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클래식 지휘도 10년내 세계 최고 기대”
13.7대 1 경쟁률 뚫고 3인 발탁
90년대생 김리라·박근태·이해
“지휘자·단원 함께 성장한 시간”
“팀파니 선생님, 여기선 조금 더 작게, 세컨드 바이올린 선생님은 조금 더 강하게 부탁 드릴게요. 37마디부터 가겠습니다!”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서 마린 알솝에게 지휘를 배운 젊은 지휘자 이해. 61명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KNSO) 단원들과 베토벤 교향곡 3번 2악장의 첫 연주를 마친 뒤 지난 과정을 꼼꼼히 되짚었다. 다비드 라일란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차세대 지휘자의 연주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사운드 텍스처’를 생각해 지휘 박자를 가져가라”고 조언했다.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2023 KNSO 지휘자 워크숍’. 13.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김리라(30), 박근태(31), 이해(31)는 지난 8일부터 매일 12시간의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며 ‘속성 과외’를 받고 있다.
▶멘토들의 노하우 전수...‘모두의 성장’이 목표=워크숍에선 지휘자의 역할과 덕목, 한국 오케스트라에서의 생존 노하우를 듣는 비즈니스 렉처, ‘실전 수업’인 피아노 리허설과 포디움 세션을 진행했다. 포디엄 세션 이후엔 다비드 라일란트 감독과 미하엘 베커 뒤셀도르프 심포니 예술감독에게 비디오 피드백을 받는 시간도 가졌다. 영상으로 녹화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지휘 모습을 분석하는 시간은 참가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들은 피아노 리허설을 통해 곡 전반에 대해 해석하고, 선율의 묘사, 악구별 테크닉 등 세부 요소들을 짚어가며 크고 작은 구조를 세웠고, 포디움 세션을 통해 각자의 그림을 그려갔다.
라일란트 감독은 “피아노 세션에서 디테일을 살피며 기본부터 따져보는 작업을 했기에 포디움 세션에선 일일이 노트를 주지 않고 (세 사람에게 믿고) 맡겼다”고 했다.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은 것은 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 앞에 처음 설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휘자는 어떤 순간에도 올바른 감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같이 성장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포디움 세션에선 차세대 지휘자들의 각기 다른 개성과 지휘자로의 기량이 확인됐다. 한 곡당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 그 시간 안에 처음 만난 오케스트라에게서 자신의 음악적 색깔과 기량을 끌어내야 한다.
▶섬세 vs 이성과 감성 vs 불꽃...개성 강한 세 지휘자=오케스트라 앞에 선 새싹 지휘자들은 표정, 몸짓부터 소리의 농도, 곡의 해석 방향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라일란트 감독은 “세 사람의 개성과 특징이 저마다 다르다”며 “이해 지휘자는 ‘섬세’하고, 박근태 지휘자는 ‘이성과 감성을 겸비’했으며, 김리라 지휘자는 ‘불꽃’같은 열정을 가졌다”고 분석했다.
라일란트 감독이 ‘롤모델’이라는 이해 지휘자는 “해외에서도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해봤지만, 어떤 수업은 음악적인 것만 강조하고 어떤 수업에선 기술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데, 라일란트 선생님은 기술적인 면을 설명하면서 음악적 이유를 더해줘 이해가 쉬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피드백은 지휘의 디테일을 잡아가는 데에 도움이 됐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 음대에서 공부하고 지난해 제18회 프랑스 오페라 드 보줴 페스티벌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근태는 “지휘를 하면서 어렵다고 생각하는 점은 오케스트라를 듣고 빠르고 정확하게 리액트를 해야하는 것”이라며 “포디움 세션을 통해 적절한 타이밍에 반응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 알고 있던 자신만의 지휘 습관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도 됐다. 이해 지휘자는 포디움 세션에서 지휘 습관 중 무릎의 움직임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자세를 점검하기도 했다. 한스 아이슬러 국립 음대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김리라 지휘자는 “새로운 오케스트라와 처음 연주하는 것은 나의 언어가 이 오케스트라에 효과가 있는지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머릿 속 상상과는 다른 연주로 나와 지휘 동작을 줄이라는 조언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같은 곡을 연주하며 지휘자로의 차이도 마주했다.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은 서로의 거울이 됐다. “경쟁(compete)이 아닌 비교(compare)를 통해 각기 다른 해석과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우는 자리”(미하엘 베커 감독)였던 것이다.
김리라 지휘자는 “각자의 지휘 스타일이 많이 달라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며 “다른 사람들의 정제되고 깔끔한 테크닉을 배울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박근태 역시 “서로의 지휘를 보면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흐름에 얼마나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韓 오케스트라에 다가선 시간...“K-클래식 지휘 분야에서도 기대”=워크숍 기간 참가자들은 멘토와의 만남을 통해 음악적 성장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미지의 세계’였던 한국 오케스트라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김리라는 “한국 오케스트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무서움이 있었는데, 국립심포니와 함께 하며 나의 지휘에 대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해는 “포디움으로 향할 때 처음 눈을 마주친 연주자의 표정과 눈빛이 그날의 지휘를 좌우하기도 하는데, 국립심포니에선 너무나 따듯한 미소로 맞아줬다”며 “미국, 유럽에서 다양한 마스터클래스를 참여했지만 이번 워크숍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국립심포니의 좋은 소리를 체험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돌아봤다.
워크숍 동안의 평가를 거쳐 우수 지휘자로 뽑히면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장학금 250만원을 받게된다. 이 워크숍을 통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한국 클래식 계의 빈약한 지휘 토양을 다지고, 차세대 지휘자를 지속적으로 발굴·육성할 계획이다.
라일란트 감독은 “한국에서 먼저 앞장선 지금,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의 클래식이 지휘 분야에 있어서도 최고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고 기대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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