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강제동원 외교, 막후를 보다

김채린 2023. 8. 1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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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시사국 27회 I] 강제동원 외교, 막후를 보다

기시다 후미오 / 일본 총리 (2023년 7월 12일)
“안녕하세요.”


지난달, 리투아니아에서 만난 한일 정상의 얼굴은 밝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3년 7월 12일)
“함께 노력한 결과 한일 양국 관계는 개선과 발전의 방향으로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관련 해법’을 발표한 게 한일관계 개선의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해법은 나왔지만, 해결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일부 피해자는 국내 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양금덕 / 강제동원 피해자 (2023년 3월 13일)
“나는 절대, 금방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돈은 안 받으렵니다.”


정종건 / 강제동원 피해자 故 정창희 님 아들 (2023년 7월 11일)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에게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뜻은 이렇게 이어 나가겠다.”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올 수는 없었을까?

9층시사국이 입수한 외교부의 대외비 문건들. 2012년부터 2018년 사이 검토된 강제동원 문제 대응책과 한일 간 물밑 대화가 담겨있습니다.

강제동원 외교, 그 비밀스러운 장막을 걷어봤습니다.

■ 시작점: 2012년 5월, 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

KBS뉴스 (2012년 5월 24일)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2012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피해자 측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파장이 컸습니다.

최봉태 / 변호사 ‧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대리
“보도를 통해서 (판결 결과를) 알았죠. 보도를 통해서 알았고. ‘역시 사법부라고 하는 곳이 인권의 최후 보루다’ 그런 생각을 했고.”

판결 직후, 외교부 대일외교 실무부서에서 만든 내부 문건입니다.

2012년 5월 24일 외교부 작성 문건 “강제징용 피해자 대법원 판결 대응 방향”


판결에 대한 언론 대응 방향으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며 일본 기업의 판결 이행을 촉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언론에 최종 발표된 외교부 입장은 상당히 달랐습니다.

KBS뉴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판결 취지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같은 날 외교부가 최종적으로 만든 문건에는 “금번 소송은 개인 대 법인 간의 민사 소송임을 감안해,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입장 표명은 신중할 필요”라며 “판결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라고 대외 설명 방향이 적혀 있습니다.

실무 단계에서 올린 긍정적 평가가 삭제되고,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선 겁니다. 이유가 뭘까?

판결 다음 날 나온 일본 정부의 발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후지무라 오사무 / 당시 일본 관방장관 (2012년 5월 25일)
“한일청구권협정이 있고, 이 협정에 근거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입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이 한국에 지급한 3억 달러에 강제동원 피해 보상 자금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강제동원은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한국 정부도 같은 입장을 취해 왔는데, 식민 지배와 직결된 불법 행위로 인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로 난처한 상황이 됐다는 게 외교부 판단이었습니다.

신희석 / 법학 박사 ‧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사실 스탠스가 꼬였죠. 청구권협정에 포함돼서 해결됐다고 했었는데, 이제 와서 한국의 재판소가 입장을 바꿔버린 게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일본이) 그렇게 주장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 외교 당국 대화 보니…일본, 판결 직후부터 ‘강력 항의’

일본은 곧장 물밑 외교전에 불을 당겼습니다.

선고 2주 뒤 외교부 문건에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본 기업의 패소가 확정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해주길 희망한다는 일본 당국자 언급 내용이 확인됩니다.

이 문제는 한일이 협력해서 문제 해결을 운운할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국 국내 문제라고도 말했습니다.

‘한국이 알아서 해결책을 가져와라’. 강제동원 외교 과정에서 일본이 줄곧 견지한 입장입니다.

기미야 다다시 /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약속, 즉 한일청구권협정과 한국의 사법 판단, 이 두 가지를 양립시킬 수 있는 어떠한 해결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거죠.”


한 달 뒤 외교부를 찾아온 일본 당국자 입에선 더 강경한 발언이 튀어나옵니다.

2012년 7월 18일 주한일본대사관 참사관과 당시 외교부 동북아1과장의 면담을 기록한 외교부 문건을 보면, 일본 측은 대법원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를 위반했다고 적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이 최종 패소하고 해당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해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된다면, 일본은 한국 측의 ‘국제위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고 그 해소를 촉구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 정부가 한국 측에 무엇을 요구할지 현 단계에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일반론적으로는 원상 회복과 발생한 피해에 대한 금전 배상, 재발 방지 보증 등이 요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사인 간의 민사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면서, 일본 정부가 최소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여야 한국 정부도 이런 사안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않겠냐고 반문한 걸로 기록돼 있습니다.

일본의 압박을 일단 위안부 문제로 맞받아친 겁니다.


이듬해인 2013년, 대법원 파기 환송 취지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에서 배상 판결이 나오자 일본의 항의는 더 거세졌습니다.

2013년 7월 선고 다음 날, 일본 당국자가 외교부에 전달한 비공식 문서에는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판결이 “한일 국교정상화를 근저부터 뒤엎는 것”이라면서, “한일청구권협정에 규정된 사항을 준수하는 것은 조약국인 국가의 국제법상 의무이며, 귀국(한국) 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의무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또 “국제법상의 의무를 이행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면서 “입법, 행정, 사법부가 아닌 국가로서의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도 압박한 사실이 해당 비공식 문서에서 확인됩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소송 관여에는 제약이 있다며, 일본 입장을 검토해보겠다고만 답했습니다.

남기정 /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는 그런 논리를 여기서 완성해서 이때부터 굉장히 강하게 압박해서 들어오는 것 같아요. 거기에 맞춰서 우리 정부의 입장이, 상당히 그걸 고려하고 염두에 두면서 입장을 가지고 가게 되는 거 같아요.”

■ 물밑 대화 상세히 나온 대외비 문건, 공개해도 괜찮나?

[스튜디오 출연1]

남현종 / 9층시사국 MC
일본 측의 항의가 상당히 거셌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외교당국 간 물밑 대화가 꽤 자세히 나와 있잖아요. 이런 대외비 문건, 공개해도 괜찮습니까?

김채린 / 9층시사국 기자
네. 이번에 다루는 문건들은 외교부에서 2012년부터 2018년 사이에 작성한 문건들입니다. 저희가 이걸 입수한 시점도 몇 년 전입니다. 하지만 강제동원 문제를 두고 한일 간 협상이 계속돼 왔기 때문에 그동안은 공개할 수 없었고요. 협상의 결과물로 올해 3월 정부가 해법을 발표한 이후에 방송을 결정했습니다.

해당 문서들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전략이 과연 적절했는지를 돌아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고, 이는 국민이 알아야 할 공익적 사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문가 두 명에게 자문을 구해서, 문건 내용 중에 공개가 좀 부적절하다, 공개되면 그 결과가 우려된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선 방송에서 제외했습니다.

남현종 / 9층시사국 MC
네. 그럼 다시 문건 내용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사실 저 당시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확실히 파장이 크긴 했었는데, 일본이 물밑에서 이렇게까지 항의를 했는지는 몰랐어요.

김채린 / 9층시사국 기자
그렇습니다. 앞서 영상에서 보신 2013년 이후에도, 일본은 배상 판결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한국 정부 입장이 대법원 판결과 다르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해달라고 계속 요구한 사실이 외교부 문건에 나와 있고요.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 기조였던 ‘투트랙 접근’은 불가능하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서 철수할 거다라는 언급까지 한 걸로 확인됩니다.

남현종/ 9층시사국 MC
정말 완강했네요. 그럼 외교부는 어떻게 대응했던 건가요? 앞에 나온 영상만 보면 일단 소송에 개입하기 곤란하다는 답을 주로 한 것 같은데요.

김채린 / 9층시사국 기자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외교부도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봤던 걸로 보입니다. 배상 판결이 확정된다면, 이는 “제2의 MB 독도 방문” 격으로 한일관계의 결정적 악화 요인이 될 거라는 표현까지 외교부 문건에 등장하거든요.

남현종 / 9층시사국 MC
우리 대통령이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던 그 사건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채린 / 9층시사국 기자
그렇습니다. 외교부는 특히 판결이 확정되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국제중재를 제기할 수 있고, 여기서 한국이 패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상세히 검토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결국 판결 확정에 대비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외교부의 1순위 과제가 됩니다.

■ “이르면 2013년 판결 확정, 적절한 대안은 없어”…위기 의식 팽배

일본의 거센 압박 속에 외교부는 일본 기업의 배상을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합니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와 유사한 방안이, 이미 2012년 외교부 문건에 등장합니다.

2012년 6월 13일 외교부 작성 문건 “강제동원 피해자 대법원 판결 대응 방안”의 일부분


제3자 변제를 거부한 피해자에 대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측이 진행하고 있는 ‘변제 공탁’도 이미 2013년 검토됐습니다.

2013년 11월 12일 외교부 작성 문건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관련 목영준 전 헌재재판관 의견”의 일부분


가장 비중 있게 검토된 대안은 두 가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새로운 보상 입법을 추진하는 안, 한일 양국 정부와 기업이 함께 재단을 만들어 피해 보상 기금을 마련하는 안이었습니다. 특히 재단 설립은 당시 피해자 측도 요구했던 해법이었습니다.

최봉태 / 변호사 ‧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대리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들이 (재단에) 반드시 들어가야 되는 것이고, 한국 정부나 한국 기업들도 (함께) 이행을 하는 형태로 해서. 그래서 저희들은 ‘2+2’ 방식으로 해결이 돼야 한다. 이렇게 주장을 많이 해 왔죠.”

하지만 두 방안 모두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일찌감치 내려진 채 더 발전되지 못했습니다.

신희석 / 법학 박사 ‧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외교부 문건을 보면)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건, 예산 추계. 대
략적인 거지만 피해자 1인당 1억 원씩 배상한다 했을 때, 총 16만 명 정도의 피해자가 있으니까 단순 계산을 하게 되면 16조 원이라는 예산을 낼 수 있겠느냐(라는 문제가 있다고 봤고). 기금안 같은 경우에는 우리 법원은 (일본 기업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는데 그것보다 후퇴되는 그런 수위의 책임을, 도의적 책임 같은 것을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국내 여론이 그걸 수긍을 할지. 그리고 일본 정부라든가 일본 기업을 어떻게 설득을 할지. 그 우려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 이 방안을 추진을 못했던 것 같고요.”

2013년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일본 기업들이 재상고하면서 대법원 최종 판결만 남았던 상황.

외교부는 이르면 2013년 말에도 확정 판결이 나올 수 있고,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했습니다.

당시 외교부의 위기의식은 한 외교부 직원이 수첩에 받아 적은 윤병세 장관의 말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윤병세 / 당시 외교부 장관 (2013년 11월 23일 외교부 직원 업무수첩 기재)
“VIP 표정이 상상이 된다. wayout(출구)이 없는 보고다.”
“판결 반복되면 외교부는 작살 난다.”

신희석 / 법학 박사 ‧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그 당시에 자료들을 보게 되면 이제 2013년에 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 판결들이 나고 나서 대법원에서 언제 이게 확정 판결이 날지. 두세 달 내에 날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까지 굉장히 뭐랄까. 어떻게든 그래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게 (외교부의) 가장 첫 번째 반응이었거든요.”

결국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시작됩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방안입니다.

대법원을 설득해 최종 판결을 늦추는 게 관건인데, 여기에 청와대나 총리실이 나서면 소문이 날 테니 외교부가 하는 게 좋다는 청와대 정무수석의 보고에, 대통령도 동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2013년 11월 15일 외교부 작성 문건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 관련, 국무총리-대통령 보고 결과”의 일부분


■ “배상 판결 확정, 최대한 미루고 방지해야”…결국 대법원 접촉

담당 대법관 네 명의 성향까지 분석할 정도로, 외교부는 치밀하게 대법원에 접촉했습니다.

당시 외교부 직원의 업무수첩을 보면, 한 외교부 간부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내일 대법관 1명을 만나기로 했다”고 보고한 것으로 나옵니다.

비슷한 시기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생산된 문건에선, 외교부가 대법원 판결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며 “외교부의 지속적인 민원”이 있다는 내용이 발견됩니다.

정점을 찍은 건 2013년 12월 1일,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린 소인수회의.

회의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그리고 대법관인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윤 장관은 여기서 2012년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설명했습니다.

윤 장관이 당시 회의에 들고 간 문건입니다.

2013년 12월 1일 외교부 작성 문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의 함의와 국가적 부담”의 일부분


“총체적 파국”, “패소 가능성 농후”, “경제에 심각한 영향” 등 심상찮은 표현들이 연달아 나오더니...

이 문제는 “입법, 사법, 행정부의 차원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기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결론 냅니다.

2013년 7월 일본 당국자가 전달한 문서상의 표현(“입법, 행정, 사법부가 아닌 국가로서의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과 똑같습니다.

남기정 /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일본 쪽에서 들이대는 그런 논리나 이런 것들을 (외교부가) 수용하는 그런 과정이 보이는 거 같아요. 대법원 판결의 기본 취지와는 좀 다르게 되더라도, 일본 정부가 납득하는 방향으로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그런 입장이 강하게 (보입니다).”

■ 치밀하게 준비한 대법원 ‘의견서’ 제출…빠진 내용은?

양 기관의 접촉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건, 외교부가 2016년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였습니다.


내용 공개 시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참고 자료 나열식으로 구성했지만, 판결을 지연하거나 번복할 경우 대법원이 지게 될 부담을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로 덜어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봤습니다.

2016년 5월 4일 외교부 작성 문건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관련 정부 의견서 제출 시기 검토”의 일부분


최봉태 / 변호사 ‧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대리
“애매모호하게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이야기하면서, 법적 판단보다는 정치 외교적인 판단을 어떤 의미에서는 강요를 하는 듯한 그런 의견서가 아니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좀 (걱정스러웠죠).”

외교부는 이 의견서가 불러올 외교적, 정치적 영향에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우선 의견서 제출로 “일본에 대한 긍정적 신호를 발신함으로써 한일 관계의 진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한일관계 선순환에 최대한 활용될 수 있는 시점에 대법원에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의견서 제출의 긍정적 효과로 “한일 관계 조기 정상화를 열망하는 국내 보수 여론과 한일 관계 개선을 강력 희망해온 미국 측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한편으론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을 중심으로 정부가 일본 편을 든다는 비판이 고조될 수 있고, 총선 이후 여소야대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 정치적 공세의 빌미를 줄 우려가 있다면서, 언론과 전문가를 동원해 긍정적 여론을 유도해야 한다는 후속 조치를 제안했습니다.

치밀한 분석 속엔 분명 빠져 있는 게 있었습니다.


남기정 /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피해자들이 눈에 전혀 안 보인다라고 하는 거예요, 외교부 입장에서는. 피해자의 문제를 외교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문제인데. 단순한 외교적 사안이 아니고요. 그러한 문제의식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 판결 확정까지 5년 걸렸지만…해결책 마련 실패

[스튜디오 출연2]

남현종 / 9층시사국 MC
판결 확정을 미루기 위해서 치밀하게 노력을 했고, 결국 최종 선고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근데 이 짧지 않은 시간을 번 데 비해서, 이 시간을 활용해서 적절한 해결책을 찾은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김채린 / 9층시사국 기자
네. 의견서도 내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사실 외교부도 판결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낮게 봤기 때문에, 판결이 확정되면 예상되는 결과, 즉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이 강제집행 되는 걸 막기 위한 대책이 외교부 입장에선 핵심이었거든요.

남현종 / 9층시사국 MC
그렇죠. 아무래도 실제 강제집행까지 가게 된다면 한일관계가 크게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 거잖아요.

김채린 / 9층시사국 기자
네, 하지만 판결이 확정된 2018년까지도 재단 설립이나 정부의 추가 보상 같은 기존 아이디어를 그냥 검토하는 수준이었고, 제대로 준비하진 못한 것으로 보이고요. 피해자들이 강제집행을 신청한 이후인 2019년 6월에야 한일 기업이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고 일본 측에 제안하게 되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남현종 / 9층시사국 MC
일본이 그 제안을 거부하고 수출 규제에 들어가기까지 하고요.

김채린 / 9층시사국 기자
네. 돌아보면 피해자들도 법적 배상만 고집했던 게 아니라 재단을 통한 해결 등 다른 요구사항도 있었거든요. 외교부가 법원만 바라볼 게 아니라 다른 대안도 조금 더 일찍, 적극 추진했어야 했다는 게, 제가 만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대목입니다. 정부가 하기에 따라 일본 측 태도는 달라질 수 있었고, 기회도 있었다는 겁니다.

■ 피고 기업들, ‘화해’·‘배상’ 의사 있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2년 전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만세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이 요구한 협상을 받아들인 겁니다.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가 최종 기각된 상황이었는데도 협상장에 나왔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 관계자 (2010년 11월 8일 1차 ‘대화의 장’ 미쓰비시 측 인사 말씀)
“‘재판은 재판이고 그것과 별도로 해결책을 협의하는 자리를 설치해 달라’는 여러분의 요청에 따라, ‘대화의 장’ 설치에 합의했습니다.”

준비 회의 15차례, 본 협상 16차례 등 2년간 총 31차례의 만남.

미쓰비시는 피해자 측과 협의해, 강제연행 등 불법 행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유감을 표한다는 ‘사죄 문안’을 만들었습니다.

2011년 12월 26일,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 측 의견을 반영해 내놓은 입장문 수정안(사죄 문안)의 일부분


한국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를 만드는 방식으로 금전을 출연할 의사도 밝혔습니다.


피해자 측이 당사자에 대한 금전 지급을 요구하며 결국 협상 결렬을 선언했지만, 양측의 거리가 상당히 좁혀질 수 있음이 확인된 셈입니다.

이국언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우리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었지만, 다만 미쓰비시는 이렇게까지 입장을 보였다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또 다른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도 2012년 주주총회에서 배상금을 내겠단 의사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있었던 상황. 실제 해결까진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필요했습니다.

신희석 / 법학 박사 ‧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배후에선 결국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서 절대로 이거(대법원 판결) 이행하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한테, 시간을 두고서 (당사자 간) 합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를 하면서...”


도고 가즈히코 / 전 외교관·시즈오카 현립 대학 글로벌 지역센터 객원 교수
“그 사이에서 화해가 성립하도록, 정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잠자코 지원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국언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외교부는 어쨌거나 일본을 상대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상대가 어느 만큼 마음을 먹었는지, 어느 만큼 움직였는지 그 반경을 알아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교섭 끝나고 교섭의 내용이, 과정이 어떻게 됐고 결과가 어떻게 됐고 왜 결렬이 됐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었죠.”


일본 기업들은 피해자들의 협의 요구에 더 이상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컵의 절반이 채워질 거라는 한국 정부 기대와 달리, 제3자 변제에 나선 한국 재단에 대한 기여도 없는 상황입니다.

향후 기여 의사가 있냐는 취재진의 서면 질의에 미쓰비시는 “한국 내 절차인 걸로 알고 있다”며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고, 일본제철은 “강제동원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는 가해자, 결국 피해자들은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한 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빈 자리는, 과연 진정한 ‘해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김채린
외부촬영: 설태훈, 조선기, 강우용
영상편집: 강정희
자료조사: 김경찬
조연출: 유화영,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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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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