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태풍, 산불에도 끄떡없는 ‘돔 주택’ 뜬다
외부 힘 분산하고 표면적도 적은 게 강점
미래학자 손현주가 2010년대 초반 미국 하와이대 학위 논문으로 발표한 ‘2030 한국 시나리오’에는 4가지의 한국 미래상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는 기후변화가 유발하는 자연재난에 휩싸이는 ‘붕괴 시나리오’가 포함돼 있다. 예컨대 적설량 1미터가 넘는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3주간 계속된 비로 한강유역에 사상 최악의 홍수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사람들이 선택한 대안은 기후재난에도 끄떡 없는 방재 별장을 피난처로 마련하는 것이다. 방재 별장은 폭우나 폭설, 폭염, 태풍 등의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구조와 안전룸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상류층에선 방재 별장을 갖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간다. 지구온난화가 한국에 국한된 사례가 아닌 만큼 사실 이런 상황은 세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10여년 전 상상한 기후변화시대의 미래 시나리오가 미국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기후대에 걸쳐 있는 미국에서 산불, 허리케인 등이 갈수록 강하고 잦아지자 자연재해에 강한 주택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 현상이 된 이재민의 디아스포라
대표적인 유형이 반달 모양의 돔 주택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은퇴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존 듀상의 사례를 소개했다. 2020년 캘리포니아의 초대형 산불을 겪으며 자연재해의 가공할 위력을 실감한 그는 지난해 시에라네바다 동쪽 계곡에 있는 부동산을 구입했다. 이곳은 산불과 폭염, 강풍, 폭설 등의 극한기상 위험이 큰 지역이다. 그는 이곳에 약 9m 높이의 돔형 주택을 지을 계획이다. 외벽은 열을 반사하고 불에도 잘 타지 않는 알루미늄 소재로 씌울 예정이다.
미국 인구조사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상재해로 집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 330만명을 넘는다. 이 가운데 120만명은 한 달 이상 집을 비웠고, 이들 중 50만명 이상은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기후난민 이주(디아스포라)가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돔 주택은 왜 기상재해에 강할까
돔 구조물은 무엇보다 건물이 받는 무게와 압력을 건물 전체에 골고루 분산시켜주므로 내구성이 좋고, 기존 주택처럼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지 않아도 된다.
또 직사각형 집보다 표면적이 적기 때문에 재료가 덜 들어갈 뿐 아니라 더위나 추위 등 외부의 온도 변화에 대응하기가 쉽다. 이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을 줄여준다. 또 구조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필요없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다.
요즘 인기 있는 지오데식 돔은 특히 태풍에 강하다. 지오데식 돔이란 작은 삼각형 모양의 소재를 엇갈리게 엮어 만든 돔을 말한다. 둥그런 돔 구조가 정면에서 맞는 바람의 면적을 줄이는데다, 삼각형 모양은 다른 모양에 비해 더 많은 하중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지오데식 돔은 미국의 유명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가 1950년대에 개발한 건축 양식이다. 그는 직접 10여년간 돔형 주택에서 살기도 했다.
미네소타주의 내추럴 스페이스 돔스란 기업은 뉴욕타임스에 “지난 2년 동안 돔 주택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지난해 20채에서 올해는 최대 40채의 돔 주택을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요가 늘자 직원 수도 2배로 늘렸다.
강풍에도 끄떡없어…허리케인 때 진가 발휘
돔 주택은 2005년 루이지애나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 때 진가를 발휘했다.
루이지애나 남서부의 작은 피칸 아일랜드란 섬마을에선 집 수백채가 전파됐지만 이 마을의 유일한 돔 주택은 지붕에 있는 널빤지 조각 몇개만 날아갔을 뿐이다. 이 집 주인 조엘 비지는 뉴욕타임스에 “마을 사람들이 ‘이 집은 여기 이렇게 멀쩡한데 자신들의 집은 사라져버렸다’며 집 모양 때문에 우리를 놀렸던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사과했다”고 말했다.
같은 해에 허리케인으로 집을 잃었던 뉴올리언스 인근의 맥스 베게 박사는 2008년 같은 땅에 돔 주택을 지은 이후 모든 허리케인에도 끄떡없이 지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전했다.
오래 가면서도 남들과 다른 집
내추럴 스페이스 돔스의 데니스 오딘 존슨 대표에 따르면 돔 주택 고객들이 특별히 부유한 편은 아니다. 대신 이들에겐 두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기후 위협에 대한 인식이 높다는 점, 다른 하나는 모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존슨은 “돔 주택을 찾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을 원하면서도 뭔가 다른 것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돔 주택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는 주택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려워진 점도 한몫한다. 극한 기상으로 주택이 파손되는 일이 잦아지자 캘리포니아의 최대 주택보험사인 스테이트팜은 올해 초 보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저렴한 자연주택’을 공급하겠다면서 2020년 출범한 캘리포니아의 지오십이란 회사는 지난 3월 첫 돔 주택을 공개하면서 이미 1만채의 선주문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물론 돔 주택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가운데가 높이 솟아 있고 벽이 경사진 형태여서 내부 공간 활용도가 떨어진다. 예컨대 방을 만들거나 가구 등을 배치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상시적으로 거주해야 하는 주택보다는 글램핑이나 리조트, 농막 등 임시 또는 보조 주거시설에 더 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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