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듯 QS+' kt 고영표 "류현진 선배는 22번이나 했다고요?"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어떤 투수가 2023시즌 KBO리그 최고의 선수인지는 의견이 갈릴 수 있어도, 어떤 투수가 가장 '선발 투수'의 임무에 충실한지는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시즌 21번의 선발 등판에서 17번이나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내) 조건을 채우고, 심지어 15번은 퀄리티스타트 플러스(QS+·선발 7이닝 이상 3자책점 이내)를 한 kt wiz 잠수함 투수 고영표(31)가 주인공이다.
KBO리그는 물론이고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조차 '이닝 이터'가 사라지고 있는 최근 세계 야구의 흐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면 적어도 7이닝은 책임져주는 투수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영표는 빠른 공 최고 시속이 140㎞에 미치지 못해도 꿈틀대는 공의 움직임과 정교한 제구력, 그리고 리그 최고 수준의 체인지업을 앞세워 타자들을 돌려세운다.
12일 수원 NC 다이노스전은 올 시즌 가장 많은 13개의 안타를 허용하면서도 무사 만루를 두 차례나 무실점으로 넘기는 위기관리 능력을 선보여 7이닝 3실점으로 임무를 마쳤다.
13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만난 고영표는 전날 경기에 대해 "컨디션은 좋지 않은 날이었지만, 돌아보면 '기묘한 하루'였다"고 돌아봤다.
무사 만루,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고영표는 흔들리지 않고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는다.
그 비결로 '멘털'을 꼽은 그는 "물론 '이렇게 던지다가 안타 맞으면 2점 내준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도 나는 선발 투수고, 한 시즌을 치르며 이닝을 끌어가려면 (타자와) 대결해야 적어도 5이닝은 던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역 시절 최강의 '잠수함 투수'였던 이강철 kt 감독이 꼽은 고영표의 '이닝 이팅' 능력 비결은 체인지업이다.
이 감독은 "체인지업이라는 결정구가 있으니 타자들도 (카운트에 몰리면 불리해지니까) 빠른 카운트에 방망이가 나온다. 그래서 투구 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고영표는 15번이나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달성한 이번 시즌 자신의 발걸음을 돌아보며 "아주 만족스럽다. 운도 많이 따르고 있어도, 매 경기 많은 이닝을 끌어가니까 그 부분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역대 프로야구 단일시즌 퀄리티스타트 플러스 최다 기록의 주인공은 1983년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로 총 33차례 달성했다.
장명부의 1983년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다시는 나올 수 없고, 다시는 나와서도 안 되는 시즌으로 평가받는다.
그해 장명부는 '30승을 거두면 1억원을 주겠다'는 허형 당시 삼미 사장의 말을 믿고 60경기, 36완투, 6완봉승, 30승 16패 6세이브 427⅓이닝 평균자책점 2.36이라는 믿기 힘든 성적을 남겼다.
최근에는 KBO리그에서 선발 투수가 한 시즌을 부상이나 부진 없이 모두 치른다고 가정했을 때 30경기 안팎만 등판하는 점을 고려하면, 장명부는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마저 '불멸의 기록'을 보유한 셈이다.
단일시즌 퀄리티스타트 플러스 역대 2위는 1995년 이상훈(LG 트윈스)의 23회이며, 공동 3위는 2006년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와 2010년 류현진(한화 이글스)의 22회다.
이중 투수 분업화가 완전히 정착한 2010년대 이후로 한정하면, 류현진의 퀄리티스타트 플러스 22회가 눈에 띄는 기록이다.
고영표는 "류현진 선배가 22번이나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 엄청난 기록"이라며 "퀄리티스타트만도 22번 하기 어려운데, 그걸 플러스로 22번이나 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다 보니까 15번이나 했는데, 20번까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며 류현진에 필적하는 이정표를 세우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고영표가 긴 이닝을 버티는 또 하나의 원동력은 '칼날 제구력'이다.
이번 시즌 129이닝을 던진 그는 단 11개의 볼넷만을 내줘 9이닝당 볼넷 허용(BB/9) 0.75를 기록 중이다.
KBO리그 기록 전문 웹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프로야구 역사상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가 0점대 BB/9를 달성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고영표는 "볼넷 적게 주는 것도 아주 만족스럽다. 일단 기회가 온 거니까, 0점대 (BB/9)를 유지해서 KBO 역사에 남는 기록을 새기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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