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지금 시대에 필요한 건 '유성생식'(a.k.a. 섹스)의 창조력

심영구 기자 2023. 8. 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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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한 인간사 중에서도 유독 사랑에 대한 노래가 많은 데에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

인간은 섹스 없이 생식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생물이기 때문이다.

섹스(유성생식)가 생식의 유일한 길인 인간 공동체에는 늘 에로스가 넘실거린다.

유성생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왜 어떤 생물들은 진화 과정에서 무성생식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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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칼럼]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 희한한 시대 (글 : 이대한 교수)


다사다난한 인간사 중에서도 유독 사랑에 대한 노래가 많은 데에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 인간은 섹스 없이 생식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생물이기 때문이다.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뿐만 아니라 많은 동식물이 복제를 통해 클론을 만들어 내는 무성생식을 한다. 예컨대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바나나의 상당수가 하나의 개체에서 유래한 클론들이다. 불가사리나 플라나리아는 잘린 몸의 일부로부터 클론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스스로 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무성생식을 잃어버린 다른 동물들처럼 짝짓기를 해야만 자손을 남길 수 있다. 섹스(유성생식)가 생식의 유일한 길인 인간 공동체에는 늘 에로스가 넘실거린다. 어쩌면 외로움도 유성생식에 의존하게 되면서 강화된 적응적 감정일지도 모른다. 손쉽게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인간은 지금처럼 사랑에 목마른 생물로 남아있을까.

유성생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왜 어떤 생물들은 진화 과정에서 무성생식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하지만 나중에 등장한 생식 방법인 유성생식이 왜 이토록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유력한 설명이 있다.


섹스는 몸뿐만 아니라 유전자를 섞는 행위이다. 섹스를 통해 태어난 자손은 클론이 아니다. 유성생식은 양친에게는 없던 새로운 조합의 DNA를 지닌 생물을 만들어 낸다. 한식과 양식을 섞으면 새로운 퓨전 요리가 탄생하듯, 원래 있던 DNA의 조합을 거듭하면 생물의 형질이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늘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낸다는 말은, 좋은 조합을 지켜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업에서 무성생식을 적극 활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수한 품종을 만들어 내면, 그 품종의 클론을 만들어서 경작하는 것이 작물 생산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물처럼 인간이 최대한 통제하고자 하는 환경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에게는 현재의 좋은 조합이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은 캐번디시 품종이 바나나 상품의 주류이지만, 원래 시장을 주름잡던 품종은 그로 미셸이었다. 파나마병이라는 감염병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던 그로 미셸의 클론들이 초토화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성생식을 통해 다양한 병원균에 대항할 수 있는 유전적 다양성이 유지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의 차이

지구 생태계는 늘 변화해 왔다.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적응한 형질을 나타내는 개체는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그러한 자연선택이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면 새로운 종이 탄생하기도 한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로 다양한 생물들의 기원을 설명하는 체계적인 이론을 수립했다.

유성생식은 바로 이 과정을 가속할 수 있는 혁신이었다. 돌연변이라는 무작위적인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유전 변이 중 일부는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일부는 오히려 적응도를 떨어뜨린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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