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카르텔이 카르텔 구조 깰 수 있을까
요즘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조심스럽다.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에 대하여 맺는 협정이나 이 협정을 통해 형성하는 독점 형태’를 의미하는 경제 용어로 등재되어 있다. 경제 외적으로도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부당한 이권을 챙기기 위해 담합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이 담합은 대개 특권을 가지거나 상대적으로 우세한 행위자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지난 7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차관 임명식 오찬에서 “우리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다”라고 언급하며 카르텔과 전쟁이라도 선포한 듯했다. 다음날에도 윤 대통령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공정하고 정당한 보상 체계에 의해서 얻어지는 이익과 권리가 아니라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구축해 이권을 나눠 먹는 구조는 철저히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카르텔은 민주주의 사회를 좀먹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과연 현 정부가 ‘반(半)카르텔’도 아닌 ‘반(反)카르텔’ 정부라고 할 수 있는가. 게다가 이토록 심각한 문제를 정부와 여당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장관을 비롯한 정부 요직과 의원들이 입시 카르텔이나 연구·개발 카르텔 등을 언급하며 교육계를 공격했다. 이어 시민단체와 노조에까지 이 용어를 적용하며 앞다투어 남발해 카르텔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생기고 있다.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카르텔은 본질적으로 강자들의 지배 도구로 작동하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것은 정계와 관계의 전·현직 고위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경제 부처와 국세청 관료들이 퇴직 후 재계로 옮겨 앉는 관행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법조 카르텔은 더 심각하다. 한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법 집행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의 ‘2023 번영지수’ 보고서는 167개 대상 국가들 중 한국의 사법체계 신뢰지수가 155위라고 발표했다. 실제 법조계 전관 예우에 따른 이권 카르텔 시장은 연간 7조7000억원(2021년)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이 과연 그 카르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 정부가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그 반증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규정한 ‘민주 사회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부패 카르텔’의 정점에 법조 카르텔이 있음에도 말이다.
카르텔은 정당 정치에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카르텔은 ‘문서’라는 뜻의 라틴어 카르타(Carta)에서 유래해 중세에서 국가 간 휴전 협정서를 의미하는 등 서면 조약을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정당 정치가 정착하면서 카르텔은 여러 정당들이 공동 목표를 위해 연합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의회에 진출한 정당들이 담합하여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해 신생 정당의 의회 진입을 억제하는 구조 혹은 그 담합’을 지칭한다.
카르텔 체제가 신생 정당에 작동하는 방식은 주로 공영방송 접근과 국고 보조금의 제한이나 정당 활동의 규제 등이다. 우리나라처럼 양당 중심 정치가 전개되면서도 항상 제3당의 도전을 받는 나라에서 카르텔 현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물론 겉으로는 양당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거나 정당 관련법 개정 논의에서 양대 정당에 불리한 개혁에는 함께 반대하며 합의를 이루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극단적 대립 양상이 사실상의 카르텔 현상을 보이지 않게 하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카르텔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이재명 대표는 최근 검찰에 출석해 “최악의 카르텔은 검사 카르텔”이라고 했다. 역시 맞는 말이다. 이 대표의 말처럼 최고 권력 기관이 되어버린 검찰의 카르텔이 가장 강력하다. 하지만 카르텔 현상은 이미 곳곳에 산재해 있고, 오랜 기간 양대 정당의 하나로 활동해 온 더불어민주당이 형성한 카르텔도 작다고 할 수 없다. 강한 카르텔이 약한 카르텔을 공격하는 것이 현재의 카르텔 전쟁이다. 마치 자신은 카르텔이 아닌 양 언술을 펴지만 실상은 순종하지 않는 카르텔을 장악하거나 복종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
카르텔을 형성할 수 없는 약자나 개혁적 도전 세력이 카르텔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적절한 수사법이고, 이들이 연합한다면 그건 카르텔이 아니라 카르텔을 타파하려는 연대 행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카르텔끼리 서로를 공격하는 수사로 사용하는 카르텔 개념은 양날의 칼이자 제 발등 찍는 도끼가 될 수 있다. 카르텔로 카르텔 구조를 타파할 수 있을까.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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