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합의 지지부진에 “차라리 노딜이 낫다”

조미덥 기자 2023. 8. 1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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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달 3일 국회에서 열린 ‘선거제 개편 협의체 발족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개특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영배 의원, 민주당 송기헌 원내수석부대표, 김 의장, 국민의힘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 /성동훈 기자

“지금 같으면 차라리 노딜(아무것도 합의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해 온 정치개혁공동행동에서 활동하는 김준우 변호사는 14일 통화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여야는 법정시한을 4개월 넘기고도 내년 총선에 적용될 선거제도를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연초부터 거듭된 김진표 국회의장의 합의 종용도 효과가 없고, 예전처럼 선거를 1~2개월 앞두고 졸속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16일 시작되는 8월 임시국회에서도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치개혁특위 간사 간 2+2 회동에서 선거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지만, 국회 내에 합의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9월부터 연말까진 정기국회에서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예산안 논의,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청문회 등 굵직한 사안들이 진행되기 때문에 선거제가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공직선거법을 지키려면 총선 1년 전인 지난 4월10일까지 선거제도를 정했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이 기한을 지킨 적이 없다. 2020년 총선에서도 불과 선거일을 39일 앞두고서야 선거구가 획정돼 이미 공천한 지역구 후보를 새 선거구에 맞추는 촌극이 벌어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올 초부터 이번만큼은 법을 지키자며 선거제 합의에 의욕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전환을 언급해 불을 지폈다. 지난 총선에선 국민들의 정당투표 비례성을 높이는 준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했지만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도입하면서 도입 취지를 무너뜨린 터라 위성정당 재현을 막는 제도를 만들 필요성도 컸다. 김 의장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 의석을 늘리거나 대도시에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3가지 안을 만들어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다. 3월엔 국회 전원위원회를 열었는데 선거제에 대한 의원들의 백가쟁명을 벌려놓기만 하고 수습하지 못했다. 지난 5월 시민 500명이 참석한 공론조사에서는 시민들의 숙의 끝에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등의 결론이 나왔지만 여야의 이해관계가 달라 국회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김 의장은 6월 말, 7월15일, 7월 말 등 연거푸 새로운 시한을 제시하며 선거제 합의를 종용했지만 여야 지도부는 움직임이 없었다.

김 변호사가 ‘노딜이 낫다’고 말한 건 지금대로라면 준연동형 비례제에서 후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당에선 벌써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면 또 위성정당을 만들 수 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정치권에서 위성정당을 막기 위해 기존의 병립형 비례제로 돌아가고 권역별 비례 등 개혁 요소를 일부 도입하는 형태의 합의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야가 아무 합의도 하지 않는다면 이번에 준연동형 비례제가 오히려 확대 적용된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만 준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했는데 이번엔 47석 전체에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연동형이란 지역구에서 정당 득표율만큼의 의석을 채우지 못했을 때 비례대표에서 그만큼의 의석을 채워주는 제도로, 모자란 의석의 50%만 채워주는 형태가 준연동형이다.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과 상관없이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정당별로 의석을 나누는 형태로 2016년 총선까지 적용됐다.

김 변호사는 “시민들이 참여한 공론조사를 지금이라도 국회가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그것이 안된다면 다시 비례성을 약화시키는 병립형으로 복귀하는 것보단 아무 합의도 하지 않아 준연동제를 확대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도록 국민들이 거대 양당을 압박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선거제도 결정을 국회의원에게 맡기지 말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구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선거제도에 결정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데다 현재의 제도를 통해 당선된 현역 의원들이 제도를 개혁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국회 내에 독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대안을 낸 후 국회에서 표결을 통해 다수 안으로 최종 확정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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