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에서도 한국 10년 내 최고”…국립심포니 예술감독 ‘예언’

임석규 2023. 8. 1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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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클래식 열풍]

차세대 지휘자 3명을 선발해 펼친 국립심포니의 ‘미니 지휘자 콩쿠르’에서 독일에서 활동 중인 지휘자 박근태(31)가 우승했다. 다비드 라일란트 국립심포니 예술감독이 박근태의 손동작을 교정하는 모습. 국립심포니 제공

“플루트 선생님, 15마디 트릴(떤꾸밈음) 더 크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근태·31)

“이 부분 한 번만 더 해보죠.” (김리라·30)“

“여기는 조금 더 강하게 부탁드릴게요.” (이해·31)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연습실. 포디엄에 오른 젊은 지휘자 3명이 국립심포니와 리허설을 진행했다. 미국과 독일을 오가며 지휘를 연마 중인 ‘차세대 기대주’들이다. 신청자 44명 가운데 꼼꼼한 영상 심사를 거쳐 선발됐다. 이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지휘 동작을 선보였다. 하얀 지휘봉을 휘저으며 양손을 분주히 움직였고, 눈을 치켜뜨거나 입술을 오므린 채 고개를 까닥이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사뭇 진지했는데, 실수가 나오면 웃음이 번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워크숍은 철저하게 ‘실전’ 위주였다. 곡목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과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곡의 전반적 흐름을 짚는 피아노 리허설과 오케스트라 리허설, ‘비디오 피드백’이 이어졌고, 다비드 라일란트 국립심포니 예술감독의 구체적인 조언과 세밀한 지도가 뒤따랐다. 템포를 조정하거나 팔과 손동작을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5일 동안(8~12일)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된 ‘속성 지휘 과외’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전해준 애정 어린 ‘익명의 메모’도 이들에겐 얻기 어려운 귀중한 자료였다.

윤한결(29)이 지난 6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주관하는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으면서 이번 지휘 워크숍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졌다. 윤한결은 2021년 제1회 국립심포니 지휘자 콩쿠르에서 2위를 했고, 국립심포니를 지휘한 적도 있다. 피아노, 현악기, 성악 분야와 달리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지휘자 콩쿠르에서도 한국의 젊은 지휘자들이 차츰 존재감을 알려가고 있다. 지휘자 이든(34)은 지난 21년 최고 권위의 프랑스 ‘브장송 콩쿠르’에서 ‘1위 없는 특별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번 워크숍에 참가한 지휘자 이해는 다음 달 브장송 콩쿠르 결선에 진출했다. 라일란트 감독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한국이 지휘 분야에서도 최고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휘자 김리라(30)가 국립심포니 지휘자 워크숍에서 리허설하는 모습. 국립심포니 제공

국립심포니의 ‘차세대 지휘자 발굴·육성 프로젝트’인 지휘자 워크숍은 올해로 두 번째. 다른 프로그램들과 달리 참가자를 ‘한국 국적자’로 제한한다. 국내 지휘자 양성이 핵심 목표이기 때문이다. 미하엘 베커 독일 뒤셀도르프 심포니 예술감독은 지휘 교습 외에 ‘무대 밖 비즈니스’도 전수했다. ‘게오르그 솔티 콩쿠르’ 등 유수 지휘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약해온 베커 감독과 접점을 넓히게 된 것도 국제 지휘 무대를 노리는 젊은 지휘자들에겐 ‘보이지 않는 수확’이다.

지휘의 세계엔 신비스러운 구석이 있다. 프리츠 라이너(1888~1963)는 손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거의 눈으로만 지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시카고 교향악단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토스카니니(1867~1957)는 엔비시(NBC) 교향악단이 무거운 소리를 내자 주머니에 있던 실크 손수건을 공중에 던졌다. 가볍게 내려앉는 손수건을 통해 그 의미를 알아챈 단원들은 대번에 주문대로 연주했다. 이처럼 지휘자의 미세한 표정의 변화나 손동작의 길이 등이 정말로 오케스트라의 음색을 바꾸는 걸까.

“손가락 관절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의 색깔이 확 달라져요.” (김리라) “지휘자가 왼손을 수평으로 길게 움직이면 활을 수평으로 켜는 현악기에서 훨씬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이 나와요.” (박근태) “이번에 비디오 피드백을 봤더니 그런 게 더 확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해) 일반인들이 지휘에 대해 품는 이런 의구심에 대해 차세대 지휘자 3명은 “그렇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하며 웃었다.

미국 볼티모어 심포니를 이끈 지휘자 마린 알솝에게 지휘를 배운 이해(31)는 다음 달 프랑스 브장송 지휘 콩쿠르 결선에 진출했다. 국립심포니 제공

라일란트 감독은 “3명이 각기 다른 개성을 지녔다”며 이들에게 △음악에 더욱 집중하고 △유기적 연결(프레이징)에 유의하며 △힘 조절에 힘쓸 것을 각별히 당부했다. “20년 전 제가 지휘를 공부할 때엔 하루 15분 포디움에 서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데 2000유로(약 291만원)나 들었어요. 이조차 1년에 한 번 해보기도 어려웠지요.” 그는 “젊은 지휘자들은 악보를 샅샅이 공부해도 막상 오케스트라 앞에 서면 세 마디 만에 깜짝 놀라 당황하게 된다”며 “지휘란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단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번처럼 직접 경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 워크숍은 일종의 ‘미니 지휘 콩쿠르’ 성격도 지녔다. 종합평가를 거쳐 우승은 박근태가 차지했다. 라일란트 감독은 “음악성과 지휘 테크닉 , 노련한 경험을 기준으로 우승자를 선정했다”며 “세명 모두 짧은 시간에 기적에 가까운 큰 발전을 이뤘다”고 평했다. 박근태는 “수준 높은 프로 오케스트라를 연주해볼 기회가 적었는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노이에 필하모니 베를린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해는 브장송 콩쿠르에 참석한 뒤 미국 뉴욕의 매네스 음대에서 지휘 공부를 이어간다. 김리라는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 지휘 석사 과정으로 복귀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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