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23] (19) 울산대 권예찬 "죽기 살기로 임하겠습니다"
#육상부에서 농구부로, 체육복 한 벌이 가져온 변화
권예찬은 어릴 적 육상부로 활약할 정도로 타고난 운동신경을 자랑하던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체육부장 선생님에게 농구부 가입 제안을 받기도 했으나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이유는 축구선수로 활약하던 큰 형의 힘듦을 이미 겪었기 때문이었다.
“농구를 못할 것 같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어느 날 다시 부르시더라고요. 체육복 한 벌을 주시더니 갈아입고 오라고 하셨어요. 영문도 모르고 갈아입고 오니까 이 옷을 입었으니 농구부 들어온 거라고 하셔서 엉겁결에 농구부원이 됐죠(웃음).”
육상이나 축구 등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아예 경험조차 없었던 농구지만 권예찬은 서서히 농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식 농구부 선수가 아닌 부원 소속으로서 팀원들과 동행하면서 당시 팀 동료였던 양준우(가스공사) 등 형들의 경기를 구경하는 데 그쳤고, 기본기 및 간단한 훈련에만 참여했다. 이후 농구선수의 길을 택한 권예찬은 6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됐다.
이후 임호중으로 진학한 권예찬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대회를 앞두고 코치가 바뀌면서 혼란을 느꼈고, 결국 권예찬은 당시 약체였던 김해가야고로 진학을 택했다.
“몇몇 고등학교와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듣긴 했어요. 사실 그 당시 김해가야고는 전력이 센 편이 아니었거든요. 인원도 부족했고, 해체 위기에 놓인 팀이다 보니 코치님의 권유로 진학하게 됐어요. 그래도 좋은 선생님이 계셔서 위안을 얻고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죠.”
권예찬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 김해가야고 감독이었던 정명준 코치는 반년여 만에 팀을 떠났다. 이후 1년 사이에 감독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잦은 사령탑의 교체로 김해가야고는 대회 때마다 대패를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다양한 지도자를 경험한 권예찬은 슛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감독님이 바뀌면서 슛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주말리그가 처음 생기고 마산고와의 첫 경기에서 3점슛 9개를 넣고 활약했던 기억이 나요. 팀이 더 좋아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팀에 예상치 못한 불화가 생겨났고, 나가겠다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감독님이 사정상 팀을 떠나게 되시면서 감독님을 따라왔던 친구들도 이적했어요. 감독님께 제발 남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어쩔 수 없었죠. 결국 인원이 줄어든 저희는 동아리 일반 학생까지 선수 등록을 하며 겨우 팀을 운영할 수 있었어요.”
이후에도 사령탑은 계속 교체됐다. 권예찬이 적응할 만 하면 지도자가 바뀌었고, 점점 권예찬 또한 농구 스타일에 혼란을 느껴 슬럼프를 겪었다. 심각한 발목 부상까지 찾아왔고, 몇몇 동료의 물을 흐리는 행동에 권예찬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떠안았다. 고등학교 3학년 전국체전이 끝난 후 권예찬은 농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권예찬은 1부 대학 몇 팀과 2부 대학을 섞어 원서를 접수했다. 1부 대학 중에서는 동국대에 합격했다. 가족들은 농구 인생을 위해 동국대 진학을 원했지만 권예찬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농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던 그는 울산대로 진학을 택했다.
“학창 시절에 운동만 하다 보니 친구들도 사귀고 놀고 싶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취미로만 농구를 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2학년이 되면서 다시 농구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2학년 때 다시 열심히 하면서 드래프트를 준비했어요. 동생과 떨어진 경기 감각을 만회하기 위해 엄청난 연습을 했다고 자신할 정도로요. 물론 결과는 아쉬웠지만요.”
2019년 KBL 신인드래프트에 지원했던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쌍둥이 동생 권예준과 함께 도전했지만 둘 다 고배를 마셨다. 이후 2학년을 마친 권예찬은 곧바로 군 입대를 선택했다.
“군 문제라도 해결해야 1부리그 선수들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시멘트 바닥과 정상적이지 않은 골대로 연습하는 게 너무 열악했고, 개인정비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역한 뒤에는 픽업게임을 통해 감을 잡고 복학했어요.”
지난해 복학한 권예찬은 곧바로 MBC배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떨어진 경기력과 팀원들간의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적었던 탓에 초당대에 우승을 빼앗겼다. 이후 종별 선수권대회를 통해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드래프트 준비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발목 부상이 그를 막았다. 드래프트를 한 달 정도 앞두고 발목 부상을 당한 그는 재활에 매진했지만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그는 올해 마지막 도전에 나서게 됐다. 앞선 MBC배 남대2부 우승과 종별 선수권대회에서의 선전을 통해 경기력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힘과 스피드, 슛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팀에서 원하는 플레이를 이행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될 것입니다. 꾸준함, 성실함, 노력은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거든요. 노력이 이뤄졌을 때 기량에도 발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따르지 않도록 죽기 살기로 임하겠습니다.”
“농구 인생을 돌아보면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부모님과 가족들, 윤용근 목사님과 집사님들, 그리고 이한준 교수님과 김해에 농구를 좋아하시던 선생님까지.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나아가는 선수가 되려고요.”
한 번의 드래프트 낙방과 부상으로 인한 드래프트 도전 포기, 그리고 3번째 도전을 앞둔 2부리거 권예찬이 기적을 쓸 수 있을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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