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감독 “K디스토피아 세계, ‘악의 평범성’ 자연스럽게 나와”(콘크리트 유토피아)[MD인터뷰](종합)

곽명동 기자 2023. 8. 1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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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이 허물어지는 압도적 잿빛 드라마
“다양한 시선으로 인간 탐구하고 싶어”
엄태화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여름시장 ‘빅4’ 영화 가운데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은 가장 관심을 덜 받았다. ‘밀수’ 류승완, ‘비공식작전’ 김성훈, ‘더 문’ 김용화는 자타공인 흥행감독이었다. 그러나 엄 감독은 전작 ‘가려진 시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주목도가 떨어졌다.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4편 가운데 작품성과 완성도가 가장 높았다.

박찬욱 감독은 “이만큼 성숙되고, 잔재주, 기교, 멋 부리고 허세 없는, 정말 교과서적으로 정석대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상태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좋은 감독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한국인으로서 생긴다”고 극찬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 김숭늉 작가가 2014년에 내놓은 웹툰 '유쾌한 왕따' 2부인 '유쾌한 이웃'이 원작이다.

“2부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제작사에 말했어요. 1부는 학교 배경의 왕따 이야기이고, 2부는 주변 건물이 다 무너진 상태에서 자기 아파트에 들어가는 이야기였죠. 아파트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한국적인 디스토피아 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영화 제목은 박해천 작가의 동명의 책 제목에서 따왔다. 아파트가 주거인 동시에 자산이 되어 가는 과정을 역사, 문화,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 흥미롭게 담아낸 책이다. 영화 오프닝은 이 책의 내용이 1분안에 다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오프닝이 끝나면 모든 건물이 붕괴되고 황궁아파트만 건재한 가운데 과거의 비밀을 지닌 영탁(이병헌)이 주민 대표로 뽑힌다. 공무원 민성(박서준)과 전직 간호사 명화(박보영) 부부를 비롯한 각양각생의 입주민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선악의 경계는 무너지고, 극도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잿빛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

“‘악의 평범성’은 자연스럽게 나온 개념이죠. 이런 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탐구했어요. 점차 광기를 드러내는 민성을 비난할 수 없잖아요. 흑백으로 나뉘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바둑알도 일부러 넣었죠. 다양한 시선으로 인물을 보려고 했어요.”

최상급의 배우 연기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최상급이다. 이병헌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점차 악에 물들어가는 박서준, 발버둥치며 선을 지키려는 박보영 등의 연기가 긴장감을 높인다.

이병헌/롯데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얼굴 근육을 살짝만 바꿨는데도 영화의 텐션을 올려주는 명연기를 펼쳤죠. 박서준은 영탁처럼 튀는 인물이 아닌데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만족감을 줬어요. 박보영 배우도 입체적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어요.”

그는 이 영화의 장르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느 한 가지 장르로 규정짓기 힘든 작품이다.

“무조건 재미있게 만들자는 것이 연출의 제1원칙”

“연출의 제1원칙은 무조건 재미있어야한다는 것이었죠. 중간까지 블랙코미디처럼 피식거리고 웃으면서 보다가 그 이후부터 확 몰입하게 만들었어요. 현미경으로 자세하게 들여다보다가 후반부엔 화산처럼 터지는 엔딩으로 가자고 생각했고, 마지막엔 황궁 아파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로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기길 바랐어요.”

인물을 카메라에 담을 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와 ‘이키루’를 참고했다. 두 영화에서 인물들의 미장센은 너무 아름답게 잡혀있다고 설명했다. ‘빛의 설계’도 디테일하게 담았다. 초반부는 차갑고 버석버석한 블루와 회색으로 가다가 날씨가 풀려가면서 점점 레드로 바뀐다. 인물들 역시 시뻘건 석양 아래서 싸운다. 마지막은 따뜻한 옐로우 색조를 입혔다.

선사시대 느낌의 음악 원했다

음악은 또 하나의 성취다. 김해원 음악감독이 2년 동안 고생해 만들었다. 전작이 ‘소셜포비아’ ‘윤희에게’ ‘피의 연대기’였는데,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데 믿기지 않았다.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악을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능력에 끌렸다.

“김해원 음악감독 본인의 음악은 라디오헤드 느낌도 있고, 밥 딜런 느낌도 있을 정도로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어요. 아파트가 나올 땐 신디사이저와 드럼의 울림으로 7080 영광의 시대 느낌이 나오길 바랐죠.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순간엔 ‘봄의 소리’ 왈츠와 소프라노 조수미 노래 분위기를 원했고요. 전체적으로는 선사시대의 느낌을 원해서요. 뼈와 뼈가 부딪히는 느낌을 위해 타악기도 많이 썼고요.”

엄태화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그는 “영혼을 갈아 넣는 느낌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후반작업에 매달렸다. 사수였던 박찬욱 감독 역시 ‘헤어질 결심’ 후반작업에 끝까지 매달렸다며 제자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했다. 이제 결과는 관객의 것이다. 다행히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호평을 받았다. 엄 감독의 다음 작품은 무엇을까.

“아주 무서운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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