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밖 세상 그리웠나...결국 사살로 끝난 ‘사순이’의 슬픈 생전 영상

이혜진 기자 2023. 8. 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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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한 목장의 철창우리에서 길러지던 암사자의 모습. /네이버 카페

경북 고령군 한 사설 목장에서 키우던 암사자가 우리를 탈출했다가 1시간 만에 사살됐다. 이 사자는 지난해까지는 이 목장 근처 캠핑장 방문객들 사이에서 ‘명물’로 알려지는 등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주인이 소를 키우려 해당 목장을 인수하면서 ‘애물단지’ 신세가 된 암사자는 문이 열린 틈을 타 탈출했다가 결국 사살당하는 슬픈 결말을 맞았다.

14일 경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24분쯤 고령군 덕곡면의 한 목장에서 암사자 1마리가 우리를 탈출했다. 목장 주인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이 합동으로 수색한 끝에 탈출 1시간여만인 이날 오전 8시 34분쯤 목장 인근 4~5m 지점 숲 속에서 발견돼 사살됐다.

14일 경북 고령군의 한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1마리가 1시간10분만에 사살돼 포획됐다. 사진은 사살되기 직전 숲속에서 발견된 암사자.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찰은 전날 오후 7시쯤 A씨가 암사자에게 먹이를 준 뒤 우리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정확한 탈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A씨는 오전에 목장을 순찰하던 중 암사자 우리가 열린 것을 보고 급히 경찰에 신고했다.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사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20살 정도의 암사자는 근처 캠핑장 숙박객들 사이에서는 이 동네 명물로 알려졌다고 한다.

해당 목장에서 차로 2분 거리(600m) 가량 떨어진 고령의 ‘숲에안기다’ 캠핑장 숙박객들은 지난해까지 이 사자를 보러 해당 목장을 방문했다. 해당 캠핑장 방문 후기에는 목장에서 철창 우리에 갇힌 사자를 봤다는 경험담과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암사자가 철창 우리의 먹이구멍을 앞발로 수차례 긁는 모습. /네이버 카페
앞발로 먹이구멍을 계속 긁던 암사자가 결국 체념하고 자리에 앉는 모습. /네이버 카페

방문객들이 네이버 카페에 올린 영상을 보면, 부모와 함께 사자 우리를 방문한 아이들은 인증샷을 찍기도 하고, 사자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놀라 쳐다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사자가 무서운지 우리 가까이에는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지켜봤다.

한 블로그에 올라온 영상에서는 암사자를 보러온 방문객이 등을 보이자 내실에 숨어 있던 암사자가 마치 방문객에게 달려들 듯 후다닥 뛰어나왔고, 놀란 방문객이 관계자에게 “안전한 거 맞아요?”라고 묻기도 한다. 이어진 영상에서 암사자는 두 앞발로 우리에 달린 먹이 구멍을 수차례 긁는 등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 행동은 다른 방문객의 영상에서도 발견됐다. 박순석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는 “이는 관람객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어필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이처럼 야생 동물의 사냥 습성을 억압한 채 사육을 하게 되면 비정상적인 습성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이 캠핑장은 사자를 키우던 목장과는 이웃일 뿐, 특수한 관계는 없다고 한다. 캠핑장 관계자는 “과거 목장 관계자와 협의해 시간을 정해서 숙박객과 목장을 방문해 경치 구경도 하고, 사자도 봤다. 당시 목장 관리자는 ‘사자를 적법하게 키우고 있으며, 사자 우리와 건강 상태를 수시로 검사받고 있다’고 말했다”며 “지난해 가을쯤에 목장 관리하는 분이 바뀌면서 목장 방문이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14일 경북 고령군의 한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1마리가 1시간10분 만에 사살돼 포획됐다. 이날 소방 당국 등은 합동 수색을 하던 도중 탈출한 목장 인근 4~5m 지점 숲속에서 암사자를 발견했다. 수색에 투입된 엽사와 경찰, 소방 당국은 인명피해를 우려해 '사살 포획'하기로 협의하고 현장에서 사살해 유관기관에 인계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새 주인 암사자 처분 원했지만... 방법 없었다

사자는 멸종위기종으로, 시·군·구가 아닌 지방환경청 환경관리과에서 관리한다. 해당 사순이 국제멸종위기종으로 신고한 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육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자는 멸종위기 2급 동물이지만,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식 통관 절차를 거쳐 사육할 수 있다.

대구지방환경청에 따르면 2008년 강원도 주소지 소유자에게서 고령군 소유자에게 넘어오면서 지방청에 양도, 양수 신고가 됐고, 사육시설 설치 등록을 해 적법한 절차로 사육됐다. 언제 어디서 수입이 됐는지, 이전 기록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암사자가 있던 목장은 지난해 8월 새 주인이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22일 목장을 인계받았다는 목장주는 연합뉴스에 “소를 방목하며 키우려고 왔는데, 와보니 사자 2마리도 있었다. 인수하기 전에 수사자는 죽었다”며 “암사자는 평소 사람이 손을 대고 쓰다듬어도 될 정도로 유순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자를 키우고 싶어서 키운 게 아니다. 환경청에 사자 처리를 요청하며, 동물원에 기부나 대여하길 요청했으나 맹수 특성상 서열 다툼이 나면 동물원의 다른 사자가 죽는 등 우려로 다들 거부했다고 한다”며 “직전 주인도 처분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환경청 관계자는 ‘새 주인에게 인수하는데 절차상 문제가 없었나’ ‘새 주인으로부터 실제 사자 처리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정확한 내용을 파악 중에 있어서 명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다”고 했다.

박 겸임교수는 “아무리 적법하다고 할지라도, 동물과 관련해 보호·보존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고 인간의 욕심을 위해 동물을 소유하고 이용하는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이 이어질 것”이라며 “위험 상황에서 암사자를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당국의 대응을 비난해선 안 된다. 암사자를 소홀히 관리한 관리 주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이를 관리 감독할 의무가 있는 당국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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