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부림, 묻지마 살인…'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대안일까
[박지웅 변호사]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번 주에 다룰 내용은 '형법' 개정안과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입니다. 이 내용은 사형제를 폐지하면서(내지는 존치하면서)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을 법정형으로 둘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사형과 종신형에 대해서는 기존의 많은 논의들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사회에 가져올 많은 파장 때문입니다.
최근 신림역 칼부림 사건,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으로 '묻지마 살인'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본 법안을 다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연재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제공하기보다는, 법안의 역사, 기존의 논의의 흐름을 살펴보고 독자 여러분들의 합리와 상식에 기반한 판단을 돕고자 작성했습니다.
분당 칼부림 흉악범이 행한 10여 명에 대한 살인 및 살인미수 행각이 지난주에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이럴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조현병 등 정신병력이 있었던 것을 살펴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어쨌든 피의자가 범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이제 법정에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라 그 수위가 정해지겠지만, 사형에서 무기징역형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범죄의 경중, 의도, 사회에 미친 피해가 매우 큰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이후, 현재까지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도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사형집행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의 컨센서스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긴 합니다.
물론 이것도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의 의지가 어떠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만, 만일 우리가 사형을 집행한다면 우리와 주요 교역관계를 갖는 EU에서 우리를 '비문명국가'로 취급하고 이에 걸맞는 제재조치를 단행할 것임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1996년, 2010년 두 번에 걸쳐서 합헌을 선언하기는 하였으나, 사회 여건이 많이 변했으므로 이번 2019년 제기 헌법소원에서는 위헌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30년을 경과하다보니 사형수가 교도소 담장 밖을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습니다. 이른바 '집행시효' 문제인데, 이러다 보니 법무부에서 부랴부랴 형법 개정안을 만들어 올해 6월 5일 국무회의에 올려 국회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형이 유명무실화되다 보니, 사형이 가진 위하(威嚇, 겁을 주어 억제효과를 거두는 것)효과가 상실되고, 사실상 종신형과 다를 바 없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종신형 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유기징역의 상한은 30년(가중시 50년, 형법 제42조)이고, 무기징역의 경우는 10년이 지나면 가석방을 할 수 있지요.(형법 제73조의2) 따라서 법원에서도 살인 등 강력범죄자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해 가석방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보다는,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범죄자를 사회와 '격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사형을 폐지할 수가 없게 됩니다. 제가 사형 선고를 내려 본 경험이 있는 어떤 판사와 사형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선고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괴로운 일이라고 합니다. 내가 남의 생명을 빼앗는 국가의 도구가 되는 것 같지만 제도상 어쩔 수 없이 선고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사회에 나와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사형제도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위와 같이 여러 여건상 사형을 실질적으로 집행할 수 없다면, 사형을 대체해 종신형을 선고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종신형은 무기징역과 달리 영구적으로 가석방을 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이죠. 범죄자를 사회와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것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이것이 위와 같이 형법개정안, 사형제 폐지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취지입니다. 법무부도 지금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 여당과 심도있게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미국의 알래스카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는 이와 같이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 제도를 두고 있는데, 약 5만5000여 명이 이러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형중에 있습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경우는, 미국의 경우 소위 1급 살인(고의성을 가진 살인)에 대해서 선고하는 비율이 60%수준으로 높습니다. (그 외에 성범죄나 특수폭행, 마약류의 경우에도 선고하기도 합니다.)
종신형은 당연히 여 러모로 장점이 있습니다. 통상 종신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범죄행위를 범하는 범죄자의 경우, 기존의 여러 차례 범죄행위 이후에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늘린 미국의 한 주(州)의 경우는 20~30%의 폭력범죄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권지혜, 2022. '미국의 가석방 불가 종신형에 관한 비판적 고찰' <숭실대학교 법학논총> )
다만 이 논쟁에는 다음과 같은 형법학계의 반론이 있습니다. 종신형 제도의 본질은 범죄자와 사회와의 영구적 격리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가장 큰 문제점은 예산입니다.
특히 2020년 기준으로 미국의 경우도 종신형을 선고받는 범죄자의 3분의 1(6만1417명)은 55세 이상 고령자로, 젊은 수형자에 비해 많은 의료·관리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문명국가에서 범죄자라는 이유로 수형자에게 의료혜택을 부여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젊은 청년 범죄자에게 가석방 불가 종신형을 집행하는 경우도, 다른 성인 수형자보다 훨씬 장기간 복역을 하게 되니 그 집행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상당수 수형자들이 겪는 정신적 질병, 우울증, 퇴행현상 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가장 고령의 사형수인 브룩스는 우발적으로 아내를 때려죽인 죄로 50년간 감옥에 갇혀 있다 가석방을 받게 되었는데, 가석방이 싫어 인질극까지 벌이고 결국 사회에 나와 슈퍼마켓 계산대 일자리를 갖게 됐지만 변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Brooks was here'라는 글귀만 남기고 목을 맵니다.
이처럼 사회와의 장기간 격리는, 사형수 개인을 유명무실한 인간으로 만듭니다. 근대 형법에서 형벌의 목적은 '강력한 처벌'이라는 응보(應報)에서 일반인들에 대한 범죄의 예방(일반예방주의), 나아가서 범죄자의 교화를 통한 사회의 범죄예방을 유도(특별예방주의)입니다.
영화의 사례에서, 브룩스에 대한 종신형은 브룩스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브룩스라는 한 인간을 사실 파멸에 이르게 헀습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범죄자로부터 사회의 안전과 시민의 보호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그 범죄자의 인격을 파멸시키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범죄의 재범률(출소자의 3년이내 재복역률)은 평균적으로 22%~26%(2014~2022년, 법무부 <법무연감>)을 보이는데, 이는 미국의 재구금률(약 64%)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정당국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 역시, 장단점을 비교해 시민들의 판단을 구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박지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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