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돌아온다…“직장인 고단함 아닌 방학 같은 오케스트라” [인터뷰]
개·폐막식 책임지는 SAC페스티벌오케
단원 지상희, 조재복, 박예은 인터뷰
세계 유수 악단에서 활약하는 韓 연주자
자발적 열정으로 뭉친 젊은 오케스트라
“음악인들의 축제·여름방학 같은 만남”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일 년에 딱 한 번, 해마다 8월이면 모이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매일 같은 시간 출근, ‘칼퇴’를 열망하며 온종일 연습에 매진하면서도 직장 밖 음악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발적 이끌림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음악을 하는 것은 너무 좋지만, 항상 행복할 수는 없어요. 오케스트라의 단원도 직장인이니까요.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영감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배움의 시간이 돼요.” (지상희)
단 두 번의 공연을 위해 88명의 연주자들이 뭉쳤다.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8월 22~27일)의 ‘백미’인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 국내외 유수 악단에서 활동 중인 연주자들에게 이곳은 이름 그대로 ‘축제의 장’이다.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세 파트를 책임지는 지상희(33) 제2바이올린 오프닝 수석, 조재복(42) 더블베이스 수석, 박예은(34) 플루트 수석을 만났다. 첫 리허설도 하지 않은 세 사람 사이엔 새로운 만남의 설렘과 어색함이 적당히 공존했다.
■ “우리는 젊다”…젊음과 열정의 악단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여름날의 휴식’ 같은 악단이다. 무더위를 식혀주는 청량한 바람처럼 산뜻하고 싱그럽다.
오케스트라의 창단 멤버인 조재복은 이 악단의 색을 “젊음과 열정”이라고 말했다. 최연소 19세~최고령 63세까지, 지휘자부터 단원들까지 그 어떤 악단보다 평균 연령대가 낮다. 음악을 향한 마음도 ‘청춘’이다.
올해 축제의 개·폐막식을 책임질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5번과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협연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한다. 세계적 권위의 말코 지휘 콩쿠르 수상자인 안토니오 멘데스가 지휘를 맡았다. 리허설은 연주회 3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88명의 단원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모였기에 음악색도 천차만별이다.
지상희는 “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처음 본 사람들이 합을 맞추기에 조율하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다들 워낙 센스가 좋아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대다수 단원들이 베테랑 연주자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악단에 몸담은 프로들이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다.
“저마다 다른 오케스트라에 있다 보니, 첫 리허설 땐 단원마다 소리의 농도나 타이밍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도 해요. 그럼에도 다들 워낙 귀가 좋아 무리가 없어요. 최단 기간에 호흡을 맞춰야 하기에 모두 철저히 연습을 해오기도 하고요.” (지상희)
이 과정이 세 사람에겐 ‘배움의 시간’이라고 한다. 박예은은 “짧은 시간에 완성도 높은 연주를 해야 하기에 집중도가 높고, 서로 다른 음악색이 화합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했다. 조재복 역시 “단기간의 연습과 즉흥성, 그 안에서 순발력 있게 맞춰나가는 점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다가올 연주회의 관전포인트도 많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에 나오는 김상윤의 클라리넷 빅솔로”는 박예은 지상희가 가장 기대하는 연주다. 조재복은 ‘말러 교향곡 5번’을 꼽았다. “긴장감을 유지하며 지루하기 않게 끌고가야 하는 음악이자, 현과 하프로만 연주하는 4악장은 영화음악으로도 잘 알려진 아름다운 멜로디”이기에 흥미로운 점이 많다. 거장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 하는 연주는 단원들에겐 ‘꿈의 무대’다.
“20년 전쯤 프랑스 유학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백건우 선생님의 독주회에 간 적이 있어요. 그 땐 한국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이런 분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 놀랍고 자랑스러웠어요. 언젠가 선생님과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이번에 인연이 돼서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 (박예은)
■ “여름방학 같은 만남”…함께 하는 즐거움
여러 악단에서 모인 만큼 단원들의 이력도 다채롭다. 이들 세 사람 역시 유수의 악단을 통해 폭넓은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오케스트라부터 실내악, 솔로 활동은 물론 후학 양성에도 힘쓴다.
지상희는 밤베르크 심포니 제1바이올린 종신단원이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내 연주자들의 실내악단인 발트앙상블 멤버로도 함께 하고 있다. 최근엔 무려 3차에 걸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제2바이올린 부악장 오디션에 합격했다. 오는 11월부턴 베를린으로 출근한다. 조재복은 유수 악단(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부터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NDR 엘프필하모닉 객원단원 역임)을 거쳐, 현재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이고, 실내악단인 앙상블 토니카, 바쓰만 콰르텟을 이끌고 있다. 음악을 향한 각별한 애정과 비전이 없다면, 굳이 시간을 내 참여하기 어려운 활동이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다.
지상희는 “해외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 한국 관객을 만나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한정적”이라며 “시즌이 끝나면 몸은 피로하지만,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며 웃었다.
박예은은 정통 클래식과 대중화된 클래식을 오가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국내 오케스트라 연주회 중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히사이시조 애니메이션 음악 열풍을 몰고 온 위필하모닉의 수석이자, 양주시립교향악단 수석이기도 하다. “클래식을 연주할 땐 지휘자의 음악 색깔을 투영하려 하고, 영화음악을 연주할 땐 원곡의 감성과 분위기,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장면들을 해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한다. 올해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에 함께 한 박예은은 “1회 때부터 동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 연주자들과 지휘자가 함께 하는 악단이다 보니 꼭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움직이는 힘은 ‘자발성’이다. ‘한여름의 이벤트’인 만큼 이 악단에선 ‘직장인의 고단함’은 찾기가 힘들다. 연습시간이 끝나도 단원들은 ‘나머지 연습’을 마다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칼 같이 마치는 해외 오케스트라”(지상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1회 연주 때엔 현악 파트 단원 중 줄이 끊어져 연주를 마치지 못해 눈물을 보인 단원도 있다.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여러 악단에 몸담아 왔던 음악인들의 축제이자 여름방학 같은 만남이에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음악을 보고 모였기에 새로운 사람들과 호흡하며 조화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커요. 저희가 느끼는 음악의 기쁨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조재복)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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