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명이 다 놓쳤는데, 구자욱만 그렇지 않았다… 좋은 선수가 좋은 리더로 성장하는 중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12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와 삼성의 경기는 일진일퇴의 공방전 속에 연장으로 흘렀다. 상승세를 이어 가고자 했던 삼성, 안방에서 연패를 당할 수는 없었던 SSG의 기세가 대충돌했다.
불펜 투수들이 죄다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닝을 쪼개고, 대타를 내는 등 벤치의 지략 대결도 이어졌다. 그러나 2-2로 맞선 연장 10회 2사 만루 상황에서는 투수 오승환(삼성)과 타자 한유섬(SSG)의 승부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벤치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베테랑 오승환은 집요하게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했고, 타격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었던 한유섬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이를 걷어내고 있었다.
양팀 감독들 모두 이 승부를 호평한 가운데 결국은 한유섬이 우전 안타를 터뜨렸다. 10구째 몸쪽으로 잘 들어간 공이었는데 한유섬이 이를 정확한 콘택트 포인트에서 끄집어내며 결국 마지막에 웃었다. ‘트랙맨’의 집계에 따르면 타구 속도가 시속 172.1㎞에 이를 정도로 강한 타구였다. 1루수와 2루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경기장에 모인 2만 명에 가까운 팬들, 그리고 코칭스태프와 모든 관계자들까지 다 끝내기 안타를 예감하고 있었고 실제 결과도 그랬다. 3루의 삼성 더그아웃과 열정적인 삼성 팬들 또한 패배를 인정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딱 한 명의 선수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삼성 우익수 구자욱(30)이 그 주인공이었다.
한유섬의 타구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역설적으로 우익수까지의 도달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구자욱의 수비 레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교적 정면 타구에 가까운 타구였다. 구자욱은 타자 주자 한유섬을 1루에서 잡기 위해 대시해 내려와 송구하는 동작까지 취했다. 만약 이 송구가 한유섬보다 1루에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면 우익수 뜬공으로 3루 주자의 득점이 취소되고 경기는 연장 11회로 가는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으로 끝내기 안타를 친 타자는 흥분 상태에서 주루 플레이를 평소처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구자욱이 마지막 순간 송구를 포기했고 한유섬도 정상적인 주루로 재빨리 1루를 밟았지만 이를 염두에 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건 많은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투지라는 단어와 조금 어감이 다른 집중력과 승부욕이었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박 감독은 13일 인천 SSG전을 앞두고 “그래도 빠른 타구니까 승부가 될 수 있었다. (선수) 왼쪽에서 잡아 오른쪽으로 다시 틀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걸 구자욱이 미리 생각하고 준비했다는 게 대단한 것 같다”면서 “그런 상황이 됐을 때 그렇게 하겠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칭찬을 이어 갔다.
삼성 야수진은 세대교체 중이다. 라인업에 젊은 선수들, 혹은 나이는 조금 있지만 1군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이 즐비하다. ‘모든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말로 듣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고 체험하며 느끼는 것은 몸이 기억하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날 삼성 야수 전원은 구자욱의 플레이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베테랑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대표적인 예다.
구자욱은 좋은 선수다. 이미 자신의 경력에서 이를 충분히 증명했다. 2015년 1군에 데뷔해 올해까지 1군 통산 1038경기에서 타율 0.315, 128홈런, 644타점을 기록했다. 3할을 칠 수 있는 정교함과 20-20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두루 갖춘 리그의 몇 안 되는 타자다. 삼성이 2022년 시즌을 앞두고 제안해 결국 도장을 받아낸 5년 총액 120억 원의 비FA 다년 계약은 구자욱의 능력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지난해 다소 부진했으나 올해는 제 페이스를 찾았다. 시즌 76경기에서 타율 0.338, OPS(출루율+장타율) 0.910의 대활약이다. 타격왕도 노려볼 만한 페이스다. 여기에 리더로서의 책임감도 커졌다는 게 박 감독의 흐뭇한 미소다. 젊어진 삼성 야수진을 이끌어 가야 할 선수다.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알고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좋은 선수는, 그렇게 좋은 리더가 되어가고 있다.
박 감독은 “임시 주장이었다가 이제 완전히 주장 완장을 찼는데 벤치에서 후배들을 많이 다독인다. 전에는 자기 플레이가 안 풀리고 하면 조금 낙담하는 이런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안 돼도 후배들 옆에 가서 조언을 해준다”면서 “타격 면에서 김현준이나 이재현, 김성윤 등에 게임 중에도 계속 이야기를 해주더라. 팀 분위기도 활기차지고 젊은 선수들도 그라운드에서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구자욱 효과를 이야기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두 만점을 향해 가고 있는 구자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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