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유급 병가,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3년 반 전. 지금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코로나19 유행 초기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회사나 학교, 심지어 방문했던 식당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무조건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 머물렀다. 회사에서도 눈치는 줄지언정 출근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확진이 되면 입원·격리 기간 동안 정부가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제공한 사업주에게도 일부 비용을 지원했다. 이내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는 정부의 5대 생활 방역수칙 중 하나가 되었다. 의심 증상이 있지만 노동자들이 쉽사리 일을 중단할 수 없거나 작업장 내 방역 조치가 미흡했던 콜센터, 물류센터 등에서 유행이 시작되어 지역사회로 급속히 확산되자, 병가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누려보지 못한 ‘호사’였다.
하지만 지난 6월1일부터 코로나19 감염과 관련한 격리 ‘의무’가 사라지고, 5일 격리 ‘권고’ 조치가 시행되면서 일터의 시계는 빠르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요즈음 코로나19 감염은 경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지만, 질환 초기 심한 발열이나 상기도 증상을 경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최근에 지인 두 명이 각각 코로나19에 감염되었는데 두 명 모두 첫 이틀 동안 발열과 인후통이 심했다. 한 명은 병가를 사용하여 쉴 수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은 그럴 수 없었다. 그나마 회사에서 출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재택근무를 했다.
국내에서 유급 병가는 법정 의무가 아니라 노사협약이나 취업규칙에 따라 정해지는 ‘기업 복지’ 프로그램이다. 물론 병가 제도가 있어도 회사 눈치가 보여서, 혹은 일손이 달려서 병가 사용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어쨌든 유급 병가 제도가 있으면 원인이 계절독감이든 코로나19든 아프면 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유행 동안에는 이런 제도가 없는 회사에 다녀도 감염병예방법 덕분에 최소한 코로나19 감염에 대해서는 병가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유급 병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병가로 인한 결근일 수가 가장 적다. 한국 노동자가 유독 건강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픈데도 출근하는 ‘프리젠티즘’은 노동자의 건강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 안전사고로 이어지거나 업무 효율성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업무 외 상병으로 일을 할 수 없을 때 일정 기간 소득을 보장해주는 상병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논의가 급진전하면서 2022년 7월부터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상병수당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유급병가 제도가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 상병수당 제도가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짧게는 4일, 대개 7~14일의 ‘대기 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은 기업이 아픈 노동자의 생계를 책임지고, 이 기간이 넘어가면 상병수당 제도를 통해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국내 상병수당 시범사업도 이런 개념에 따라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유급병가 제도의 법제화는 추진되지 않고 있다. 이미 작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를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과감하게 ‘불수용’되었다.
예전에 누군가 코로나19 유행을 경험하며 우리 사회가 얻은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아프면 쉴 권리’의 인정과 상병수당 제도의 시작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당장은 코로나19에만 적용되지만, 이제 아프면 쉬는 것이 당연한 ‘규범’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데 지금 생각해보니, ‘코로나19 퍼뜨릴까 봐 집에 있으라고 마지못해 허락해준 것’을 ‘아프면 쉴 권리’가 인정된 것이라고 나 혼자 착각했던 것이다.
일하다 죽지나 않으면 감지덕지해야 하는 마당에, 내가 경솔했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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