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택배 없는 날
2021년 10월19일 새벽 로젠택배 이천터미널에서 50대 일용직 노동자 A씨가 숨졌다. 수도권 곳곳에서 첫 얼음이 관측된 추운 날이었다. 식사하고 업무를 재개한 지 몇 분 안돼 몸에 이상을 느낀 A씨는 주저앉았고, 이후 깨어나지 못했다. A씨는 앓고 있는 병이 없었다. 그는 3년 넘게 이곳에서 택배 상하차 및 스캔·분류 업무를 담당했다. 월요일엔 오후 7시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화요일부터 금요일 그리고 일요일은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일했다.
근로계약서상 보장된 휴게시간은 1시간이었다. 밥 먹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근로기준법에 근거해도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이면 30분 이상, 8시간이면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줘야 한다. 하지만 동료 노동자들에 따르면 밥 먹는 시간을 포함해 휴식시간은 15분 정도였다. 사고 당일에도 A씨는 15분 만에 식사를 마쳤고, 업무를 재개하자마자 쓰러졌다.
A씨 사망 전후, 전국의 많은 택배노동자들이 과로로 숨졌다. 택배기사 10명 중 8명이 ‘나도 과로사할 수 있다는 걱정에 두려움이 크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택배노동자들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0시간이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특수고용직이다. 근로자처럼 일하지만 사업주와 개인 간 도급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여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때문에 정해진 노동시간, 휴가가 없다.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자발적으로 구해야 하기 때문에 참아 가며 일한다.
택배기사들의 장시간 노동이 사회 문제가 되자 고용노동부가 2020년 8월 주요 택배사와 매년 8월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오늘이 네 번째 맞는 ‘택배 없는 날’이다. 주요 택배사들은 일요일인 13일부터 광복절인 15일까지 모처럼 사흘간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택배업계 2위인 쿠팡의 노동자들은 쉬지 못한다. ‘택배 없는 날’에 불참하고 있어서다. 다른 택배노동자들이 쉬는 날, 쿠팡 노동자들은 오히려 물량 폭증으로 극한의 노동에 내몰리게 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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