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죽의 장막’ 다시 치는 중국

이귀전 2023. 8. 1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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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TEDx 행사 갑자기 취소
習 발언 패러디한 코미디언 퇴출
反간첩법 시행 등 철권통치 강화
中기업·학술지 외국인 접근 차단

“학교 측에서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답이 왔네요. 죄송합니다.”

불과 몇 달 사이다. 올해 초 외국 기자들과 만났던 중국의 한 대학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학교에서 허가하지 않았다는 답이 왔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선 교수나 연구원, 전직 대사 등을 인터뷰하려면 대부분 소속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과정이 번거롭긴 하지만 그래도 인터뷰는 대부분 성사됐다.

하지만 이번에 인터뷰를 요청하자 교수는 ‘학교 측에서 최근 규정상 질문과 답변 요지를 제출해 허가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 뒤 이후 학교 측에서 인터뷰를 불허했다는 답을 줬다.

외국 기자에게만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광둥성 광저우에서 13일 열릴 예정이었던 세계적인 지식공유 콘퍼런스 ‘TEDx(테드 엑스)’ 행사가 갑자기 취소됐다. TEDx는 미국의 지식공유 네트워크 ‘TED’(테드·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와 같은 경험을 지역사회나 조직·개인에게 제공하자는 차원에서 다른 나라에서 스스로 조직된 행사다. ‘TEDx 광저우’ 행사에는 예술, 학교 괴롭힘, 나노의학 등의 주제를 다룰 연사가 강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TEDx 광저우’ 측은 “현지 공안이 자신들에게 외국 비정부기구(NGO) 관련 법이 요구하는 사항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며 “TEDx 행사를 현지 당국이 외국의 영향력을 우려해 취소시켰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2015년 이후 장쑤성 난징, 산시성 시안 등에서 테드 관련 행사가 열린 바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발언을 패러디했다고 코미디언이 퇴출당하고, 소속사와 공연장이 거액의 벌금 등을 받는 중국이다.

지난 5월 한 코미디언이 공연장에서 입양한 유기견이 다람쥐를 뒤쫓는 모습을 얘기하며 ‘태도가 우량하고 싸우면 이긴다’(作風優良, 能打勝仗)’는 말을 했다. 시 주석이 2013년 새로운 인민군대 건설을 위해 내놓은 방침 중 일부를 인용했다.

시 주석이 중국군을 향해 말한 내용을 개가 다람쥐 쫓는 것에 비유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어떤 내용이 외부에 알려질지 모르는 외국 기자와의 인터뷰나 미국에서 시작된 강연회 등이 취소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중국 공안에 압수수색을 당한 미국 기업실사업체 민츠그룹이나 컨설팅업체 캡비전 등 굵직한 회사뿐 아니라 외국인이라면 중국에서 활동하는 데 갈수록 제약이 걸리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체감하고 있다. 인터뷰뿐 아니라 외국 기업인 등이 중국 당국자들을 만나려 해도 약속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만나도 정보가 될 만한 얘기는 피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시 주석이 중국 개혁 개방을 이끈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직접 만나는 등 대외적으로는 개혁·개방 확대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내 기업 데이터와 학술지의 외국 접근을 제한하고, 강화된 반(反)간첩법을 시행하는 등 갈수록 폐쇄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외국인은 물론 중국인조차 자칫 잘못하면 반간첩법으로 처벌받을 것을 걱정해야 돼 만남을 조심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정보·방첩 담당 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지난 1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계정을 개설해 ‘반간첩법은 모든 사회의 동원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안내문을 게시하며 공개적인 활동에 나섰다. 심지어 각 지방 정부는 주민을 대상으로 사진과 영상으로도 국가기밀을 누설할 수 있다는 내용을 부각한 강연회를 연다거나 간첩을 식별하는 방법을 담은 안내문을 배포했다. 지형·지물이나 군사기지 관련 질문을 경계하고,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귈 때 주의해야 하며, 시민들이 대간첩 활동에 적극 참여해 의심스러운 활동이 포착되면 즉시 해당 부서에 보고하라는 내용 등이다.

당장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중국 사회가 경직되고 있다. 시진핑 3연임 후 철권통치가 강화되면서 냉전 시절 중국의 대외 폐쇄주의를 뜻하는 ‘죽의 장막’이 다시 펼쳐지는 모양새다. 둔화하고 추락하는 최근 중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이에 따른 결과인가 싶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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