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도, 제이팝도 “힙하다”…한일 오가는 뮤지션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음악인들이 함께 협업곡을 발표하고 서로의 나라에서 공연하는 등 교류가 확산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케이(K)팝과 인디를 가리지 않는다. 문화의 주 소비층인 두 나라 젊은 세대들이 서로의 음악을 ‘힙’한 것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룹 르세라핌은 지난 8일 일본 싱글 2집 타이틀곡 ‘언포기븐’ 일본어 버전을 선공개했다. 여기엔 요즘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화제의 중심인 가수 아도가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해 관심을 모은다. 2002년생 여성이라는 정보 말고는 일절 비공개로 하며 이미지 캐릭터로만 활동하는 아도는 지난해 빌보드 재팬 연간 ‘핫 100’에 10곡이나 진입시키는 등 현지 음원차트를 휩쓸고 있다.
앞서 르세라핌은 지난달 25일 이마세와 협업한 곡 ‘주얼리’를 공개했다. 이마세는 요즘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 싱어송라이터다. 지난해 발표한 ‘나이트 댄서’가 틱톡에서 화제를 모으며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 ‘톱 100’ 차트에서 최고 17위까지 올랐다. 이번에 이마세가 작사·작곡·프로듀싱을 맡은 르세라핌의 ‘주얼리’는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일본 대표 음원 사이트 라인뮤직 ‘일간 송 차트’ 3위에 올랐다.
이제는 대세가 된 인디 밴드 새소년도 일본 밴드와 협업했다. 일본 유명 밴드 기린지가 오는 9월6일 발표하는 새 앨범 ‘스테핀 아웃’에 수록되는 곡 ‘호노메카시’(암시)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 노래는 지난달 26일 선공개됐다. 일본어와 한국어 가사가 함께 들어 있다. 기린지는 지난 4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출연했는데, 무대에 새소년을 초대해 이 곡을 함께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건 서로의 나라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기대에서다. 케이팝은 이제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로 나가는 게 필수가 됐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 세계 음반 시장 2위인 일본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룹을 결성할 때 전략적으로 일본 멤버를 넣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르세라핌도 멤버 5명 중 2명이 일본인인 사쿠라와 카즈하다. 르세라핌이 지난 1월 내놓은 일본 데뷔 싱글 ‘피어리스’는 케이팝 걸그룹의 일본 데뷔 음반 초동 1위(첫주 22만2천여장 판매) 기록을 세웠다. 오는 23일 일본 싱글 2집 ‘언포기븐’을 발매하는데, 아도·이마세와 협업한 곡들도 여기에 담긴다. 르세라핌은 23일부터 나고야·도쿄·오사카를 도는 일본 단독 투어도 펼친다. 소속사 관계자는 “르세라핌이 일본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일본 뮤지션과의 협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일본 음악인도 협업을 통해 한국 활동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이마세는 ‘나이트 댄서’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 4월 첫 내한 쇼케이스를 연 데 이어, 국내 래퍼 빅나티와 협업해 ‘나이트 댄서’ 리믹스 버전을 발매했다. 하이브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에도 입점하고, 이번에 르세라핌과도 협업했다. 기린지는 지난 3월 새소년의 일본 도쿄 공연 때 찾아가 협업을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기린지는 “19년 전 한국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또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결국 올여름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지난 3월 새소년 도쿄 공연에는 일본 여성 래퍼 에이위치가 함께했는데, 에이위치는 지난 1월 새소년의 서울 공연 무대에 선 바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밑바탕에는 일본 젊은 음악인들과 국내 음악 팬들의 변화가 자리한다. 김성환 대중음악평론가는 “일본 음악인들은 과거 음반 중심의 내수시장만으로도 충분해 글로벌 진출에 애쓸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일본도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유튜브, 틱톡 등을 적극 활용하며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진출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틱톡 등을 많이 사용하는 국내 음악 팬들은 국적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음악을 즐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주제가 또한 사랑받는 현상도 일본 음악에 대한 벽을 없앴다.
최근 일본 음악인의 국내 음악 페스티벌 참가가 부쩍 는 것도 궤를 같이한다. 지난 4~6일 열린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는 기린지뿐 아니라 엘르가든, 오토보케 비버, 히쓰지분가쿠 등 일본 밴드가 대거 출연했다. 7월15~16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해브 어 나이스 트립’ 페스티벌에도 일본 시티팝 밴드 오섬 시티 클럽이 참가했다. 페스티벌 현장에선 일본 밴드에 열광하는 국내 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히쓰지분가쿠 티셔츠를 입은 한 팬은 “한국에서 이들의 공연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감격했다.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첫날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무대에 오른 일본 펑크록 밴드 엘르가든은 2008년 이후 15년 만에 한국 관객을 만났다. 엘르가든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국에 다시 올 거라고 기대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페스티벌에 함께하게 돼 굉장히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 음악인들의 일본 활동 또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소년은 기린지와 협업하기 전부터 해마다 일본 공연을 꾸준히 해왔다. 처음엔 100석 규모로 시작했는데, 오는 11월에는 1500석 규모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2000년 한-일 문화교류를 시작으로 매년 일본 투어를 해온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은 코로나로 멈췄던 일본 투어를 지난 4월 재개했다. 일본 인디 밴드 킹곤즈와 함께 엿새간 오사카·교토·나고야·도쿄를 돌았다.
일본 정부는 외국인 가수에게 까다로웠던 ‘흥행 비자’ 발급 조건을 8월부터 대폭 완화했다. 비자 기간이 기존 15일에서 한달로 늘고, 스탠딩석 공연과 음식물 유상 제공도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인지도가 낮은 신인 가수나 인디 밴드의 일본 공연이 더욱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인디 음악인들이 속한 엠피엠지(MPMG)뮤직의 서현규 이사는 “일본의 비자 조건이 완화되면서 인디 밴드가 일본 소규모 클럽 공연 등으로 입지를 다져 성공하는 사례가 나온다면 비슷한 움직임이 잇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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