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불망 ‘4기 신도시’ 기다리는 그린벨트 땅주인들

송진식 기자 2023. 8. 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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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급등기 2015~2022년 사이 그린벨트 지분거래도 ‘급증’
국토연 “규제 알고도 구매 추정, 이상거래 조사 및 대책 마련을”
대규모 토지 지분거래 사실이 확인된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일대 개발제한구역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간경향] 1971년 처음 도입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제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치적사업으로 꼽힌다. 알려진 대로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도시의 허파가 돼줄 녹지를 확보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덜 알려진 이야기지만, 다른 목적도 있었다. “우량농지의 확보와 안보상의 이유”(최상철 서울대 명예교수)다.

예컨대 1960년대 현재의 서울 도봉·노원구 일대는 ‘마들평야’라고 불리던 들판이었다. 강남 개포·대치·수서동 주변도 모두 우량농지였다. 개발제한구역 지정에는 생산성 높은 서울 외곽의 농지를 보전하는 목적도 있었다고 최 교수는 증언한다. 오늘날 해당 지역에 개발제한구역이 타 지역 대비 많이 남아 있는 배경이다.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등의 경우 휴전선에서 가깝다는 안보상 이유가 개발제한구역 지정에 작용했다.

사유재산 침해 논란과 개발이냐 보전이냐의 오래된 논쟁 속에서도 개발제한구역은 반세기 넘게 존재했다. 여전히 국민 10명 중 7명이, 전문가 10명 중 9명 이상이 지지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올해 5월 기준 우리나라 개발제한구역 면적은 약 3751㎢(132만 필지)로 전체 국토의 약 3.7%를 차지하고 있다. 적잖은 면적임에도 누가 얼마나 개발제한구역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지, 토지거래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등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국토연구원에서 최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토지를 누가 얼마나 소유하고 있을까?’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대략적인 토지 소유 및 거래현황을 분석해 발표했다. 1998년에도 한차례 조사가 있었지만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개발제한구역의 토지 소유·거래 관련 사실상의 첫 심층보고서인 셈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부동산 가격 상승기인 2015~2022년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 지분거래가 폭증한 점이다. 상당수는 투기 등을 염두에 둔 이상거래로도 볼 수 있어 추가적인 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개인소유 토지 약 90%가 구역 지정 후 거래돼

개발제한구역 지정은 이미 1970년대에 다 끝났다. 1971년 서울 등 수도권 내측(1차 지정)을 시작으로, 이후 1~2년 단위로 전국으로 지정 범위를 확대했다. 1977년 전남 여수권(8차 지정)을 끝으로 전국 14개 도시권에 모두 5397㎢(전 국토의 5.4%)의 개발제한구역이 지정됐다. 지정 후 30년 넘게 ‘금단의 땅’으로 이어져 온 개발제한구역의 해제 및 개발 등이 본격화된 건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다.

녹지로서 보존 가치가 없는 지역은 구역에서 해제하고, 사유재산 침해문제 등을 들어 되도록 정부가 땅을 매입한다는 취지에 따라 2001년 제주·춘천권 등 중소도시권의 개발제한구역이 전면 해제됐다. 수도권 등 대도시권도 부분 해제와 함께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택지개발이 이어졌다. 지난해 말까지 사라진 개발제한구역은 최초 지정 면적의 약 30%에 달한다. 해제된 면적의 7.5%(약 12만㎢)는 고리원자력발전소 건립을 위해 쓰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개발제한구역 지정 연혁 및 현황. 자료/국토연구원

국토연 분석에서 현 개발제한구역 토지면적(3751㎢)의 약 70%는 사유지, 국·공유지는 약 30%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유지는 개인소유 면적이 약 49%, 법인 및 이종소유(개인+법인 등) 면적이 약 21%로 나타났다.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의 경우 필지의 분할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공동소유인 경우 ‘공유지분’을 갖는 형태로 토지를 소유하게 된다. 구역 내 토지라도 매매·상속·증여 등 이전거래가 가능하다. 개인소유 토지 중에서는 불과 47.6㎡(14.4평)의 면적인 한 필지에 무려 439명이 공동소유주로 이름을 올려 최다 필지공유인수를 기록했다. 각자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땅을 보유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개인이 소유한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의 88.3%(면적 기준)는 구역 지정 후 소유권 이전 변동 내역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해당 토지가 개발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토지를 소유했다는 뜻이다. 소유권 이전이 발생한 개인 소유 토지의 경우 필지공유인 수가 평균 1.60명으로 이전 내역이 없는 토지의 필지공유인 수(평균 1.45명)보다 많은 것으로도 분석됐다. 투기 목적의 공유지분 거래가 많은 데 따른 결과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이후부터는 필지공유인 수가 2인 이상인 토지에서 소유권 이전 횟수가 증가하는 것으로도 집계됐다.

물론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를 상속·증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다수가 필지를 공유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연은 “필지공유인 수가 10인 이상으로 ‘매우 예외적인 경우’도 개발제한구역 내 약 120㎢(여의도 면적의 약 40배) 정도 존재한다”며 “개발제한구역이 개발될 경우 토지를 소유하게 된 시점(구역 지정 전·후)에 따라 보상 등에 차등을 두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8년 새 지분거래 ‘급증’, “개발 시 막대한 이익”

1990년대 조성을 완료한 1기 신도시를 제외하곤 2기 신도시, 3기 신도시(조성 중) 모두 개발제한구역을 대거 해제해 도시를 조성했다. 이렇다 보니 서울 안에 있거나,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의 경우 언제 풀려 개발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규제에도 불구하고 ‘금싸라기땅’ 대접을 받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를 보면 올 4월 강남구의 한 개발제한구역 내 농지 992㎡(약 300평)의 매매가격은 42억7500만원이다. 참고로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돼 땅이 수용될 경우 토지 소유주는 현금 외 ‘조성이 완료된 토지’로도 보상(대토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때 개인 1인당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주택용지 면적은 990㎡(300평)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대토로 300평가량 땅을 받으면 자체적으로 건물을 올릴 수도 있고, 다른 개발사업자에게 해당 토지를 매각할 수도 있다”며 “어느 쪽이든 매입비용 대비 많은 차익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방식의 투기가 실현된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3월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지역 투기사건이다.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기 전 1970년대 은평구 진관내동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토연 분석에서는 부동산 상승 시기인 2015~2022년 사이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에서 유독 많은 지분거래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된다. 국토연이 집계한 ‘이종소유 토지의 소유권 이전 횟수’ 자료를 보면 해당 기간 중 모두 9만1876건의 소유권 이전이 발생했다. 이전 44년간(1971~2014년) 총 소유권 이전 횟수(4만410건)보다 약 2.3배 많다. 이종소유 토지의 경우 여러명의 개인·법인 등이 필지를 공동소유하고 있다. 소유권 관계도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반적인 상속·증여의 형태로 보기 어렵다.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의 지분거래가 급증한 시기 중에서도 특히 2018년(1만9083건)과 2019년(2만3343건)의 이전 횟수가 역대 1·2위를 차지했다. 해당 기간은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의 입지를 발표하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이종소유 토지거래의 상당수는 기획부동산과 연루돼 있으리라고 추정된다. 개발제한구역 내 이종소유 토지 중 필지공유인(법인 포함) 수가 가장 많은 사례는 성남시 금토동 소재의 한 임야다. 청계산 자락 중턱에 걸쳐 있는 1.4㎢ 면적의 이 임야 소유주는 개인 및 법인은 물론 외국인, 종교단체 등 2019년 한때 4859명(지난 10일 기준 4040명)에 달했다. 경찰 수사 결과 기획부동산이 약 153억원에 임야를 매입한 뒤 지분을 쪼개 판매하는 방식으로 모두 961억원 규모의 수익을 올린 사건임이 드러났다.

서울 도봉동의 한 임야 역시 2018년에 기획부동산이 개입해 지분거래를 한 사례로 확인됐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 업체는 3.3㎡당 2만5736원에 임야를 매입해 약 5배에 해당하는 3.3㎡당 12만8773원에 지분을 판매했다. 매입가 대비 판매가 수익은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유재성 국토연 부연구위원은 “소유권 이전 횟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이종소유 토지는 지분거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토지들”이라며 “기획부동산에 의한 토지거래가 의심되므로 이상거래에 대한 추가적인 점검과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투기 및 불법행위 규제 유지내지는 강화해야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주택공급대책에서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청년주택’ 등을 포함해 “향후 5년간 연평균 50만 가구씩, 250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정부의 공급계획을 뛰어넘는 규모다. 최근 ‘뉴홈’ 브랜드로 사전청약이 이뤄진 아파트들이 이에 해당한다. 정부는 도심복합개발, GTX역사 주변 고밀 개발, 민간 재건축 등을 통해 물량을 채운다는 계획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지난해부터 주춤한 터라 민간 차원의 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공급물량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토부가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업계에서 꾸준히 ‘4기 신도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신도시 개발만큼 공급물량을 일시에 대량 달성할 수 있는 복안도 없다. 4기 신도시가 추진될 경우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이 유력 후보지가 된다. 이 경우 최근 몇 년간 급증한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 지분거래는 사전투기 의혹 등 여러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올 2월에는 시·도지사가 해제할 수 있는 비수도권 개발제한구역 면적이 기존 30만㎡에서 100만㎡로 3배 이상 늘었다. 개발제한구역 내 불법 개발행위도 여전하다. 경기도가 올해 5~7월 중 개발제한구역 관리실태를 특별 점검한 결과 조사대상 80곳 중 32.5%에 해당하는 26곳에서 불법행위가 확인됐다. 허가받은 목적과는 다르게 건축물을 올리거나 용도·형질을 변경해 사용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기자회견에서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을 중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사유재산 침해 문제 등과 같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발제한구역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한 배경이다. 국토연은 올해 1~6월 중 일반 국민(2000명), 도시계획·환경 분야 전문가(100명) 및 권역별 개발제한구역 담당부서 팀장급 이상 공무원(55명)을 대상으로 개발제한구역 관련 설문을 실시했다. 설문 결과 일반 국민의 82.5%가, 전문가의 81%가 “개발제한구역 내 행위 제한을 현재대로 유지하거나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공무원은 65.4%가 “완화하거나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응답했다. 도시 주변 개발제한구역 존치 여부에 대해선 일반 국민(72.0%), 전문가(93.0%), 공무원(67.2%) 모두 “유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발제한구역을 일률적으로 유지하기보단 도시의 성장과 쇠퇴, 인구 이동과 감소, 수도권 집중화 현상 완화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규제와 해제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보존이 필요한 도시 주변 개발제한구역의 경우 투기나 불법행위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관리감독 및 규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발제한구역을 보존하면서 여러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정부가 단계적으로나마 구역 내 토지 매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김대중 정부에서 이미 제시된 해법이기도 하다. 유재성 부연구위원은 “현행 개발제한구역 매수청구제도와 협의매수제도는 매수 대상 토지요건을 한정하고 있어 토지 매수(비축)에 한계가 있다”며 “규제수준을 현재와 같이 유지한다면 (토지 매입을 위한) 재원 확보와 더불어 적극적인 매수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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