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강대선 감독 별세…향년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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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고시절'(1972) 등을 만든 강대선 감독이 별세했다.
향년 89. 14일 영화계에 따르면, 강 감독은 이틀 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강 감독은 1950년대 초 잡지 '영화세계' 기자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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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최은희와 영화사 만들어 제작
1971년 '여고생의 첫사랑'으로 데뷔
'여고시절'(1972) 흥행 하이틴 영화 붐
1980년 군사정권 맞서다 고초 겪기도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여고시절'(1972) 등을 만든 강대선 감독이 별세했다. 향년 89. 14일 영화계에 따르면, 강 감독은 이틀 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강 감독은 1950년대 초 잡지 '영화세계' 기자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1960년대엔 기자 생활을 하며 인연을 맺은 신상옥 감독·배우 최은희 등과 함께 영화사 신필름을 설립해 기획실장·섭외부장 등을 맡으며 직접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이후 형인 강대창·강대진과 함께 삼영필름을 만들고 1971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여고생의 첫사랑'으로 연출가 활동을 시작한 강 감독은 이후 '여고시절'(1972) '판사부인'(1972) '용구와 용팔이'(1973) '지나간 여고시절'(1973) '바보 용칠이'(1975) 등 50여편을 연출했다. '여고시절'은 크게 성공해 당시 하이틴 영화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인은 198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자 영화인협회 인사들과 함께 영화법 개정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영화 검열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영화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 활동으로 정권 눈 밖에 나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강 감독이 위원장으로 있던 1986년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판사부인'으로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2009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 2010년엔 같은 시상식에서 영화발전공로상을 받았다.
빈소는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5일 오전 10시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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