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막아 남극 빙하 지키자? 온실가스부터 신경쓰세요”

남종영 2023. 8. 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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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복사관리 효과, 남극 빙하 모델링으로 연구
스위스 연구팀, 태양 지구공학 움직임에 일침
“온실가스 감축과 병행하지 않는 한 효과 없어”
‘지구 종말의 날 빙하’라고도 불리는 남극 스웨이츠 빙하. 미국 플로리다주의 면적에 달하는 이 빙하는 연간 500억톤이 물을 바다에 유입시킨다. 위키미디어코먼스

그린란드 빙하가 다 녹으면 해수면이 7m 상승한다. 그보다 훨씬 큰 남극 빙하가 다 녹으면 57m가 상승한다. 이론적인 모의이긴 하지만, 빙하가 녹아 해수에 투입되는 민물 양이 많을수록 해류 및 대기 순환 메커니즘에 영향을 끼쳐 기상이변은 더 심해지게 된다.

이를 막는 방법은 없을까? 공상과학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햇볕의 양(태양복사에너지)을 줄여 온난화를 막겠다는 구상이 있다. 이른바 ‘태양복사관리’(SRM∙Solar Radiation Management)라고도 불리는 태양 지구공학이다.

스위스 베른대 연구팀이 태양복사량을 인위적으로 줄여 서남극 빙상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를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1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했다. 태양복사관리는 성층권에 비행기나 풍선을 띄운 뒤 에어로졸(기체 내 부유입자)을 뿌려 태양복사에너지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지상에서 보이는 하늘이 뿌연 색을 띄게 돼 ‘화이트 스카이’로도 알려졌다. (이를 다룬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책 ‘화이트 스카이’가 있다)

이론적으로만 논의됐던 태양복사관리의 효과를 남극 빙하 모델링으로 연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태양복사관리를 조기 시행할 경우 서남극 빙상의 붕괴를 방지할 수 있다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적극적으로 줄이려는 노력과 병행하지 않으면, 태양복사관리는 쓸모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구팀은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 배출되는 경우(RCP8.5)와 온실가스 정책이 상당히 실현되는 경우(RCP4.5), 온실가스 감축이 적극적으로 실현돼 빠르게 탈탄소화하는 경우(RCP2.6) 등 기후변화 정부간 패널(IPCC)이 제시하는 시나리오에 맞춰 각각 2020년, 2040년, 2060년, 2080년에 태양복사관리를 시작하는 것으로 가정해 시뮬레이션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최악의 배출 시나리오(RCP8.5)에서는 태양복사관리를 해도 서남극의 빙상 붕괴를 피할 수 없었다. 다만, 앞으로 온실가스 정책이 상당히 실현하는 상황(RCP4.5)에서 2040년 태양복사관리에 들어가면 서남극 빙상의 붕괴를 방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온실가스 정책이 적극적으로 실현되는 경우(RCP2.6)에선 굳이 태양복사관리를 하지 않고서도 빙상 붕괴 없이 해수면 상승을 0.25~0.3m로 잡아둘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연구팀은 “서남극 빙상 붕괴를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빠르게 탈탄소화를 하거나 아니면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태양복사관리를 조기에 시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태양복사관리는 시행하는 데 정치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의도치 않은 잠재적 부작용 또한 있다”며 “현 단계에서 최선의 방법은 지체없이 온실가스 ‘순배출량 0’의 탄소중립을 탈성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스타트업 ‘메이크선셋’은 태양복사관리를 추진하고 있다. 황산염을 넣은 풍선을 성층권에서 터뜨려 반사 구름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메이크선셋 제공

베른대 외쉬거 기후변화센터에서 빙하 모델링을 하는 요하네스 수터 연구원은 이 학교가 낸 보도자료에서 “서남극 빙상의 얼음 유동을 관찰하면, 티핑 포인트(급격한 변화 시점)에 매우 근접했거나 이미 통과한 것으로 나타난다”며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막을 기회의 창이 빠르게 닫히고 있어서, 향후 기후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방식의 기술이 진지하게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각국의 경제적 셈법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고통 분담을 감수하는 에너지 전환보다는 기업에 돈 벌 기회를 주고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편한’ 공학적 해결책이 부각되는 실정을 짚은 것이다.

현재 대기에 있거나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해저에 저장하거나 활용하는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이 대표적 공학적 해결책 중 하나다. 태양복사관리의 경우, 여러 기후 스타트업이 이미 뛰어든 상황이다. 미국에 있는 ‘메이크선셋’은 이미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이와 관련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하얀 하늘’ 밑에서 사는 세상이 되면, 비행기가 수시로 성층권에 올라가 수백만톤의 에어로졸을 뿌려야 한다. 더욱이 에어로졸 분사 중단 시 곧바로 지구 온도가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기후조작은 한번 시작하면 계속해야 한다.

연구팀은 아직 연구가 충분치 않지만 태양복사관리를 시행할 경우, 이런 문제 외에도 몬순 기후 변화를 유발하고 해양과 대기 순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 논문의 공동저자인 토머스 스토커 베른대 기후환경물리학 교수는 “지구공학은 지구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자 기후 시스템에 대한 위험한 개입이 될 수 있다”며 “유엔기후변화협약 2조에 따라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변화협약 제2조는 “기후체계가 위험한 인위적 간섭을 받지 않는 수준으로 온실가스 농도의 안정화를 달성하는 것”을 협약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 기사가 참고한 논문 https://doi.org/10.1038/s41558-023-01738-w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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