐다.
보다 못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잼버리는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국제 행사”라며 “남 탓, 전임 정부 탓 한다고 해결이 안 된다”고 맹비난했다.
같은 당 정청래 최고위원도 “잼버리가 성공적이었다면 문재인 정부 덕분이라고 했겠느냐”며 “잘되면 내 공, 못 되면 남 탓 좀 그만하라”고 국민의힘을 겨냥해 쏘아붙였다.
서은숙 최고위원도 “윤석열 정권의 ‘도깨비 방망이’는 전 정권 탓이냐, 거의 병적인 수준”이라면서 “정권 이양 1년 3개월이 되고도 전 정권 탓을 할 거면 뭐 하러 집권에 나섰냐”고 일침을 가하기까지 했다.
이튿날인 8일 국민의힘은 잼버리 부실 준비 논란 관련, 예산 집행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 5년 임기에 걸쳐 대회를 준비해 왔다는 점과 집행위원장과 조직위원회 구성원 대부분이 야권 인사라는 점 등을 염두에 두고 논란의 책임을 돌리는 포석으로 읽혔다.
김기현 대표는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민주당 내부에서조차도 잼버리 기반 시설은 문재인 정부가 역할을 해야 했다는 반성이 나오는데도 야당은 연일 현 정부를 공격하는 데만 혈안”이라며 “자해적 정치공세”라고 꼬집었다.
이철규 사무총장도 “문재인 정부 시절 100대 국정과제로 포함됐던 새만금 잼버리가 기후 위기, 준비 소홀로 위기를 맞고 있었지만 범정부적 대책 마련으로 차츰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의 발언은 전임 정권의 실정을 현 정부가 수습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거듭된 여당의 ‘문재인 정부’ 소환에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급기야 ‘문재인 정부 7년차’라는 표현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쓰기에 이르렀다.
탁 전 비서관은 제6호 태풍 ‘카눈’의 북상을 앞둔 지난 9일 SNS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비를 잘 해놨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특히 “유례없는 태풍이 오고 있다”며 이같이 적고는 “집권 7년차… 갈수록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탁 전 비서관이 ‘집권 7년차’라는 표현을 언급한 데는 잼버리 파행을 놓고 나온 국민의힘의 전 정부 비판 목소리를 겨냥한 것으로 비쳤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문재인 정부’ 소환에 대한 반응으로, 태풍 ‘카눈’으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여권이 또 전 정부를 탓하지 않겠냐는 탁 전 비서관 의중으로 보였다.
탁 전 비서관은 이전에도 SNS에서 “남 탓하는 사람들은 안 되는 일을 오랫동안 뭉개고 있기도 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을 때까지 꽁꽁 숨겨놓고 있다가 전임자나 다른 사람 탓으로 책임을 돌린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여권에서 제기된 문재인 정부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됐다.
같은 표현을 탁 전 비서관뿐만 아니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쓴 점도 주목된다.
이 전 대표는 14일 자신의 SNS에서 “‘잼버리는 전라도 탓’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게 전략인가본데”라며 “가장 무서운 것은 잼버리가 전라도 탓이라는 말을 반복할수록 비슷한 문제는 반복될 것이고, 정권은 4년 가까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이제 2년차인 만큼 ‘우리가 문재인 정부보다 이게 낫습니다’를 광고해도 모자랄 판에 흡사 문재인 정부 7년차를 연상하게 하는 화법으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현 정부의 전 정부 탓하기 행보 등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탁 전 비서관의 ‘문재인 정부가 대비를 잘 해놨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라던 말에 “매우 강한 형태의 조소”라면서,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 8년차, 9년차 식의 화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을 향한 비판이 나오자, “전라도 때문이라는 단순화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 탓이라는 것과 동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모든 문제의 핵심일지도 모른다”는 글을 추가로 올렸다.
그리고는 “A도 싫고 B도 싫다는 양비론은 극혐이지만, A가 아니면 꼭 B가 나쁜놈이어야 한다는 이분법은 더 황당한 양태”라고 덧붙였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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