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이 운전시켜”… ‘촉법소년’ 범죄에 악용하는 청소년들 [미드나잇 이슈]

이희진 2023. 8. 13. 21: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촉법소년, 형사처벌 받지 않아… 사회봉사·보호처분만
만 14세 미만 청소년, 처벌보다 교화에 초점 맞춘 것
미성년자들이 처벌 피하기 위해 촉법소년 악용하기도
비슷한 범죄 계속되자 촉법소년 연령 하향 여론 높아
처벌 만능주의·사회적 낙인의 부작용 우려 목소리도

전기차를 훔친 뒤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초등학생에게 이를 운전하게 한 중학생이 경찰에 체포됐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을 범죄에 악용한 것이다. 이 같은 범죄가 꾸준히 언론에 보도되면서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다만 심도 깊은 논의 없이 연령 하향에만 집중할 경우 ‘처벌 만능주의’로 흐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대전 유성경찰서는 전날 특수절도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초등학교 6학년생 A(12)군과 중학교 2학년생 B(14)군을 입건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A군과 B군은 전날 오전 대전 유성구의 한 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훔쳐서 탄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A군과 B군 외에도 중학교 3학년생 2명이 더 있었다고 한다.

무면허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A군은 전날 오전 10시10분쯤 대전 유성구 외삼동의 한 도로를 달리다 인근 주유소 앞에 있던 가격표 간판을 들이받았다. A군은 3명을 태우고 운전하던 중 대전 도시철도 1호선 유성온천역 인근에 2명을 내려주고, B군과 함께 사고지점까지 7∼8㎞가량을 추가로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촉법소년인 A군은 “호기심 때문에 차를 훔치기로 했고, 형들이 운전시켰다”며 “중3 형들은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성년자들이 본인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촉법소년을 악용한 정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나이가 가장 어린 A군을 운전시킨 것을 감안하면 촉법소년임을 이용하려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촉법소년은 성인과 달리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대신 소년부로 송치돼 사회봉사나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만 14세 미만의 경우 교화 가능성이 커 처벌보다 교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를 악용한 범죄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4월엔 촉법소년이 파출소에서 경찰관을 폭행하고 욕설을 내뱉는 영상이 온라인에 공유돼 충격을 줬다. 14세인 이 소년은 경찰관의 배를 두 차례 걷어차면서 “풀어주세요. 맞짱 한 번 까게. 맞짱 한 번 까자고. 깔래?”라며 경찰관을 모욕했다.

현재 여론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낮춰야 한다’고 본다. 설문조사 업체 메타서베이가 지난 6월 10~60대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촉법소년 제도가 청소년 범죄를 증가시킨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92.2%가 ‘그렇다’고 답했다. ‘촉법소년 범죄 형량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도 92.6%가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내용의 소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당시 “촉법 소년의 제도를 범행에 적극적으로 악용하는 사례 등으로 인해 촉법소년을 데려다가 범행을 시키는 경우까지도 있었다”며 “연령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의 경우도 프랑스는 만 13세, 캐나다 만 12세, 영국과 호주 만 10세 등 우리보다 촉법소년 연령이 어리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경기 과천시 법무부청사로 들어서며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처벌을 강조하는 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최근 “가정환경 개선이나 정신질환 치료 등 사회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채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질 수 없다”며 “현행법상 13세 소년에게 부과되는 보호처분이 형사처벌에 비해 결코 경미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오석준 대법관도 지난해 8월 후보자 신분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실제 책임능력이 갖추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소년까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고, 사회적 낙인 효과로 인한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며 연령 하향에 반대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