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방 안에 들어온 코끼리 내보내기

경기일보 2023. 8.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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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애써 피하고 싶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방 안의 코끼리’라는 표현이 있다. 방 안에 코끼리가 들어와 있는데 사람들은 마치 코끼리가 없는 듯 외면하고 회피한다. 마약류 중독 같은 병리적인 중독이 바로 그런 문제들 중 하나다. 2022년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작년에 단속된 마약류 사범이 1만8천395명이다. 이들 중 30대 이하 청년층이 59.8%를 차지한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는 중독을 재발하는 경향이 있는 만성질환이면서 동시에 뇌 질환이라고 정의한다. 마약류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규범과 문화를 병들게 하고 법을 어긴 범죄이기도 하다. 범죄이기에 엄벌해야 한다. 하지만 법적인 죗값을 다 치른 후에는 질병 치료의 관점에서 중독자가 재발하지 않고 회복하고 재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해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약류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적 접근과 함께 중독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마약류 사용자에 대한 치료와 재활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마약류 중독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아직은 방 안에 들어온 거대한 코끼리를 상대하는 것만큼이나 두렵다.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주변에, 아파트 인근에 중독자 회복 재활센터가 함께 있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 뉴스에서 10대 마약류 중독자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이들을 치료하고 재활할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직면할 때면 걱정과 답답함도 느끼지만 그래도 이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고 내 자식의 문제도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4년 특정 질병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편견과 낙인이 심한 문제 중 마약류 중독이 1위, 알코올 중독이 4위라고 발표했다. 중독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낙인적 시각은 마약류 중독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며 치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중독자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 그리고 두려움으로 그들과 연결되는 것을 거부하며 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방해하고 일자리, 주택, 대인관계에서 차별이라는 장벽을 만들 수도 있다.

마약류 중독이라는 방 안의 코끼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범죄는 처벌하고 중독자는 치료하고 재활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마약류 중독자를 처벌만 하고 치료재활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방 안의 코끼리는 ‘검은 코끼리’로 변할지 모른다. 2021년 미국에서는 펜터닐이라는 마약으로 인해 1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국 독립의 중심지였던 필라델피아시의 켄싱턴 거리에는 마약에 중독돼 ‘좀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수많은 중독자의 모습이 전 세계인을 경악하게 했다. 

마약류 중독자를 위한 치료재활 시스템을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악몽을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약속했던 중독자 치료재활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법률을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중독자 치료재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그리고 방 안의 코끼리가 검은 코끼리로 변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방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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