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불법이민자 르완다 등 제3국 보내는 법안 통과
망명 신청 금지, 유럽국 모방 우려
비공식적인 경로로 영국 땅을 밟은 불법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사실상 금지하는 법안이 지난달 영국 의회를 통과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 법이 실제로 시행될 경우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불법이민법’으로 불리는 이번 법안은 지난달 18일 영국 의회를 통과한 뒤 왕실 승인을 받았다. 비자 없이 불법 이민을 시도한 모든 외국인에 대해 영국 체류를 허용하지 않고, 영국 도착 후 28일 내에 본국으로 송환하거나 르완다 등 제3국으로 추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불해협을 통해 영국에 무단 상륙한 보트 난민, 해협 아래 해저터널을 지나는 화물차에 숨어 밀입국한 사람 등이 대상이다. 이들은 영국에 머무는 동안 망명 신청이 금지되고, 별도의 시설에 격리 구금된다. 한 번이라도 불법 입국을 시도했던 사람은 영구적으로 영국 입국이 불허된다.
불법 이주 문제로 골치를 앓아오던 영국 정부는 지난해 4월 보리스 존슨 당시 총리가 르완다 정부와 맺은 난민 이송 협약으로 영국 난민 신청자를 르완다에 보내 망명 심사를 받게 할 수 있게 했다. 이 대가로 영국은 르완다에 1억2000만파운드(약 2029억원)를 지불하기로 했다. 목숨을 걸고 영불해협을 건너온 난민을 영국에서 6400㎞ 이상 떨어진 르완다로 보낸다는 계획이 비인간적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나왔다.
리시 수낙 총리가 전 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아 불법이민법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불법이민법이 유엔난민협약이나 국내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올해 6월 항소법원이 “르완다가 결코 안전한 제3국으로 취급될 수 없다”며 판결을 뒤집어 대법원 판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항소법원의 결정에 수낙 총리는 “누가 영국에 올지 결정하는 건 (불법 이민을 조장하는) 범죄 조직이 아니라 영국 정부”라며 반발했다. 로이터통신은 “르완다로의 추방은 빨라도 내년에야 시작될 것이며, 시행 여부는 올해 말 있을 대법원의 판결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만약 대법원이 불법이민법 시행을 허용할 경우, 다른 나라들의 이주민 정책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WP는 “영국이 하고 있는 일(불법 이민자 추방)은 본질적으로 국경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브렉시트(Brexit)의 일환이지만,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른 나라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제프 크리스프는 “많은 국가들이 영국의 실험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으며, 이 실험이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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