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찾은 독립유공자 해외 후손들... ‘조상의 글’ 한글 배워
14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배움터.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에서 온 독립유공자 해외 후손 12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마이크를 든 강사는 “아름다운 한글 서체 쓰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했다. 국가보훈부가 오는 15일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들을 기리는 차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었다.
모니터 화면에 판본체와 궁체, 민체 등 다양한 서체로 쓰인 한글 단어가 띄워지자, 후손들 사이에선 “글씨가 마치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강사는 ‘꽃’ ‘춤’ 등의 단어를 소개하며, 서체에 따라 선의 두께나 모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서체를 쓰는 순서가 되자, 후손들은 처음 이용해보는 붓펜 글쓰기가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부는 숨을 참거나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단어를 써 내려갔다.
오는 15일 제78주년 8·15광복절을 맞아 해외에 있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날 미국, 중국, 러시아, 쿠바 등 7개국에서 온 31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국립한글박물관을 방문해 한글과 서예를 배웠다. 이들은 “아름다운 한글 서체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어 특별하고 뜻깊다”고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빈 엽서에 ‘꽃 피는 봄’ ‘반짝이는 별’ ‘사랑해요’ 문구를 작성했다. 자신이 쓴 엽서를 들어 보이던 카자흐스탄인 민 콘스탄틴(42)씨는 “대학 시절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글쓰기 연습을 했지만, 이렇게 예쁜 한글 서체가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는 1907년 원주로 진군한 일본군 토벌대를 격파하는 등 의병으로 강원, 충북, 경기 지역에서 왜병을 수차례 격파한 업적으로 1962년 대통령장을 받은 민긍호 지사의 증손자다.
러시아에서 온 샤라피예바 에벨리나(34)씨는 “붓펜으로 굵기를 조절해가며 글을 쓰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최대한 예쁘게 쓰려고 안간힘 썼다”며 “꽃문양이나 사람이 춤추는 자세가 녹아든 서체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른바 ‘조선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는 김경천 지사의 증손녀다. 김 지사는 1922년 연해주 스챤에서 고려혁명군의 동부사령관으로 대일항전을 전개한 업적으로 1998년 대통령장을 받았다.
후손들은 1시간가량 한글 서체 체험을 한 후, 박물관 전시장을 관람했다. 훈민정음해례본과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 28글자를 보며 발음 연습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후 3시쯤 서울 은평구 진관사로 자리를 옮겨 다도 체험을 할 예정이다.
앞서 이들은 지난 12일 국립서울현충원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고, 지난 13일엔 독립기념관, 대전현충원을 잇따라 방문해 참배했다. 미국에서 아들과 함께 왔다는 정선희(57)씨는 “대전현충원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는데, 절하고 인사드리면서 가슴이 뭉클했다”며 “아들도 숙연해졌는지 조용히 묘비를 어루만졌다”고 했다.
정씨는 독립유공자 오강표 지사의 손녀다. 오강표 지사는 1910년 8월 나라가 망하자 같은 해 10월 공주 명륜당에서 절명사(絶命詞)를 벽에 붙이고 강학루에서 자결해 순국했다. 1962년 독립장을 받은 오 지사는 현재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문화 경의 표하는 ‘구찌 문화의 달’ 참여 거장들, 기부 결정
- 국힘 “오늘 대입 논술시험…野, ‘범죄자 비호’ 집회로 입시 방해”
- 민주, 李선고에 “정적 죽이기 올인한 대통령, 동조한 정치판결”
- 틱톡, 방탄소년단 진 신곡 ‘Happy’ 발매 기념 #HappyProject 진행
- 코인투기 뺨치는 광풍 몰아친 인천 米豆취인소
- 걸리버의 옷장?… 뉴욕 한복판에 뜬 초대형 루이비통 트렁크, 알고 보니
- 4살 아이 머리 킥보드로 때린 유치원 교사, 다른 원생 11명도 폭행
- 비타민 사과의 9배, 매일 골드키위 먹고 몸에 생긴 변화
- 反明 전병헌 “이재명 끝나고 3총3김 경쟁력 달라져”
- [단독] 이기흥의 대한체육회, 올림픽 메달권 36명에 살모사 든 뱀탕을 보양식으로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