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사성향 보도 부당한 압력" 조선 편집국장 "판결 지나쳐"
"고3때 글 친노 가까워 정진석 유죄 판결 영향" "한나라당 적개심"
서울중앙지법 "과거 SNS 정치성향 단정 위험, 판결과 무관 인신공격"
편집국장 "개인성향 판결 영향 미치는 문제 중요"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조선일보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자 명예훼손 사건 징역형을 선고한 판사의 과거 글과 SNS를 문제삼아 이번 판결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목소리를 보도해 논란이다. 이어 국민의힘도 판사의 성향과 판결을 연결지어 비난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판결과 무관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과거 게시글이나 SNS 활동으로 정치성향을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같은 문제제기가 재판과정에 대한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사법권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무리한 판결이어서 그 배경을 취재한 것이며 개인의 정치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중요해서 보도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지난 12일자 10면 머리기사 <정진석 선고로 다시 제기된 판사 '정치 성향 판결' 문제>(온라인 기사 제목은 [단독] 정진석 선고로 다시 제기된 판사 '정치 성향 판결' 문제)에서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판사가 지난 10일 사자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정진석 의원의 명예훼손 사건 선고공판에서 징역 6월을 선고하자 판사의 성향을 문제삼았다.
조선일보는 박 판사가 △고3 때인 지난 2003년 10월 작성한 글에 '만일 그들(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싶으면 불법 자금으로 국회의원을 해 처먹은 대다수의 의원들이 먼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내용이 나오는 사례 △박 판사가 모 대학 신문사에서 활동하던 2004년 3월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군 장갑차 사망 여중생 촛불 추모행사'에 참석한 뒤 쓴 '후기' △군 법무관으로 재직할 때인 2014년 트위터 활동을 하면서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비판적인 기사와 글을 찾아 '좋아요'를 누른 사례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법원 관계자가 “박 판사의 정치 성향은 친노(親盧)에 가깝고,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거론한 '정진석 사건'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다른 법조인이 “'김명수 대법원' 들어 그런 기본이 무너졌다”고 말했다고도 전하면서 김명수 대법원과도 연결했다.
TV조선도 같은날 저녁메인뉴스 <뉴스9> '법조인 대관 삭제한 정진석 실형 판사'에서 “법조인 인명사전 격인 법조인 대관에 박병곤 판사를 검색해봤더니, 검색이 안 된다”며 “단독으로 취재해보니, 이 사건을 배당 받은 박 판사가 선고를 앞두고, 자신의 개인정보를 삭제해달라고 법조인 대관을 관리하는 곳에 요청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이어 “지금도 판사 3000여명, 검사 2000여명 등 현직 판검사들이 대부분 등록되어있는데, 박 판사만 이를 삭제한 것”이라며 “법조계 안팎에선 벌금 500만 원 형인 검찰 구형보다 무거운 실형을 선고하면서, 과한 형량이 논란이 될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방송했다.
이어 국민의힘도 판사성향을 문제삼고 나섰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13일 논평에서 박 판사의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것으로 보이는 노 전 대통령 탄핵 관련 글을 들어 “한나라당에 대한 적개심과 경멸로 가득 차 있다”며 “이번 징역 6월의 판결은, 결론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판사로서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로서, 또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정치적 견해를 그대로 쏟아낸,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단정했다.
전 원내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로서 중립적인 판결을 내리기 어려웠다면, 박 판사 스스로 재판을 회피했어야 한다”며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동훈 장관이 과거 노무현재단 계좌를 불법 추적했다'고 허위 주장해 기소된 사건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점과 비교하더라도 이번 징역 6월의 선고는 현저히 형평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어 이 같은 비판에 반박하고 나섰다. 이화송 서울중앙지법 공보판사가 미디어오늘에 전한 '최근 형사판결 선고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입장'을 보면,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현직 국회의원 관련 형사사건의 제1심 판결 선고 이후 재판장의 정치적인 성향을 거론하며 해당 판결과 재판장에 대하여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관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판결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넘어서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에 대하여 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과도한 인신 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조선일보 보도를 빗대어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거론하고 있는 게시글의 경우 게시글에 나타난 작성시기 등을 고려하면, 그 일부 내용만을 토대로 법관의 사회적 인식이나 가치관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고, SNS 일부 활동만으로 법관의 정치적인 성향을 단정짓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조인대관 등재정보를 삭제했다는 TV조선 보도내용을 빗대어 서울중앙지법은 “해당 재판장이 사건 판결 선고 직전에 한국법조인대관의 등재정보를 삭제했다는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한국법조인대관은 법조인의 개인정보와 프로필을 제공하는 유료 DB로서, 법관을 비롯한 모든 법조인이 등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등재자도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등재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어서, 해당 재판장의 정보 등재 어부는 이 사건 판결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일부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거론하는 문제들을 근거로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런 방식의 문제 제기는 해당 재판장뿐만 아니라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모든 법관의 재판절차 진행 및 판단 과정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의 독립이나 재판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무리한 판결의 배경을 취재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선우정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13일 저녁 조선일보 보도가 '인신공격성 비난' '재판과정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라는 서울중앙법원 반박을 어떻게 보느냐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SNS메신저 답변에서 “판결이 무리하다면 왜 무리한 판결이 나왔는지 배경을 취재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라며 “이번 판결은 판결의 상식적 진폭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선우정 국장은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무리한 판결을 하면서 내 성역만큼은 지켜달라고 할 수 없다”며 “남을 비판하는 기자도 여론의 거친 비판에 늘 노출돼 자신의 기사를 책임지고 있다. 판결도, 판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우정 국장은 “개인의 정치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한국 법원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며 “이 기자는 그 차원에서 기사를 작성했고 저 역시 그 차원에서 게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선우정 국장은 과거 글이 정치성향을 단정하고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는 법원의 반론에 “확신은 할 수 없다. 법원도 무슨 확신으로 저렇게 단정하는지 의문”이라며 “우리는 무리한 판결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정황을 제시한 것”이라고 답했다. 기사를 쓴 이세영 기자는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판결에서 정진석 의원이 2017년 9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 여사는 가출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혼자 남아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을 올린 것을 두고 “유력 정치인인 정 의원은 구체적 근거 없이 거칠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형이유에서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들이 큰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이고, 노건호 씨와 권양숙 여사는 수사 과정에서 정 의원에 대한 엄벌을 바란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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