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새만금 잼버리
국민과 150여개국 청소년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으려면
프로젝트 끝 장은 제대로 쓰여야
정확한 진상 규명과 진솔한 사과
관료의 책임지는 태도를 촉구한다
잼버리(Jamboree·유쾌한 잔치)가 끝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지 않았고 유쾌할 수 없었던 10여일이 지났다. 방송 카메라는 때때로 스카우트 대원들의 웃는 모습을 비췄지만, 보는 이들은 미안했다. BBC 뉴스의 기자가 어두운 얼굴로 ‘한국의 역량 부족’을 말할 때는 참담한 심정마저 들었다. 해외 여행담에 종종 등장하는 ‘그리운 한국의 깨끗한 화장실’을 왜 새만금에서는 볼 수 없었는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새만금 잼버리 프로젝트는 총 4부작의 드라마다. 1부는 새만금이 잼버리 개최지로 선정되고 간척지 매립과 기반 공사를 시행하는 이야기다. 제목을 붙인다면 ‘간척지를 넓혀라-작전명 잼버리’쯤 될까? 수도권에 자원이 집중된 나라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는 지방정부가 개발 명분으로 막대한 국가 예산을 끌어오는 데 잼버리라는 국제 행사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각본이다.
이 기획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것인가는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에 잘 나타나 있다. 수라, 비단에 놓인 수처럼 아름답다는 이름을 가진 새만금의 갯벌이 개발 사업으로 죽음의 땅이 되고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물길이 트여 살아나는 과정의 기록이다. 저어새, 도요새, 쇠검은머리쑥새…. 이름을 다 기억하기 어려운 수많은 새와 조개들, 크고 작은 게들, 고라니,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식물들이 살아가는 갯벌에 콘크리트 방조제를 쌓고 바닷물을 막았다. 땅은 굳어지고 물을 잃고 죽어간 생명들의 사체로 뒤덮였다. 잼버리가 개최된 해창갯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업을 더 넓게 더 빨리 진행하기 위해 관광레저용지를 농지로 바꾸는 편법도 동원됐다.
2부는 ‘야영장을 지어라-작전명 서바이벌 게임’. 스카우트 대원들이 잠자고 쉬고 활동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는 일이다. 화장실도 샤워실도 당초 구상의 절반 만 설치됐고, 샤워실 커튼은 언제나 밀고 들어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8월의 폭염을 피하기 위한 덩굴터널에는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줄기들만 듬성듬성 심어져 되레 온실이 되었다. 배수되지 않은 땅 여기저기 웅덩이가 파였고 모기와 화상벌레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야영은 그런 것 아닌가.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며 청소년의 호연지기를 키우는. 이번 야영의 구호는 ‘서바이벌, 생존게임’이다.
3부는 ‘잔치는 드라마틱하게-작전명 위기극복’. 잼버리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온열환자가 발생했지만, 주최 측은 K팝의 열기가 낳은 부작용이라고 해명했다. 화장실, 샤워실, 식사, 의료시설, 휴식공간, 편의점 등 모든 것이 문제로 나타났지만, 대회 최대 고객인 영국과 미국이 떠나고 휴가 간 대통령의 수습 메시지가 떨어진 후에야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얼음물이 공급되고 냉동차가 오고 화장실 청소 인력이 확대돼 대원들이 견딜 만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갑자기 소집돼 폭염 속에서 종일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된 공무원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성범죄 사건이 발생했지만, 이 문제에서라도 실력을 보여줘야 했던 여성가족부 장관은 오히려 ‘경미함’을 운운해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 곧이어 나온 ‘위기극복’ 발언은 힘없는 부처의 책임자에게 느꼈던 작은 연민마저 지워버렸다.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 예고에 서둘러 짐을 싸고, 대원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원래 드라마의 명장면은 애드리브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K팝 스타들이 출동한 빗속의 콘서트가 반전카드로 등장했지만, ‘야영이 여행이 되었다’는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의 말은 오래 남을 것이다.
이제 4부가 남았다. 이 프로젝트의 공과를 따지는 일이다. 지금까지 국내외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준비되지 않은’ ‘예고된 실패’ 정도가 결론이 될 것 같다. 극심한 지역 불균형과 무모한 개발주의, 책임감도 전문성도 없는 관료들, 국민보다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관(官)이 요구하면 민(民)은 따라야 한다는 권위주의는 당연히 포함될 소재들이다.
2023년 한국의 새만금 잼버리는 실패한 프로젝트임이 분명하지만, 아직 미완성이다. 벌써부터 몇몇 정치인들이 들고 나오는 ‘여가부 폐지’ 주장은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공론장을 진흙탕으로 만들려는 것인가. 너나없이 잼버리의 성공을 기원한 국민들과, 용돈을 모아 멀리 동아시아의 끝자락까지 찾아온 150여개국 청소년들에게 더는 부끄럽지 않으려면,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장은 제대로 쓰여야 한다. 정확한 진상 규명과 진솔한 사과, 관료들의 책임지는 태도를 촉구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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