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주무책임은 전북도, 여가부는 보조기관?” [팩트체크]
“원래 조직위원장이 공동으로 된 체제에서는 주무책임기관이 집행위원장입니다. 그러니까 전북도가 집행위원장을 하고 있고 여가부 장관은 보조기관이지요, 지원기관이지요. 그래서 1차적인 책임은 전북도에 있고 여가부는 2차적인 책임이 있는 이런 구조로 봐야 됩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한 인터뷰에서 말이다. 잼버리 조기 철수가 시행된 지난 8일까지만 해도 “여성가족부가 없어졌으면 대회도 훨씬 잘 됐을 것”이라며 “민주당(더불어민주당)만 찬성하면 바로 (여가부가) 폐지될 수 있다”(엠비시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 중)더니, 사흘 만에 비난의 화살을 여가부에서 전북도 쪽으로 옮긴 것이다. 주무부처인 여가부에 책임을 물을 경우, 현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비판의 대상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여당인 국민의힘 쪽에선 이번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전임 정부와 전북도 쪽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특히 전북도(정확히는 전북도지사)가 이번 잼버리에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잼버리를 계기로 최소 2조6천억원 규모의 직·간접 예산 혜택을 받아놓고도 대회 부지 매립과 배수 등 기반 시설 및 편의시설 등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공세에 나서는 모양새다. 애초 갯벌 매립지가 여름철 야영지로는 부적합한 줄 알면서도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사업의 속도를 높이고 정부 지원 규모를 키우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혐의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집행위원회’의 사전적 정의는 ‘대회(큰 모임이나 회의)의 결의 사항을 집행하는 기관이며, ‘집행위원장’은 ‘집행위원 가운데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하 의원은, 단순히 전북도지사가 집행위원장을 맡아 실제로 잼버리 행사 계획을 ‘집행’했으니 전북도의 책임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잼버리의 계획·준비·운영 등 책임 주체를 규정해놓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잼버리 지원법) 등을 보면 이런 공세에는 힘이 빠진다. 전북도지사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 의사 결정권은 결국 여가부 장관 등 공동조직위원장 쪽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8년 시행된 잼버리 지원법은 잼버리의 종합·운영 계획 수립과 시행, 관련 시설 설치·이용 계획 수립과 시행의 주체로 ‘조직위원회’를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조직위 구성을 인가할 권한은 ‘여가부 장관’에게 있다. (게다가 잼버리에 대한 대규모 예산 지원이나 관련 정책 심의·조정 권한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기획재정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 여가부 장관이 부위원장을 맡는 ‘정부지원위원회’가 갖고 있다.)
아울러 조직위는 임원으로 위원장과 부위원장, 집행위원 및 감사를 두며 ‘위원총회’와 함께 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집행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직위는 2020년 7월 출범 당시, 정관을 통해 위원총회와 집행위원회 등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했는데, 정관을 보면 조직위의 최고 의결기관은 집행위원회가 아닌 위원총회다.
위원총회는 위원장(2022년 5월부터 최근까지 김현숙 여가부 장관과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2인 공동위원장 체제였다가 올해 2월 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를 더해 5인 공동위원장 체제로 변경됐다)과 부위원장, 집행위원, 감사 등으로 구성된다.
위원장 소집으로 열리는 위원총회에선 집행위원회에 위임할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조직위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은 위원총회에서 정하지만, 실무적으로 세세한 내용은 조직위 사무총장에게 맡겨 집행하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집행위에는 전북도만 참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잼버리 조직위원회 누리집 등에는 집행위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자세한 면면까지 공개되진 않고 있다. 하지만 2020년 조직위 출범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집행위에는 전북도 행정부지사와 부안군수는 물론 잼버리조직위 사무총장과 여가부 차관, 여가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 새만금개발청장,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등 유관 기관 관계자 20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한마디로, 전북도가 행사 준비에 관여하는 수많은 집행위원 중 하나로 참여했다는 얘기다.
또한 조직위의 연간 사업 계획서와 예산서는 집행위의 의결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는 여가부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매 회계연도의 사업실적 역시 집행위 의결을 거쳐 여가부에 제출해야 한다. 결국 집행위가 제멋대로 잼버리 주요 사업계획을 정하고 예산을 쓰겠다고 해도, 여가부가 최종 승인 과정에서 걸러낼 수 있는(혹은 걸러내야 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하 의원은 인터뷰에서 마치 집행위원장이 실권을 가진 듯 얘기했지만, 2021년부터 3년 간 집행된 잼버리 총사업비 1171억원(잼버리 행사 전) 가운데 전북도가 직접 사용한 예산은 265억원에 불과하다. 전체 예산의 23% 수준이다.
조직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북도는 △상수도·하수도 등 기반시설 조성(205억원) △대집회장 조성(30억원) △간이 펌프장 100개 소 설치 등 강제 배수 시설(30억원) 명목으로 사용했다.
나머지 전체 예산 가운데 860억원은 조직위가, 36억원은 부안군이 사용했다. 조직위는 860억원 가운데, 130억원은 야영장 조성 등 시설비로 썼고, 조직위 운영비 등으로 잡힌 740억원 중에서 인건비 등으로 사용한 돈은 84억원에 불과하며, 656억원은 야영 및 프로그램 운영 사업비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개막 직후는 물론, 태풍 ‘카눈’이 지나간 후에 새만금 야영지에서 진흙탕과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발견되면서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의구심을 낳고 있는 상황, 대체 어디서 구멍이 생겼는지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전북도에 ‘1차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고조되자, 전북도도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잘못 알려지고 부풀려진 사실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다”며 적극 대응에 나설 태세다.
전북도 고위관계자는 1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치권 등에서 잼버리 파행을 대부분 우리 책임이라고 공격하니,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관계 법령부터 시작해 정확한 책임과 사실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을 차분하게 정리 중”이라고 말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특별법’ 등을 따져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14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와 관련된 입장을 설명할 계획이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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