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호텔 프로젝트] 알록달록 이국적인 풍경…떠나기 싫은 마을 ‘체크인’
광산 폐광 후 쇠락…곳곳에 빈집
주민들 의기투합 협동조합 꾸려
골목정원박람회 관광자원으로
상권 되살아나 여행객들 ‘북적’
농촌 빈집 등을 활용한 마을호텔이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쓰러져가던 빈집을 도시민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농촌 주민이 느끼는 변화는 더 극적이다. 낙후된 시설이 정비돼 주거환경이 한층 개선됐고 관계인구가 늘어 지역경제에도 활기가 돈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에 있는 ‘마을호텔18번가’는 국내 첫 마을호텔 사례다. 2020년 문을 열어 각각 객실 3개짜리 1·2호점을 운영한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올해도 관광객이 북적인다.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고한역에서 내린 뒤 걸어서 10여분. 그간 평범했던 시골 풍경이 고한읍 골목에 들어서자 확연히 달라졌다. 알록달록한 건물과 줄지어 늘어선 화분이 손님을 맞는다. 유럽 소도시에 온 듯 이국적인 풍경이 아기자기하다.
마을호텔이 있던 고한읍은 본래 광산촌이었다. 광업이 성업하며 한때 ‘지나가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경기가 활황이었다. 그러나 2001년 폐광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사람이 급속도로 줄었고 인프라는 크게 낙후했다. 그 결과 5년 전만 해도 길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한 집 건너 한 집이 빈 상태가 됐다.
아무도 살고 싶지 않았던 동네는 2017년 변화를 맞았다. 정선 토박이인 김진용 마을호텔18번가 상임이사가 주축이 돼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가 꾸려지면서다. 매주 수요일 골목길 환경미화 작업을 하고 외벽 페인트칠 등 외관을 단장했다.
겉모습이 보기 좋게 달라지자 또 다른 아이디어가 나왔다. 본래 고한읍은 강원랜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민박집과 식당이 있었다. 그동안 시설이 낡아 손님이 끊겼는데, 건물 내·외관을 정비해 다시 관광객을 끌어모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김 상임이사를 포함, 주민 11명이 모여 1인당 100만원씩 출자해 마을호텔 18번가 협동조합을 꾸렸다. 빈 건물을 정비해 객실 3개짜리 호텔을 차렸다.
마을호텔은 골목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김 상임이사가 운영하는 ‘하늘기획’ 사무실이 프런트다. 투숙객은 이곳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걸어서 1분 거리 객실로 가 짐을 푼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객실 옆 건물에 있는 카페 ‘수작’에서 한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다른 식당에 들러도 좋다. 투숙객은 동네 여러 식당·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10% 할인쿠폰을 받는다.
호텔이 자리 잡으면서 마을이 달라졌다. 우선 관광객이 늘어 지역경제에 활기가 돈다. 2020년 사업 첫해부터 이른바 ‘대박’이 났다. 8월에만 700만원의 매출을 거둔 것이다. 이는 한달 내내 만실일 때 매출(1100만원)의 64% 수준이다. 성공적인 출발인 셈이다. 지금도 성수기인 7∼9월엔 예약률이 70%가 넘는다. 장사가 잘돼 지난해 2호점을 열었고 곧 3호점도 개소할 예정이다.
마을호텔 여행객은 골목길에 있는 식당에 들르고 주민이 운영하는 라탄·레진 공예 체험에 참가한다. 그 덕분에 골목길 상권이 되살아났다. 떠나기는커녕 제2의 삶을 꿈꾸며 귀촌한 이들이 있다. 골목길에 ‘들꽃사진관’을 차린 이혜진 사진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마을 관광지도·스탬프 제도 등을 운영해 호텔에 묵지 않는 일반 관광객도 늘었다. 고한읍에서 지방소멸은 이제 딴 나라 이야기가 됐다.
조합원이자 전 고한18리 이장인 유영자씨는 삶의 질이 바뀐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는다. 그는 “집이 깨끗해지고 주차장이 생겨 골목길이 안전해졌다”면서 “골목에 나와 꽃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전했다.
한번 들른 손님을 계속해서 불러들이려면 편리한 시설과 즐길거리가 있어야 한다. 마을호텔18번가는 2019년부터 골목정원박람회를 열어 관광자원으로 내세웠다. 주민들이 꽃을 가꾸고 공예품을 전시해 볼거리를 꾸몄다. 7월에는 ‘야생화 오즈로드’라는 주제로 정원박람회를 열고 관광객을 맞았다. 김 상임이사는 “마을호텔이 바꾼 건 동네 환경뿐만이 아니다”면서 “주민들끼리 소통하고 화합하며 마을호텔을 이끌어가는 동안 주민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나아가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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