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에선 안 터졌는데…롯데에서 마스크 벗고 4할 펄펄, 29세 좌타자 ‘정체성 찾기’[MD부산]
[마이데일리 = 부산 김진성 기자] “지명타자로 나가지만 간혹 외야도 나간다.”
좌타자 이정훈(29)에 대한 롯데 관계자의 설명이다. 휘문고, 경희대를 졸업하고 2017년 2차 10라운드 94순위로 KIA에 입단한 우투좌타 포수. 그러나 KIA 시절 거포 포수 유망주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이 무산됐다. 포수로서의 성장 및 발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내, 외부의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대신 이정훈의 타격 자질만큼은 상당했다. KIA도 이 부분에 주목해 이정훈을 지명했다. 전임 감독도 1군에서 이정훈의 타격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확실하게 자리잡지 못했다. 김종국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윈-나우를 강화하면서, 이정훈의 설 자리는 사라졌다.
그렇게 방출됐고, 올 시즌 단돈 4000만원에 롯데와 계약했다. 롯데 역시 KIA와 방향성은 같다. 이정훈에게 포수 훈련을 시키지 않고 외야수 전향을 준비시켰다. 그러나 1군에 올려 수비로 나가는 비중은 낮다. 대부분 지명타자로 나갔다.
래리 서튼 감독으로선 보수적인 기용을 하는 게 당연했다. 롯데 역시 1군에선 5강을 위해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정훈은 라인업에 강력한 옵션을 제공한다”라고 했다. 실제 3번, 5번, 심지어 4번 타자로도 기용했다.
실제 성적이 좋다. 19경기서 50타수 20안타 타율 0.400 1홈런 3타점 8득점 OPS 0.974로 펄펄 날았다. 지난주 롯데의 팀 타율이 0.326으로 리그 2위였고, OPS도 0.847로 역시 2위였다. 지난주 6경기서 23타수 10안타 타율 0.435 OPS 0.997을 찍은 이정훈의 지분이 상당히 컸다.
누구나 이 좋은 흐름을 오래 이어 가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이정훈이 앞으로 타격감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볼 필요는 있다는 서튼 감독의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과제 하나가 있다.
결국 수비 포지션이다. 29세로 더 이상 유망주는 아니지만, 1~2년 야구를 더 하고 그만둘 선수도 아니다. 당연히 자신의 확실한 포지션이 있어야 가치가 올라가고, 팀에서 활용가치도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지난 11~13일 부산 KIA전서 서튼 감독의 뚝심이 잘 드러났다. 3경기 연속 좌익수로 기용했다. 올 시즌 히트상품 윤동희가 최근 주춤하는 등 이정훈을 외야수로 기용할 환경도 만들어졌다.
역시 수비는 불안하다. 경험이 부족하니 당연했다. 그러나 롯데가 이정훈을 긴 호흡으로 기용하려면 겪어야 할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이걸 견디지 못하면 이정훈의 타격을 1군에서 활용하기가 어렵다. 수비를 병행해서인지 KIA와의 3연전서 11타수 2안타로 주춤하긴 했다. 그러나 수비 때문에 타격이 안 됐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서튼 감독은 외야수로서의 가능성을 봤다. 13일 경기를 앞두고 8회 2사 1,3루서 최형우의 좌중간 타구에 대한 수비를 평가했다. 쉬운 타구는 아니었으나 전문 외야수라면 처리 가능한 타구. “쉽지 않은 타구였다. 최선을 다해 따라갔다. 노력한 부분은 높게 살만하다”라고 했다.
몇 차례 실수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경험을 쌓고 더 좋아지는 과정을 밟으면 된다. 바꿔 말하면 서튼 감독으로선 이 정도는 인내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어차피 김민석, 윤동희 등 주축 외야수들이 있고, 베테랑 전준우도 간혹 수비를 본다. 이정훈의 비중을 조금씩 늘리는 건 좋은 선택이다. 현대야구에서 지명타자를 한 명이 독점하면, 장기레이스에서 유연한 라인업 운영이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 이정훈의 확실한 포지션은 있어야 한다. 롯데가 이정훈의 정체성을 찾는, 위대한 도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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