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강경 대응에 한발 물러선 중국…“대화 준비됐다”면서 “미국이 일으킨 풍파”
필리핀이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안경비대가 자국 선박에 물대포를 쏜 사건과 관련해 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 중국은 대화 준비가 됐다고 한발 물러서면서도 “긴장 악화의 원인은 미국”이라며 화살을 미국으로 돌렸다.
필리핀스타에 따르면 필리핀군은 13일 이번 주 초 남중국해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세컨드 토머스 숄(중국명 런아이자오) 해변에 정박한 군함 ‘시에라 마드레’에 보급 업무를 재개하겠다며 “중국군이 시에라 마드레를 제거하려 들면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에라 마드레는 1944년 미국이 건조한 폐군함이지만 필리핀 해군의 정식 함대로 편입돼 있다. 중국이 1995년 스프래틀리군도의 암초 미스치프 리프에 군사시설을 짓자 필리핀은 1999년 미스치프 리프에서 37.8㎞ 떨어진 모래톱인 세컨드 토머스 숄에 일부러 시에라 마드레를 좌초시켰다. 이후 시멘트 등으로 선박을 고정해 군사기지로 사용해 왔다. 중국이 분쟁지역 암초를 요새화하자 필리핀도 맞대응한 것이다.
이번 갈등은 중국 해안경비대가 지난 5일 시에라 마드레에 건축 자재와 보급품을 전달하려던 필리핀 해경선에 물대포를 쏘면서 시작됐다. 필리핀은 자국 주재 중국대사를 불러 항의했고, 중국 관영매체가 필리핀이 불법 자재를 운송하고 폐역함을 인양하기로 한 과거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방하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좌초시킨 시에라 마드레를 인양하라고 요구했다.
필리핀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 10일 “우리 영토에서 우리 선박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어떤 합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며 “모든 것은 중국의 상상일 뿐이고, 행여 그런 합의가 있더라도 당장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 상원은 지난 1일 중국 해안경비대의 지속적인 영해 침범과 필리핀 어민에 대한 지속적인 괴롭힘을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물대포 사건 이후 상원 일각에서는 중국과 맺은 계약 파기 등 경제보복 논의도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실효성 논란이 있다고 필리핀스타가 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남중국해 정세가 더욱 불안해지면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차기 태국 정부 등 동남아시아 주변국이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이들 국가들을 겨냥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순방 중인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12일 “미국 등 일부 세력은 남중국해에서 끊임없이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중국은 지역 국가들이 ‘막후의 검은 마수’에 대해 경계를 유지하고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주도권을 갖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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