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무너지는 사회…‘사회’운동의 책임이 없을 리 없다
같이 사는 이가 초등학교 교사다. 최근 불거진 교사·아동학대 문제에 심란함을 감추지 못한다. ‘사건’이 시작되면 교사는 법적 개인이 된다. 변호인과 법적으로 유효한 증거만이 의미를 가진다. 사태에 대해 ‘교권’ 강화나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법 개정 등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심란함의 요체는 우리가 논하는 대안이 오로지 법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복잡하게 꼬인 사회적 갈등이 몇몇 법으로 구제되리라는 믿음은 매끄러워 의심스럽다. 법 중심의 세계에서는 학교를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더욱이 법을 통한 정의의 회복 앞에서 ‘학교공동체’라는 말은 낭만적일 뿐이다.
교사의 죽음 외에도 수많은 죽음이 이어진다. 여러 사회적 위험들 앞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공적 영역으로서 치안, 사적 영역으로서 변호인이나 보험 외엔 없는 듯하다. 거세지는 삶의 불안 앞에서 연대, 신뢰, 공동체, 공론장, 돌봄 등 사회적인 것은 무용하다. 어느새 그것들은 언어로만 남겨졌다. 허망한 죽음의 반복 속에서 무엇보다 버거운 건 언젠가부터 사회 그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다.
억압적 국가와 자본의 힘 사이에서 ‘시민사회’라는 사회적인 공간을 발명해낸 진보적 시민운동도 ‘사회의 실종’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00년대 진보적 시민운동은 대항폭력을 동원하는 전통적인 비합법 투쟁을 포기했다. 대신 법을 활용한 합법공간을 창출했다. 제도화 전략은 수많은 성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운동의 목적 자체를 법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결과를 낳았다. 대중투쟁은 입법쟁취, 개악저지를 목표로 국회 회기와 입법 전망에 따라 조정·결정되었다. 의회에 대한 영향력 확보와 정치권 압박이 무엇보다 강조되었다.
사회적 문제가 법의 문제로 치환·축소되며 진보적 시민운동의 운동성은 법과 정치의 논리에 종속되어갔다. 동시에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위축되고 활동가·전문가와 시민 간 괴리도 깊어졌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것은 진보적 시민운동에서 법적 성취 뒤에 따라오는 것이거나 법적 쟁취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법을 통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정당하다. 하지만 운동의 대안적인 전망이 법의 테두리를 확장하는 제도화로 주조될 것이라는 믿음은 사회적 관계들의 형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법은 죄가 없다. 사회적인 것의 자리를 법이 대신할 수 없을 뿐이다. 운동은 사회적인 것들을 복원해야 한다. 법으로 형성된 제도들은 결국 사회적 관계의 뒤엉킴 속에서 유지·변형·확장·축소된다.
운동은 ‘정치의 과잉’에 빠져 사회적 연대의 힘을 소진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과소’에 천착하여 사회적 관계들을 구명해야 한다. 무너지는 사회 앞에 ‘사회’운동의 책임이 없을 리 없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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