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타령, 이제 그만[기고/이철우]
모든 역사 기억은 갈등을 수반한다. 국가가 어떤 사건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다. 그 선택은 힘겨루기의 결과이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그 힘은 논리적 설득력에서 나온다. 국가가 어떤 기억을 공식화하고 있다면, 그 기억을 다른 공식 기억으로 바꾸려는 사람은 자기의 인식을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납득시켜야 한다. 즉 일차적으로 그가 설득의 의무를 부담한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15년쯤 전,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에 등장했다. 그동안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했는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으니 그날을 건국절로 지정하자는 주장이었다. 그 주장은 정부에 의해 공식화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걸 공식화시키려고 주장한다면, 그 타당성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하는데, 1948년 건국론자들이 설득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1948년 건국론자들은 과거에도 건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그것을 거부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동맹과 건국준비위원회는 그렇다 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 그리고 독립유공자가 수여 받은 건국훈장 등에서 말하는 건국과 1948년 건국론에서 말하는 건국은 의미가 같지 않다. 전자의 건국은 독립운동, 네이션 건설(nation-building), 국가수호, 국가 발전 등을 폭넓게 지칭하는 모호한 개념이었다. 이와 달리, 1948년 건국론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신생국을 탄생시켰다는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이 일제의 강점을 정당화하는 논리라는 비판 앞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건국론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가 있었다는 말이냐고 반문한다. 즉 대한제국이 망해서 없어졌고 한국인은 모두 일본인이 되었다가 미군정을 거쳐 1948년 8월 15일에야 주권국가가 됐는데 그것이 건국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건국론자들이 ‘건국 대통령’으로 모시려는 이승만 대통령 본인에 의해 부정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의 지배는 국제법적으로 불법·무효이므로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한인의 국가는 의연히 존속했다는 믿음을 일관되게 실천했다. 그는 일본을 상대로 전쟁배상을 받으려 했고, 대한민국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서명국이 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일국교 정상화를 이룬 박정희 정부도 일제 강점의 불법성 인식을 양보할 수 없는 전제로 삼았다. 그리하여 일본이 뭐라고 주장하든, 병합조약과 그 이전의 조약이 “이미 무효”라는 한일기본조약 제2조가 당초부터 무효라는 의미임을 공식화했다.
대한민국의 입장은 발트 3국, 즉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훗날 취한 태도와 유사하다. 그 나라들은 1940년부터 1991년까지 50년 넘게 소련의 일부로 있었지만, 소련 지배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국가의 소멸을 부정했다. 이차대전 종전 후에도 외세 지배가 불법으로 판단되어 국가의 동일성과 계속성을 인정받은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알바니아, 에티오피아의 사례가 있다. 망명정부의 건재가 그러한 인정의 요건도 아니었다.
건국론자들은 국제사회가 침략의 불법성을 인정한 그러한 사례와 달리 일본의 지배는 합법적인 것으로 취급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세계 국제법학계에서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지적한 연구가 나왔다는 점을 들 수도 있고, 특히 국제사회가 대한제국이 체결한 다자조약의 효력을 확인함으로써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동일성과 계속성을 인정했다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많은 경우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을 신생국으로 보았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적 현실을 내세워 대한민국 정부가 취해온 입장을 바꾸는 데 필요한 설득력을 건국론자들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났거나 벗어나려는 많은 나라의 내부적 관점이 국제적 인식과 괴리를 빚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조지아는 1921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협박에 의해 소련의 전신인 한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된 때부터 70년간의 외세 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국제사회가 공인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국가가 선택한 역사 인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학자의 견지에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역사 기억을 국가가 선언해야 할 것인지를 공론화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그간 자국의 공식적 인식과 달리 외세의 침략이 불법·무효가 아니었으니 어느 시점에 신생국이 되었음을 축하해야 한다고 동료 국민들에게 외치는 내부인이라면 자국의 인식을 왜 바꿔야 하는지 특별히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건국론자들은 1948년 대한민국이 근대적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태어났기 때문에 전근대국가 대한제국과 계속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체제가 달라졌다고 해서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볼셰비키는 자기들이 세운 소비에트공화국이 제정러시아와 동일한 국가가 아님을 주장했다가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혼란의 본질적 쟁점은 1919년과 1948년 중 또는 1945년 8월 15일과 1948년 8월 15일 중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가가 아니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 역시 동일한 논리적 문제에 직면한다. 한때 1948년 건국론에 대항하여 등장한 1919년 건국론은 지금 설파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1919년 대 1948년의 대결로 논의를 프레임 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가 있다.
1948년에 미군정의 종식으로 국가주권을 완전히 회복했고, 처음으로 실시한 보통선거와 정부수립을 통해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게 된 의의를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건국”이라 부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간 정부수립으로 불러 아무 문제가 없었던 그 사건에 건국 개념을 적용하려면, 일제 강점 합법론, 대한민국 신생국론에 기초한 1948년 건국론을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오염된 “건국” 용어가 망령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나라의 생일을 찾아주자는 생뚱맞은 말로써 국론을 분열시키고, 이승만의 이름으로 이승만을 부정하는 건국 타령, 이제 그만하자.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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