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주지훈'] 영리한 배우, 유연한 사람
'비공식작전' 택시 기사 판수 役...하정우와 믿고 보는 '케미' 완성
"선물 같았던 현장...늘 형들 보면서 많이 배워"
[더팩트|박지윤 기자] 낮 최고 기온 35도, 서 있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날씨였다. 이날 삼청동 인근에서 5명의 배우가 영화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 가운데 주지훈은 오전 10시부터 인터뷰 일정을 소화했다. 이 기사는 기자들도, 배우도 지칠 대로 지쳤을 무렵인 오후 4시에 일어난 일을 담았다.
시작 시간에 맞춰 인터뷰가 진행되는 카페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주지훈이 서 있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말을 했을 텐데, 그의 얼굴에서 피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은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이 개봉하기 전날이었다. '빅4'로 불리는 텐트폴 작품 중에서 가장 긴 홍보 기간을 거쳤고, 드디어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주지훈은 "영화를 사랑하고 만든 사람으로서 쫄려요. 저희 영화 정말 웃기고 재밌거든요. 인터뷰라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거짓말도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예요"라고 강조했다.
이를 연기한 주지훈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인물의 심리와 바람둥이 기질을 표현하기 위해 12kg을 증량하며 덩치를 키웠다. 또한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화려한 색감과 튀는 패턴으로 남다른 스타일링을 완성하며 끈질긴 생존력과 개성을 나타냈다. 등장만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능청스럽고 뻔뻔하다가도 날카로운 연기로 하정우와 극과 극의 톤을 완성하며 작품의 한 축을 담당했다.
사실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탈출기, 하정우와 주지훈의 호흡은 그동안 자주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재미는 보장됐을지 몰라도 새로움과 신선함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작품은 '아는 맛이 무섭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했고, 주지훈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는 검증된 조합이었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주지훈은 사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하정우,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로 호흡을 맞췄던 김성훈 감독과 이미 견고한 신뢰를 쌓은 상태에서 모로코로 떠났다. 이로써 서로를 파악하고 합을 맞추는 시간을 줄이고, 오직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 특히 두 배우는 서로의 애드리브나 돌발 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치면서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 냈고, 이를 본 김성훈 감독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결국 연기는 해석이 전부에요. 정우 형만의 빛나는 순간이 있거든요. 보면서 감탄했죠. 정우 형의 연기에 따라 제 리액션도 바뀌잖아요. 많은 도움을 받았고, 선물 같은 순간이었죠. 제가 예고하지 않은 연기를 했을 때 이를 못 받아친다고 나쁜 배우는 아니에요.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죠. 저희는 이게 잘 맞았고요."
"카체이싱은 어려운 거지 위험하지 않아요. 특수 효과를 주기보다 직접 찍어야 더 재밌는 신이에요. 감독님은 골목 하나하나를 다 둘러보면서 헌팅도 21번을 나간 거잖아요. 민준과 판수는 요원이 아니고, 동네 건달들에게 잡힐까 봐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갈 뿐이에요. 도망가는 자의 공포와 쫓는 자의 다급함이 8분 동안 펼쳐지는데,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고 액션에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죠."
이날 주지훈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는가 하면, 아쉽게도 기사에 담을 수 없는 재밌는 현지 로케 에피소드까지 가감 없이 털어놨다. 분명 일을 하는 중인데, 주지훈의 토크쇼를 보러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데뷔 초의 도도함과 시크함을 벗고,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재치와 위트를 입은 그였다.
2003년 모델로 데뷔한 주지훈은 2006년 MBC '궁'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데뷔작부터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지만, 바쁜 촬영 스케줄로 인해 하루아침에 뒤바뀐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그는 "모델로 시작해서 친한 배우도 없었고, 당시 소속사에 선후배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몰랐죠. 제가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는 형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당근과 채찍, 둘 다 필요한데 저는 당근에 잘 바뀌는 사람이더라"고 회상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팬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주지훈이다. 그는 '아수라'(2016)로 만난 정우성의 한마디를 듣고 180도 달라졌다고. 당시 공식 일정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만난 팬들과 사진을 찍는 등 역대급 팬서비스를 펼치는 정우성을 보며 '안 피곤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영화를 보러 와주는 게 너무 고맙잖아'라고 답했단다. 그렇게 주지훈은 용기 내 팬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
또 그는 "'암수살인'(2018) 때도 김윤석 선배를 보면서도 많은 걸 얻었죠. 어떻게 보면 저보다 오래 산 사람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공짜로 주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 비싼 걸 공짜로 주고 있는데요. 물론 제가 따라 하지도 않지만, 하려고 해도 얼굴과 목소리 등 모든 게 다르기 때문에 똑같지도 않아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주지훈의 모든 답변에는 예시가 등장했다. 자신의 의견을 그저 나열하는 게 아니라, 기자들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던져줬다. 그렇다 보니 몇 개의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현장 스태프가 예정된 50분이 지났음을 알리자 주지훈의 입에서 "수고하셨습니다"가 아닌, "저 시간 많아요"가 나왔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에 아쉬움을 표한 배우는 종종 있었지만, 20분이나 넘게 인터뷰를 더 이어간 배우는 처음이었다.
이후 그의 솔직한 답변이 계속됐다. 극 중 판수처럼 능청스러움만 장착한 채 인터뷰에 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가치관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유연하고 영리한 플레이어의 면모를 보여준 주지훈이다. 상대 배우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이 배워야 할 점은 정확하고 영리하게 알아차리고, 켜켜이 쌓은 세월만큼 대중들의 반응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빛나는 작품만 할 거야'라고 마음 먹으면 그게 가능할까요? 물론 원톱 물이 잘 되면 그런 류의 대본이 많이 들어오지만, 기본적으로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잖아요. '젠틀맨'(2022)때 '원톱 물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멀티캐스팅에만 끌리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예전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이제는 관객들이 그만큼 제가 찍은 작품에 몰입하는 거라고 느껴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죠. 제가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보는 걸 좋아해서 작품을 택할 때도 거부감이 없는 편이에요. 드라마와 OTT, 영화를 다 하고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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