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이민자 혐오’ 부추기는 폴란드 집권당…이민자 수용 국민투표 추진

선명수 기자 2023. 8. 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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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10월15일 총선일에 국민투표 계획 발표
폭력·방화 영상 동원 ‘반이민 정서’ 띄우기
벨라루스발 ‘안보 위협’ 엮어 지지율 공략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벨라루스 국경지대에서의 안보 위협과 관련해 지난 3일(현지시간) 국경지역인 수바우키 회랑에서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회담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PA연합뉴스

폴란드 집권당인 우파 민족주의 성향의 법과정의당(PiS)이 유럽연합(EU)의 새 난민 협정에 따라 중동·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를 받아들일지를 두고 국민투표를 추진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피란민은 받아들이면서도 무슬림·비백인 이민자의 입국은 “폴란드의 정체성과 안전을 위협한다”며 거부해 비판을 받아온 PiS는 이번에도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투표 홍보 영상을 공개하며 ‘난민 문제’를 선거 이슈로 적극 띄우고 있다.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13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게시한 동영상에서 폴란드 총선이 열리는 오는 10월15일 미등록 이민자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예고했다. 그는 이 영상에서 “당신은 유럽의 관료주의가 부과한 강제 이주 체계에 따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수천명의 불법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지지합니까”라는 질문을 놓고 투표하게 된다고 밝혔다.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언급한 EU의 ‘신이민·난민 협정’은 27개 회원국이 인구 및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따라 난민 신청자를 일정 비율로 나눠 수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국가는 난민 1인당 2만유로(약 2800만원) 상당의 난민대책 기금을 EU에 내야 한다. 이는 유럽행을 원하는 난민 신청자들이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부 유럽 국가에 몰리며 수용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부담이 쏠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다. 반이민 정책을 펴온 극우 정부가 집권한 폴란드와 헝가리는 이 협정에 반대했다.

영상은 더 나아가 서유럽으로 추정되는 거리에서 발생한 폭동과 차량 방화 장면, 검은 옷을 입은 흑인 남성이 칼을 혀로 핥는 장면 등을 보여준다. 이어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PiS 대표가 등장해 “당신은 이런 일이 폴란드에서도 일어나길 원하는가? 여러분은 조국의 주인이기를 멈추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2015년 선거에서 이민 문제를 전면에 내걸어 집권에 성공한 PiS가 10월 총선을 앞두고 ‘반이민 정서’를 부추겨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PiS는 이민자 수용 문제 외에도 제1야당인 시민강령당(PO)을 겨냥한 국영기업 민영화 문제와 정년 연장을 묻는 국민투표 2건도 총선일에 함께 실시할 계획이다.

PiS는 이민자 문제와 엮어 안보 이슈도 적극 띄우고 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최근 폴란드와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로 거점을 옮긴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과 벨라루스를 통해 입국하는 미등록 이민자 문제를 부각, 폴란드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다며 반이민 여론을 키우고 있다. 벨라루스와 러시아가 자국에 아프리카·중동 출신 이민자들을 밀어 넣어 내부 혼란을 조장하는 ‘하이브리드 전쟁’ 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모라비에츠키와 PiS가 재집권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이민 문제 및 안보 이슈가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폴란드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체로 백인이자 기독교인인 우크라이나 피란민 100만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무슬림을 비롯해 다른 문화권의 이민자는 폴란드의 문화적 정체성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극우 정치인 카친스키가 이끄는 PiS는 최근 유럽 정가에 확산 중인 ‘극우 바람’의 중심에 있는 정당이다. 카친스키는 보수 가톨릭과 전통적 가치에 기반을 둔 사회로 폴란드를 개혁하겠다며 임신중지 전면 금지, 성소수자 차별 정책, 사법 개혁 등을 추진해 왔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공직자를 최장 10년간 퇴출하는 법안을 내놔 논란을 일으켰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PiS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조된 반러시아 정서를 등에 업고 PO 대표인 도날드 투스크 전 총리 등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려 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 법안을 도화선으로 지난 6월 수도 바르샤바에서는 집권당의 극우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주최 측 추산 50만명이 참여한 이 집회는 1989년 공산주의 정권 붕괴 이후 폴란드에서 열린 최대 규모 정치 집회였다.

지난 6월4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크라쿠프 광장에서 집권당의 극우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주최 측 추산 50만명이 참여한 이 집회는 1989년 폴란드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한 뒤 열린 최대 규모 정치 집회였다. EPA연합뉴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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