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나도 당할 수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묻지마 흉기 난동’

허시언 기자 2023. 8. 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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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 잇따라 발생
“내가 당할 수도” 불안 확산
유사범죄·살인 예고 글 난무

국제신문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최근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범죄가 연이어 발생했어요. 모르는 사람이 라노에게 일방적으로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흉기를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무섭고 불안해요. 팀원 판다도 라노와 마찬가지라는데요. 자꾸만 ‘혹시 저 사람도?’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요. 버스를 타고 가거나, 길을 걷는 등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언제든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는 것. 누군가 가방 속에 손을 넣고 맞은편에서 걸어오는데 흉기를 꺼낼까봐 조마조마 했었다고 라노에게 말해줬어요. 연이어 발생한 ‘묻지마 범죄’ 때문에 ‘나도 언제든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이 지난 10일 오전 검찰로 송치됐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에서 조선(33)이 지나가던 행인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이 사건으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서 이상동기 범죄가 또다시 일어났습니다. 최원종(22)이 차를 몰고 서현역 앞 인도로 돌진해 행인 여러 명을 쳤습니다. 차에서 내린 뒤에는 서현역과 붙어있는 백화점인 AK플라자로 이동해 흉기를 휘둘렸죠. 이 일로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게 됐습니다.

잇따라 발생한 ‘묻지마 흉기 난동’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일 처음 발생한 신림역 사건이 방아쇠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범행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범죄는 범인이 사전 계획과 생각, 환상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순간 실행에 옮깁니다. 신림역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사건이 범행 의사는 있지만 실행은 하지 못했던 범인에게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것. 자신이 가진 환상에 부합하는 범죄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많은 범인들이 ‘나도 할 수 있다’ ‘내 처지를 저런 방식으로 사회에 알릴 수 있다’ 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의 원인을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백석대 김상균(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은둔형 외톨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타인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풀어나가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풀어나갈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불안과 처지에 대한 비관을 전부 사회나 주변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 김 교수는 “사회적인 고립은 범행을 촉발시킬 가능성을 높인다”고 전했습니다.

부경대 함혜현(경찰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인들의 이상 성격이 사회적 고립을 만들었고, 고립된 상태가 지속되면 범죄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성격적 문제가 스스로를 고립된 상태로 만들고, 고립된 상태가 지속되면 외부에서 개입해 문제를 해결할 시기를 놓치게 합니다. 함 교수는 “이상 성격은 사회에서 용인되는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없으니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한다”며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않아 옆에서 조언해 줄 사람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신림역 인근 흉기난동 사건 현장. 연합뉴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흉기 난동은 신림동 사건을 시작으로 유사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지난 4일에는 대전의 한 고교에서 20대 남성이 한 교사에게 칼을 휘둘렀고,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는 흉기를 들고 배회하던 20대 남성이 체포됐습니다. 온라인에서는 194건의 ‘살인 예고 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경찰은 작성자 65명을 검거하고 3명을 구속했습니다.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52.3%인 34명이 10대 청소년으로 밝혀졌죠. 과거에도 무차별 흉기 난동 사고는 종종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처럼 빈발한 적은 없었죠. 온라인에서 살인 예고 글을 올리는 일도 가끔씩 있어왔지만, 이런 식으로 봇물 터지듯 난무하고 있다는 점도 전례 없는 현상입니다.

전문가들은 살인 예고 글을 올린 피의자들이 대부분 10대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 비행·범죄의 연령대가 낮아지는 문제와 일맥상통하다고 봤습니다. 사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 사회에 분노하고, 사회에 분노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함 교수는 “청소년기에 사소한 비행을 제지하지 못해 청소년들의 법의식이 낮아졌다”며 “교사와 교권에 대한 존엄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청소년기에 저지르는 동물 학대, 폭행, 비행, 학교폭력을 차단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봤죠.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법의식을 배우고 문제행동을 교정하는 공간인데 교권이 무너지며 사전에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해졌다는 것. 함 교수는 “교권 추락으로 인해 청소년기에 문제 행동을 교정할 수 없게 됐다”며 “청소년들의 도덕성을 형성할 수 없도록 사회가 방치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김 교수는 “청소년들이 법의식이 부족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살인 예고 글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살인예비·음모·미수가 적용돼 높은 형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 형벌의 위화 효과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봤죠. 거기에 더해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인 청소년들이 사람들의 반응에 지배와 통제 욕구를 충족하며 희열을 느낀다고 전했습니다. 김 교수는 “보통의 청소년들은 살인 예고를 글이나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며 “분노와 현실 불만에 쌓인 청소년들이 저지른 행동인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지자체에서 범죄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잘 발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범죄 발생 이후 대응에만 집중하지 말고, 범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사전에 찾아내 이를 개선하고 치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김 교수는 “은둔형 외톨이, 장기 실직자, 알콜 중독자 등 사회와 교류가 거의 없는 사람들을 잘 발굴해 치료하고 개선시켜 사회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함 교수는 “실제로 지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지자체와 지역 주민이 제일 잘 알고 있다”며 “민간 중심으로 범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 교수는 “동물 학대는 흉악범죄와 연쇄살인의 전조증상 중 하나”라며 “동물 학대범 리스트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함 교수는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이 사건에 대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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