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산업혁명이 인도에서 일어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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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인도에서 일어났다면 현재 우리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은 옥스퍼드대 철학 교수인 윌리엄 맥어스킬이었다.
올해 초에 나온 저서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에서 그는 이런 답을 던진다.
맥어스킬 교수는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고갈 문제도 아직은 가소성의 시기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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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인도에서 일어났다면 현재 우리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은 옥스퍼드대 철학 교수인 윌리엄 맥어스킬이었다. 올해 초에 나온 저서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에서 그는 이런 답을 던진다. 산업혁명이 영국이 아닌 채식주의자에게 친화적인 인도에서 일어났다면 대규모 공장식 축산농장은 지금처럼 엄청나게 증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의 이런 논리는 사회에 뿌리내린 가치의 잠김, 록인(Lock-In)효과를 전제로 하고 있다. 마케팅에서 가치의 잠김효과는 특정 제품에 친숙한 소비자가 더 좋은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친숙한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애플폰과 iOS를 쓰는 소비자는 더 좋은 경쟁폰이 나와도 쉽게 제품을 바꾸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을 쓰는 사용자가 캡슐커피를 계속 사용하는 것도 일종의 잠김효과와 같다. 이런 가치의 잠김효과는 국가와 사회 단위로 확장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 한나라 시대 유교의 부상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획득했고 이후 천년 이상 지금까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고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종교들도 초기 정착의 어려움을 겪은 후에는 가치의 잠김·고착현상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가치의 잠김현상은 현재 기술 발전과 맞물려 특정 기술이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되면서 가치의 잠김현상도 영구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되짚어보면 중요한 사회변화의 대부분을 가치의 잠김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유리장인이 세공작업을 통해 유리병의 형태를 만들고 일정한 시간만 지나면 유리병의 형태가 굳어져 더 이상 고치지 못하는 것처럼 사회의 중요 변화는 초기에는 '가소성'(Plasticity)이 작용하고 일정 시간 후에는 문화와 관행으로 자리잡아 경직성·고착성을 갖게 되는 식이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 법리인 헌법 제정과 같은 사회현상도 초기에 가열 찬 토론과 협의가 이루어지고 제정 후 공표되고 나면 하나의 완결적 논리구조를 갖게 되고 가치의 잠김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들어 새로 나타나는 여러 사회문제도 가치의 잠김현상, 특히 가소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 범용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경우 아직은 틀이 고착되지 않은 가소성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때문에 많은 지성인은 AGI의 역할이 고착되기 전에 이에 대한 윤리·규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맥어스킬 교수는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고갈 문제도 아직은 가소성의 시기라고 보고 있다. 인류가 더 잠김현상에 빠지기 전에 이에 대한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때 그가 강조하는 개념이 바로 '장기주의'(Long-termism)이다. 장기주의는 미래가 얼마나 거대할 수 있는지, 미래 방향을 정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따르는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세계관 및 태도를 의미한다. 현세대 행동이 바로 미래세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당대에만 한정한 계산이 아닌 여러 세대에 걸친 장기적 사고를 우선시함으로써 지속가능하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주의적 사고에 따른 행동원칙을 맥어스킬 교수는 크게 3가지로 이야기한다. 청정에너지 혁신을 촉진하는 등 보다 '강력한 행동'을 취할 것. 둘째, 다양한 문화와 정치체계를 유지하며 '다양성 옵션'을 확장할 것. 셋째, '장기적 예측'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할 것. ESG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러한 장기주의적 세계관을 통해 모든 미래세대의 권리와 복지를 지키는 책임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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