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 운영, 준비 부실, 주체 혼선…잼버리 파행 ‘책임’ 가린다
추경 등 총 1171억 사업비 폭증에도
기반 시설 엉망…수습비 300억까지
사전 경고 무시, 정부·지자체 무능
감사·감찰 예고…여야 ‘공방’ 예상
숱한 논란 속에 끝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두고 ‘책임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은 감사·감찰을 예고했고, 국회 유관 상임위원회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개발 지상주의’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핵심 키워드는 ‘방만 운영’이다. 잼버리조직위원회는 이번 잼버리에 총 1171억원(행사 개최 직전 기준)의 사업비를 사용했다. 잼버리 유치 전 예산은 491억원으로 계획됐지만 3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역시 간척지에서 열렸던 2015년 일본 야마구치현 잼버리 총사업비(약 395억원)의 3배 수준이다.
예산과 비교해 영지 시설은 극히 열악했다. 사업비 1171억원의 구체적 용처를 보면 조직위는 시설비(야영장 조성, 화장실·샤워실·급수대 등)로 130억원을 썼고, 전북도는 기반시설 조성(상하수도, 덩굴터널 등)과 대집회장·강제배수시설 조성 등에 265억원을 사용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썼는데 막상 행사가 시작되고 나니 폭염·배수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미흡한 준비 탓에 행사 시작 이후 거액의 ‘수습 비용’이 추가로 들어갔다. 조직위는 행사 나흘째인 지난 4일 폭염 대책을 세우기 위해 예비비 69억원을 추가 지출했다. 행정안전부는 이와 별도로 전북도에 재난안전특별교부세 30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여기에 태풍 ‘카눈’으로 지난 8일 참가자들이 새만금 영지에서 철수해 전국 각지로 흩어지면서 발생한 이동 비용과 숙식비, 문화체험 프로그램 운영비, K팝 콘서트 장소 변경에 따른 비용 등까지 고려하면 최소 300억원 이상의 ‘수습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행사 전부터 빗발친 경고를 무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023년도 여성가족부 소관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검토보고서’에서 기반시설 공사가 늦어지고, 전북도의 예산 집행률이 8.3%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여가위에서도 시설이 열악하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행사가 잘 준비되고 있다”고 일관했다.
복잡하게 꼬인 의사결정 구조가 혼란을 더 키웠다. 조직위 공동위원장은 김 장관과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등 5명에 달했다. 행사 내내 업무가 제대로 조율되지 못했다. 특히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가부는 ‘새만금세계스카우트잼버리지원특별법’의 담당 부처로, 여가부 장관은 예산과 등 사업 전반의 승인권을 갖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쟁에 치우치면 ‘책임 묻기’ 희석될 가능성도
잼버리 유치·부지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개발 지상주의’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가 새만금 개발을 위한 명분으로 잼버리를 유치하고 행사 자체는 ‘뒷전’이었던 탓에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잼버리 야영지는 ‘해창갯벌’을 새로 매립한 부지에 마련됐다. 이 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관광레저용지를 임시로 농업용지로 바꾸고 농지관리기금 2150억원(1구역 1002억원, 2구역 1148억원)을 끌어다 썼다. 야영지는 땅의 염분이 미처 빠지지 않아 나무가 자라지 못했다.
정부·지자체도 ‘개발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전북도가 2018년 발간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유치활동 보고서’를 보면, 전북도는 잼버리 유치를 두고 “국제공항 건설 및 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잼버리 영지 인근 수라갯벌에 들어설 ‘새만금신공항’도 잼버리를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다.
다만 여야가 잼버리 책임 규명을 지나치게 정쟁화하면 이 같은 문제는 희석될 우려도 있다. 개최지 선정 기준으로는 6년 전부터, 유치 추진 단계까지 포함하면 11년 전부터 준비된 행사인 만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책임 소지가 뒤섞여 있다. 조직위원장직에도 현 정부 장관이 3명, 야당 인사가 2명이다. 여야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선택적 책임 추궁’에 돌입한다면 제대로 된 책임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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