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發 '전진법'에 침해된 자율…소급법 유예 '혼란'[IFRS17 연착륙 언제쯤 ]①
업계 "제도 도입 반년도 지나지 않아 자율성 원칙 깨져…혼란 가중"
[편집자주] IFRS17(새국제회계기준)은 지난 2013년부터 논의가 시작돼 올해 도입됐다. 준비기간만 10년을 거쳤지만, 금융감독원은 시행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추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보험업계는 IFRS17의 자율성은 훼손됐고,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IFRS17 도입 이후 현재까지의 과정을 점검하고 향후 전망을 살펴봤다.
(서울=뉴스1) 박재찬 기자 = 주요 보험사들이 14일 상반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이번 2분기 결산에서 계리적 가정의 원칙을 '전진 적용'으로 세우고, 재무제표상 재작성을 통해 '소급 적용'도 함께 허용했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에서는 각 보험사가 이번 상반기 결산에서 전진법과 소급법 중 어떤 가정을 적용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감원이 원칙을 세운 상황에서 당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실적 감소를 우려해 소급 적용을 사용하는 보험사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계리적 가정을 전진 적용 원칙으로 하되, 소급 적용 재무제표의 재작성을 허락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IFRS17의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이 상반기 결산에서 처음으로 적용된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올해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가 1분기 실적을 부풀렸다고 금감원이 지적하면서 마련됐다. 당국은 실손보험 가정 산출 기준, 무·저해지 보험 해약률 가정 등의 내용이 포함된 가이드라인을 내놨고, 회계처리상 계리적 가정에 대해 전진 적용하라는 원칙을 세웠다.
전진법은 회계상 변경 효과를 당해년도 및 그 이후 기간의 손익으로 전액 인식하며, 소급법은 회계상 변경 효과를 과거 재무제표에 반영해 당기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방식이다. 보통 전진법을 적용하면 회계상 1분기보다 실적이 크게 떨어져 보일 수 있고, 소급법을 적용하면 1분기와 2분기 실적이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그동안 금감원은 IFRS17 취지를 고려해 회계처리에 대한 각 보험사들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면적으로 유지해 왔다. 하지만 1분기 보험사들의 실적이 예상치 보다 훨씬 웃돌았고, 당국은 보험사들의 '실적 부풀리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진 적용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도 전진 적용이 원칙이라는 금감원의 강한 메시지가 담겼다.
한 대형 손보사 관계자는 “IFRS17 취지에 따라 보험사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금감원이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는 결국 자신들이 내심 밀어붙이고 싶었던 전진 적용을 원칙으로 세웠다”며 “이로 인해 IFRS17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말했다.
회계상 가정상 전진 적용이 사용될 경우 각 보험사마다 적게는 3000억원에서 많게는 5000억원 이상의 계약서비스마진(CMS)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전진 적용시 실적이 손실 수준까지 떨어지는 보험사도 생길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금감원은 전진 적용 원칙과 함께 보험사와 감사인이 재무제표를 소급해 재작성하는 방식이 경제적 실질을 표현하는데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경우 기존에 제출한 재무제표를 소급해 재작성하는 것을 허락했다. 또 올해 연말까지 재무제표를 소급해 재작성하는 행위에 대해 보험업법상 검사조치를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재무제표 재작성을 통한 소급 적용을 허락하고 연말까지 비조치를 결정한 것은 보험사들에게 자본확충 및 건전성 개선을 위해 올해까지 시간을 더 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관심은 주요 보험사들의 상반기 실적 발표로 모아지고 있다. 핵심은 전진 적용으로 인한 1분기 대비 2분기 실적의 증감과 각 보험사들의 상반기 결산 재무제표의 소급 적용 유무다.
금감원이 전직 적용 원칙을 세운 만큼 상대적으로 실적 감소폭이 낮은 보험사는 전진 적용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원칙 그대로 실적을 발표할 경우 이익이 크게 감소하는 보험사들은 불가피하게 소급 적용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미 금융당국과 보험사가 IFRS17 도입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만큼 계리적 가정의 전진 적용 원칙이나, 소급 적용 1년 유예 등의 조치는 제도 도입 전 논의가 충분히 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금감원이 소급 적용을 올해까지 허용한 만큼 IFRS17의 본격적인 도입은 내년으로 미뤄진 셈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보험 전문가는 “현재 보험업계의 현재의 IFRS17 도입으로 인한 혼란은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예상됐던 것들이고 또 충분히 시뮬레이션도 가능했었다”며 “당국 입장에서 회사의 자율성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준비해 왔지만 결국 제도 도입 반년도 지나지 않아 자율성의 원칙이 깨졌고, 당국의 자율성을 핑계로 한 우유부단한 정책 결정이 보험업계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jcp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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