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과학이야기] 잠은 왜 필요한가

진희정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책임연구원 2023. 8. 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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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정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얼마 전까지 천둥 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로 밤잠을 설치게 하더니, 이제는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사실 열대야가 없는 시기에도 여전히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전 세계 인구의 약 20% 이상이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하루라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잠은 인생의 사치'이며, '하루에 4시간만 자면 된다'고 말했던 에디슨처럼 정말 잠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을 의미하는 기네스북에 수면시간 단축 기록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보건기구(WHO)는 수면 부족을 '선진국 유행병'이라고 선언했으며, 맥킨지에서 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OECD 회원국 5개국 기준으로 수면 부족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매년 약 6800억 달러, 한화로 약 975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 4.8배 교통사고 위험이 증가하고, 미국에서는 졸음으로 인한 사고가 가져오는 경제적 손해가 연간 46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수면시간(7시간 51분)을 보이는 국가로, 수면장애로 치료를 받는 환자 수도 매년 약 9%씩 증가하고 있는데, 2021년에는 70만 명을 이미 넘어섰다.

수면제 사용도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수면제의 수면장애 개선 효과에 관한 부정적인 연구 결과나 부작용에 대한 보고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어, 대안으로 수면제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2017년부터 대전시민을 대상으로 건강코호트를 운영하고 있다. 건강코호트의 대전시민(30-50대) 4000명을 대상으로 수면정보를 조사한 결과, 대전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47분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한 한국 안에서도 더 적은 시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클리닉이 있는 신경과에서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는 환자 수의 비율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수면장애는 국내 10대 사망원인인 치매, 심장질환, 암 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위험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기네스북에서 짧은 잠에 대한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수면장애가 질환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수면시장도 전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P&S Market Research의 연구에 따르면, 올해 수면 산업의 글로벌 매출은 약 1020억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마켓앤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수면 기기 시장은 2026년 약 32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고 하니, 에디슨이 본다면 깜짝 놀랄 변화일 것이다.

그런데 수면보조제, 수면을 잘 자게 하기 위한 기기들은 늘어만 가는데, 부작용이 없으면서 수면장애를 드라마틱하게 개선할 수 있는 수면 치료제는 아직 없어 보인다. 이는 수면장애가 유전적·환경적·외상성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 되는 복합질환이기 때문에, 특정 표적만을 작용점으로 하는 기존 치료 방법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면장애의 복잡성을 분석하고 치료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이미 여러 국가에서 유전체, 임상 정보, 진료 정보, 생활습관 등을 수집하는 정밀 코호트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한의원을 방문하면 "잠은 잘 주무셨나요?"라는 질문을 항상 받게 되는데, 이는 수면이 단순히 불편증상이 아니라, 인체 기능과 회복력을 평가하는 주요 진단근거이기 때문이다. 일반 연구에서는 수면시간 혹은 수면의 질 그 자체만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된다면, 한의학 기반 연구에서는 수면의 이상이 인체 기능의 저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보고, 몸 전체의 기혈 순환 개선을 통해 수면장애를 치료하거나, 수면의 질을 개선함으로써 인체 기능을 회복하는 것까지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건강코호트에서 수집되는 정보들은 한의학적 개념을 토대로 하는 수면 연구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미래에는 단순히 "잠은 잘 주무셨나요?"라는 질문에 그치지 않고, 환자 수면에 대한 유전정보를 포함해 다양한 정보들을 함께 한의학적으로 해석해 치료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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