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하며 걷기 좋은 논산의 길 3

이성균 기자 2023. 8. 1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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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도시 '논산'. 선비들의 정서를 지닌 유교 문화 자원이 풍부하고, 충청도의 상징인 양반문화도 확인할 수 있다. 선비와 유교의 흔적이 남은 공간을 거닐며 사색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돈암서원

●유교의 정서가 응축된 공간
돈암서원

조선 시대의 문화적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원이다. 유네스코도 한국의 서원(총 9개 서원)이 지닌 문화적 우수성을 인정해 2019년 7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했는데, 논산 돈암서원도 그중 한 곳이다. 1634년에 건립된 돈암서원은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 논의의 산실이자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사계 김장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660년 현종 원년에 사액(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리던 일)도 받았으며, 1871년 흥선대원군이 전국 650여 개의 서원 문을 닫으라는 훼철령을 내려 47개만 남았을 때에도 명맥을 유지했다.

볼거리도 상당하다. 돈암서원을 세운 사연과 김장생 부자의 업적을 적은 원정비와 양성당, 바깥채의 안쪽 대문인 내삼문, 김계휘(김장생의 부친)가 후학을 가르치던 정회당, 유생들의 기숙사 거경재와 정의재 등이 있다. 서원을 거닐면서 옛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방법이다. 꽃담도 눈에 띈다. 꽃담장은 본래 궁궐 같은 공간에 연출된 독특한 전통담장인데, 숭례사를 둘러싸고 있다. 특별한 공간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서원의 하이라이트는 응도당이다. 예학(예의 본질과 의의, 내용의 옳고 그름을 탐구하는 유학의 한 분야)을 건축으로 표현한 응도당은 유생들이 장수강학하던 강당 건물이다. 장수는 유생들이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고, 강학은 스승과 문답을 주고받으며 공부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응도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ㅅ자 모양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신발을 벗고 마루를 밟을 수 있는 것도 장점. 예스럽고, 한국의 미학이 담긴 외관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데, 마루에서 보는 서원과 주변 풍경도 일품이다.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나올 수 없다. 무더운 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구조이며, 돌담 뒤로 보이는 들판은 마치 동화처럼 느껴진다.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
명재고택 & 노성궐리사

논산에는 '사색의 길'이라는 특별한 도보 여행 코스가 있다. 토론과 사색, 학문에 정진한 옛 선비들이 거닐던 옛길을 자연 친화적인 산책길로 조성했는데, 명재고택과 백일헌 종택, 종학당 사색의 길 총 3가지 길이 있다.

명재고택

제일 긴 코스가 1.8km(백일헌 종택), 나머지 두 코스는 1km 안팎이라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고택과 학당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논산에 스며들 수 있다. 또 걸으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명재고택-노성궐리사를 볼 수 있는 명재고택 사색의 길은 소박함과 웅장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노성궐리사
노성궐리사
노성궐리사

소박한 풍경은 노성궐리사 몫이다. 궐리사는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권리촌에서 유래했는데, 논산 노성면에 있어 노성궐리사라고 한다. 이곳은 공장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국내에서는 노성과 오산 두 곳에만 남아있다고. 작은 규모지만, 곁에 자연이 있고, 궐리탑과 2m 높이의 공자상이 버티고 있다. 많은 이가 찾는 곳은 아니지만, 유교의 고장이라는 논산의 별명에 힘을 보태는 문화재다.

명재고택

노성궐리사에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300년의 세월을 버틴 명재고택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명재 윤증 선생 생전(1709년)에 지어졌다. 조선중기 호서지방(대전·충청남도·충청북도·세종 일대)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전형적인 상류층 살림집이다. 배경 지식이 없어도 고택을 마주하게 되면 특유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

●논산 여행의 마침표
종학당

도보 여행의 방점은 종학당을 추천한다. 그저 평범한 학당일 줄 알았는데 고풍스러운 한옥과 아름다운 조경 등이 어우러져 이상적인 쉼터가 돼 준다. 호암산의 푸른 정기는 덤이다.

종학당은 파평 윤씨 윤순거(1596~1668)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1628년 현재의 위치에 백록당과 정수루, 정수암 등 세 채의 건물을 지어 건립했다. 윤씨 문중과 처가의 자제들은 이곳에서 특별한 문중 교육을 받았는데, 노종파(노성의 파평 윤씨) 일가가 짧은 시일 내에 조선의 명문가로 두각을 나타낸 원동력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공부해 대과에 합격한 인물이 무려 42명, 무과 합격자는 31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과 더불어 종학당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특유의 신비감이 덕분인데, 정수루에 완전히 홀렸다. 논산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목조 건축물, 그리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논산의 평화로운 풍경은 더없이 훌륭한 여행을 선사한다. 여유를 갖고 구석구석 보면서 종학당의 가치를 온전히 확인할 수 있다. 짧은 시간만 있어도 만족스럽지만, 종학당과 정수루, 백록당에 앉아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논산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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