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본다
산불에 타면서
꿈적 않고 웅크린 까투리의 잿더미
요렁조렁 들추다 보니
꺼병이 서너 마리
거밋한 날갯죽지를 박차고 후다닥 내달린다
반 뼘도 안 되는
날개 겨드랑이 밑의 가슴과 등을 두르는 데서
살아남은 걸 보며
적어도 품이라면
이 정도쯤은 되어야지, 입안말하며
꽁지 빠지게 줄행랑치는 뒷덜미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본다
조성국(1963~)
시인의 거처 근처에 산불이 났나 보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살아 움직이는 거라곤 없다. 불의 무서움이다. 산에 든 시인의 발자국만 선명하다. 심란한 마음으로 요모조모 살피던 시인의 눈에 “웅크린 까투리의 잿더미”가 들어온다. 불에 탄 까투리를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으리라. “요렁조렁” 잿더미를 들추자, 그 아래 숨죽여 있던 꿩 새끼 “서너 마리”가 어미 “날갯죽지를 박차고 후다닥” 달아난다. 용케 살아남은 꺼병이들이 “꽁지 빠지게 줄행랑”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들이 불길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어미는 온몸으로 새끼들을 감쌌으리라. 불길이 깃털을 태우고 몸을 살라도 새끼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죽어갔으리라. 그 모습을 지켜본 새끼들은 또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미의 숭고한 희생에 시인은 “적어도 품이라면/ 이 정도쯤은 되어야지” 입안말을 한다. 감히 말을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다. 한데 어미도 없이, 새끼들은 또 어찌 살아갈까. 참으로 혹독한 삶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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