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회 영농수기 가작] 머물되 멈추지 말자

관리자 2023. 8. 1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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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깨세요"=2004년 7월 경영대학원(MBA)교육을 마친 남편의 뜻하지 않은 농촌지역으로의 발령은 내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경남 의령군 충익사에 있는 정자에 앉아 준비해 간 도시락을 가족이 함께 먹을 때 남편이 내게 말했다.

당시 내 나이 35세,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농촌 생활에 대해 전혀 몰랐다.

농촌마을개발사업교육 담당부서에 근무하는 남편의 영향(?)으로 우리 가족의 주말과 휴가·여행은 모두 농촌마을 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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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문 송지연 (54·경남 의령군 의령읍)
여차하면 떠날 마음으로 온 농촌
수려한 자연·소박한 인정에 반해
주말·휴가 활용해 여러마을 순회
‘변해야 한다’ 말 덕 내 할일 알아
송지연씨(오른쪽)가 남편 손용석씨와 함께 경남 의령에 귀촌 후 운영하는 카페 ‘더부농’에서 직접 만든 쌀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꿈 깨세요” 

2004년 7월 MBA교육을 마친 남편의 뜻하지 않은 농촌지역으로의 발령은 내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 부부는 당분간 주말부부로 지냈다. 주말이면 두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 거주할 주택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경남 의령군 충익사에 있는 정자에 앉아 준비해 간 도시락을 가족이 함께 먹을 때 남편이 내게 말했다. 

“우리 여기 의령으로 이사해서 함께 살까?” 

“꿈 깨세요”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남편들의 바램에 대부분 도시여성들이 하는 말 그 자체였다. 그런데 곧 너무나 쉽고 단호했던 내 답변은 푸른 자연과 함께 잘 어우러진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진 정원과 주택을 보고 무색해졌다. 이렇게 나의 농촌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생활’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거주’였다. 여차하면 떠날 준비로 살았기 때문이다. 

당시 내 나이 35세,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농촌 생활에 대해 전혀 몰랐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생활한 전형적인 도시 여성이었다. 편리한 도시적 생활에서 농촌에 적응하기에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것이 농촌에 대한 불편한 선입견을 막아주는 요소였다. 의령에 온지 1년반이 지난 2006년 1월경 남편은 수도권으로 다시 발령받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의령에 계속 남기로 했다. 서로 비교하면서 경쟁만 하는 대도시 생활보다 수려하고 청정한 자연과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시골 생활에 점점 더 익숙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세상, 마을사업에 눈뜨다

1980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농촌인구감소, 노령화와 농산물 시장개방 등 변화의 물결 속에서 정부는 도농교류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도농교류사업을 추진하는 마을주민들을 육성 지원하며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농촌사랑운동과 1사1촌자매결연사업이 전개되고 있었다. 농촌마을개발사업교육 담당부서에 근무하는 남편의 영향(?)으로 우리 가족 주말과 휴가·여행은 모두 농촌 마을 순회였다. 강원 화 토고미마을, 경기 이천 부래미마을, 경남 김해 무척산 팜스테이, 경북 김천 옛날솜씨마을, 대구 동구 구암마을, 경기 연천 새둥지마을 등 전국 도농교류우수마을이 여행지였고, 우리 아이들의 체험놀이터였다.

특히 경북 고령군 개실마을 방문은 나를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했다. 조선시대 대표 유학자 점필재 김종직 후손들의 집성촌인 개실마을에 들어서면 전통한옥이 즐비해 있어 마을 전통과 유교 문화를 절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70대 초반쯤 보이는 어르신이 젊고 낯선 여성 방문객인 나에게 먼저 거의 90도 가깝게 머리 숙여 인사하시기에 송구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온 마을 어르신 모두가 한결같이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마을대표는 개실마을과 1사1촌자매결연을 한 삼성에버랜드의 정기적인 CS교육 덕분이라고 말했다. ‘잘사는 마을이 되려면 사람이 변해야 한다’며 자신이 이전에 경험한 교육에 주민들도 참여하도록 권했다고 한다. ‘변해야 한다’는 그 말을 되뇌었다. 그러자 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보, 나 이장 됐어”

2012년 12월29일 토요일 저녁 마을회관에서 대동회가 열렸다. 대동회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농촌마을의 가장 큰 회의 날이다. 이날 몇 가지 안건 중 하나가 2년 임기의 마을이장 선출 건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추천으로 만장일치로 마을이장에 추대되었다. 지자체 등 행정에서 제공하는 각종 복지혜택과 각 분야에 제공되는 보조금 등의 정보를 찾아 마을주민들에게 도움이될 만한 정보는 빠짐없이 전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도시민과 농촌마을주민에 대한 교류사업(1사1촌자매결연)을 전개하면서 농촌의 다원적 가치의 소중함을 느꼈다.

세상은 자연개발시대에서 자연보존시대로 변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필요한 부분을 보태고 채우는 상생 정신이 필요하다. 농촌의 다원적 가치는 농촌이 가지고 있는 보물이다. 이 보물을 지키고 공유하려면 무엇보다 교육, 즉 의식변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사업을 추진하였다. 사업추진은 무엇보다 사업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자세가 중요하다. 자세는 교육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신념속에 마을개발사업에 대한 교육 및 견학을 마을주민과 함께 다녔다. 

◆노인회 전통장사업을 전개하다

무료하게 노인정에서 일과를 보내시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의령군에서 노인복지사업 일환으로 노인복지자금이 지원되었다. ‘이 지원금을 함께 즐기면서 유익한 일거리 창출로 사용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중 선진지 견학으로 함양에 갔던 농가에서 된장, 고추장 파는 것을 보았다. 우리도 된장·간장·고추장을 만들어 팔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한기 때 소득을 창출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마을주민의 공동급식재원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된장 사업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계기는 매년 지속된 도농교류의 결과였다. 2010년 경남농협으로부터 추천받은 상지건축과 14년간 농촌사랑 1사1촌 자매결연관계 맺고 상호교류를 계속해 오고 있다. 상지건축 직원들이 농촌일손돕기를 왔을 때, 마을 어르신들이 담근 된장을 맛보고 반응이 좋았다. 이러한 자신감 속에서 노인회 회원 모두가 찬성하여 전통 장류 사업이 시작되었다.

장 담그는 날이면 새벽부터 백발노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전날 깨끗하게 씻은 콩을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 작업을 하기 위해 먼저 가마에 불을 붙인다. 작업을 위해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모였다. 각자 담당한 일들을 척척해 내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함께 일하고 나눠 먹는 즐거움에서 출발한 마을장류사업이 도시민에게 알려지면서 메주, 된장 구입뿐만 아니라 가족단위 장류담기 체험까지 진행하고 있다. 

노인장류사업은 2016년부터 전통된장을 만들어 도시민들에게 판매하여 큰 인기를 얻었고, 2019년에는 법인체를 구성하고 사업자등록을 하여 본격적으로 장류판매사업을 전개하고 장류(메주·고추장·된장·간장)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된장은 매년 조기매진, 체험은 조기마감이다. 이처럼 마을공동체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교육의 힘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교육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은 2008년부터 농촌마을개발에서 출발했다. 정부, 지자체, 농협, 민간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농업·농촌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마을개발지도자, 치유농업, 식품가공제조사, 전통장류제조사, 농촌체험지도사, 농촌마을해설가, 전통놀이 지도사, 체험마을 사무장 등 수 많은 교육을 받았다. 현재 우리가 지향하는 수많은 목표와 방향의 중심에는 바로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이 있다. 내가 받은 수많은 교육 혜택을 우리 의령지역 학생들에게 환원하고자 2022년부터 의령 청미래행복교육지구 마을교사에 지원하여 활동하고 있다. 

내가 경험하고 배우고 익혔던 것들에 대한 우리 문화와 체험, 특히 농촌전통체험(장류·전통주·민속음식문화, 가공 포함)등에 대해 미래의 주역들이 가질 수 있는 역량에 도움을 주고자 오늘도 마을교사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농업인 경영자로 변신하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희 조그만 농업회사법인 더부농 개장식에 바쁘신 중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늘 격려와 칭찬으로 저에게 큰...... (이하 생략)”

2020년 1월11일 토요일 오후 3시30분 농업회사법인 더부농 개장식 인사말이다. 지역생산 식량작물 가공을 통한 농산물 부가가치 창출을 위하여 2019년 농업인 농산물가공 창업지원 사업을 신청하였고, 본격적인 농업인 경영자로서 도약을 꿈꾸며 생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도농연계 농업·농촌 농산물 가공 및 식(食) 체험 교육실시 경험과 경남 화정나루마을 권역사업 체험프로그램 개발 및 진행 경력을 사업추진역량으로 농업회사법인 더부농을 설립하였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더불어 사는 농업인, 농촌을 사랑하는 농업인이 되고 싶다. 해서 더부농을 색깔로 표현하면 ‘분홍’이다. 분홍은 부드러움과 행복, 귀여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색이면서 따뜻함과 섬세함 그리고 여성스러움을 잘 표현 하는 색으로 서로 위로하는 관계, 서로 격려해 주는 관계의 색이다. 이런 의미에 걸맞게 제품을 개발하여 출시하였다. ‘의령쌀빵’이다. 의령쌀빵은 의령에서 생산된 지역 특산물 찹쌀로 만든 빵이다. 여성농부의 자존심을 담은 세련된 포장과 함께 건강한 맛을 자랑한다. 

◆농촌융복합산업을 향하여

전통 떡에서 현대인이 선호하는 빵으로의 농산물판로에 새로운 변환을 모색하고자 2019년 1월25일 의령군에 농산물가공창업 지원사업을 신청하는 동시에 식품가공에 대한 교육이수와 함께 국가기술자격증인 식품가공기능사 자격을 취득했다.

점점 약화되는 맛거리인 떡과 현대인이 선호하는 빵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1차적 생산·가공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농촌이 간직한 아름다운 자연과 현대인이 선호하는 모던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하여 20년 가까이 살던 주택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마련하였다. 바로 2020년 1월3일 오픈한 카페 ‘수암 55’이다. 한적한 외딴 시골길에 위치해 있기에 개업초기 하루에 손님 한 명이 오지 않은 때도 있었다. 이름도 지역 주소를 따 수암55. 누가 수암로 55를 알기에 오겠는가? 세상은 변했다. 

개업 후 구정을 보내기 위해 마을을 방문한 자제분들이 카페를 알리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힘이다. 찾아온 손님들이 리뷰를 달고, 자신의 블로그에 카페를 소개하면서 가까운 부산, 창원, 대구, 멀리는 서울, 인천에서 찾아오시는 손님도 있다. 어쩌다 한적한 시골길을 우연히 지나다 방문한 고객의 구전(블로그·인스타그램 등)으로 카페 수암55가 알려지면서 음료와 함께 먹은 의령쌀빵에 대한 구매고객이 생기기 시작했다. 2023년 1월부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스타트로 통신판매를 실시한 이후 의령지역특산물 판매몰인 ‘토요애’ 온라인몰과 우체국사내쇼핑몰에 입점하여 온라인 판매를 활발히 전개하는 동시에 일반인, 빵류 전문판매업 종사자, 학교와 공공기관과 연계하여 의령쌀빵 만들기 체험교육도 전개하고 있다. 

2023년도에는 쌀빵의 주재료인 찹쌀 예상물량 3t을 우선적으로 우리 수암마을 농사경력 20년 이상인 농업인을 통해 찹쌀계약재배(약 1000㎏)을 하여 수급하고, 나머지는 의령 관내에서 생산한 찹쌀로 충당하고 있다. 2023년 올해 하반기 예약된 계절별 식체험교육에 사용할 농산물은 집 앞에 위치한 1983㎡(600평) 남짓 밭에 고구마·콩·메밀 등을 심어 놓았다. 아직 농사는 젬병이라 소량 직접 재배하고 나머지 딸기·배추 등은 인근 의령 화정면 농가로부터 조달한다. 

이렇듯 지역 농산물 구매(생산1차산업)을 통해 의령쌀빵 등(가공 2차산업)으로 가공·유통·판매하고, 계절별 생산농산물로 빵 만들기, 딸기잼 만들기, 된장, 고추장, 막걸리 만들기, 김치담그기 체험 등(교육프로그램운영 3차산업)으로 1차·2차·3차 산업간 연계의 농촌융복합산업형태로 농업농촌의 부가가치를 제고하고, 특히 도시민의 힐링공간으로 카페운영을 연계하여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생각에 행동을 더하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말처럼 ‘성공하려면 남들이 가는 길에서 앞서가든지 아니면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라’는 일침을 상기하며 도시에 살고 있던 아들과 며느리를 의령으로 불러들였다.  이제 1차·2차·3차를 아우르는 6차 산업에 4차 산업이 더해지는 농업확장의 시대를 넘어 농업의 팽창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인터넷 등으로 이루어지는 SNS 홍보나 전자상거래는 아들내외에게 맡기니 훨씬 막힘이 없이 진행되었다. 

최신 유행과 먹거리 문화에 대한 트렌드에 대한 감각도 나보다 뛰어났다. 특히 의령쌀빵에 대한 맛과 모양에 대한 아이디어 등에 대한 거침없는 생각이 제품에 담기기 시작했다. 아들 셋을 둔 30대초 젊은 주부인 며느리는 의령쌀빵의 표적시장으로 아이가 있는 30∼40대 가정주부와 노인들의 간식 및 식사 대용으로 충분한 경쟁력과 차별성을 갖고 있기에 연령대별 마케팅판매전략을 통한 빵류 시장의 새로운 틈새시장을 열어보자고 제안한다. 2022년부터 제품개발 및 생산에 아들 내외가 참여하여 ‘의령쌀빵 진화하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완전히 새로운 제품생산을 하고 있다.

‘행복의 기원’ 책 속에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다’ 이 글귀를 뒤집어보면 생존하려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올바른 생각, 긍정적인 생각은 내가 향하는 시선에 달려있다. 늘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다.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농촌에 머물면서 경험한 20년이라는 시간은 우선 보고 느끼는 ‘체험’에서 출발. 둘째, 듣고 생각하는 ‘교육’을 통하여. 셋째, 경험하고 서로 소통하는 ‘행위’에 이르렀다. 이제 나누고 함께 그릴 미래의 모습 ‘비전’을 생각한다. 어쩌면 또다시 시작되는 순환과정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또 하나는 ‘나눔’에 대한 이야기이다. 함께하고 함께 누리는 기쁨을 공유하고 싶었다. 2022년 어울림 마을축제 공모사업을 신청하였고, 선정되어 진행되었다. 행사준비와 진행과정에서 어려움과 시련이 왜 없었을까? 시행착오가 왜 없었을까? 20여년 농촌에 살면서 느낀 점 딱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머물되 멈추지 말자’이다. 언젠가 우두커니 집 앞산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 산이 내 시선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앞을 막고 있는 어려움과 문제점들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번 축제를 진행하면서 쉽지 않은 작업들이 있었다. 가족사진 촬영일정과 마을가구당 2명씩 단체 개량 한복 구입과정이었다. 무료로 드리는 것인데도 축제 미참여하는 마을주민(도시에서 이주한 가구)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 설득과 참여독려 덕분에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가족사진 촬영을 위해 일일이 가구마다 가족사진 찍을 곳과 촬영일정을 기록하고,  사진촬영기사와 촬영일자를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고 번잡스러운 일이었다. 단체 개량한복은 개인별 사이즈 주문, 변경, 특이체형은 직접 가서 맞춤제작까지 수차례 부산진시장을 오고 가는 과정들이 있었다. 이런 어려운 점보다 몇몇 미참여 주민이 있었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이런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마을 어르신께서 내게 하시는 말 “이장! 우리야 고맙지만 이장이 너무 힘들다. 다음에는 이런 거 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2020년 1월3일 카페를 개업하던 날 마을 모친들이 쌈짓돈을 모아 개업축하금을 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나온 날에 대한 표창장을 받은 기분이었다. 너무나 뜻밖으로 시작된 귀촌이었다. 아무런 연고 없는 의령 수암마을에 와서 20여 년을 살고 있다. 지금처럼 오순도순 두리도리 마을주민과 함께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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