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서 동떨어진 ‘정당방위’법… “약자 방어권 고려해야”

안경준 2023. 8. 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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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흉기 난동'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정당방위의 범주가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당방위 성립 여부를 판단한 국민참여재판을 분석해 보니 시민들은 약자가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13일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8∼2019년 정당방위 성립 여부를 판단한 국민참여재판 1심 판결 51건 중 정당방위 혹은 과잉방위를 인정해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경우는 총 6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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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9년 국민참여재판 51건 중 무죄 6건 그쳐
남성 중요부위 찬 女 버스기사 등
정당방위 8건 중 6건 상대적 약자
협박男 가슴 과도로 찌른 여성은
‘불가벌적 과잉방위’ 인정되기도
“피해자 시각서 범죄상황 살펴야”

최근 ‘흉기 난동’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정당방위의 범주가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당방위 성립 여부를 판단한 국민참여재판을 분석해 보니 시민들은 약자가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법조계에선 국민 정서를 반영해 과잉방위라도 행위자가 약자라면 적극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8∼2019년 정당방위 성립 여부를 판단한 국민참여재판 1심 판결 51건 중 정당방위 혹은 과잉방위를 인정해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경우는 총 6건에 불과했다. 법원 정당방위 인정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세계일보가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찾은 최근 3년간 무죄 판결문 2건을 포함해 정당방위가 인정된 8건을 분석해 보니, 이 중 6건은 상대방이 먼저 흉기 등을 사용했거나 정당방위 행위자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경우였다.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한 백화점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구급대원들과 시민들이 피해자들에게 응급조치를 하고 있다. 뉴스1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미경)는 2021년 6월 여성 버스 기사가 남성의 중요 부위를 무릎으로 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은 2019년 버스 배차 문제로 다투다, 남성이 먼저 기사의 몸통을 배로 치는 ‘배치기’를 했다. 이에 기사는 남성의 멱살을 잡고 무릎으로 중요 부위를 찼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 중 6명이 정당방위로 인정했다. 남성은 키 169㎝에 몸무게 72㎏인 반면, 기사는 키 153㎝의 왜소한 체구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폭행 행위는 피해자의 계속되는 폭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흉기를 사용한 경우에도 무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었다. 무죄 판결 6건 중 4건은 죽도, 양주병, 칼 등을 사용한 경우였다. 수원지법 형사15부(재판장 조휴옥)는 지난해 1월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50대 동거인 B씨는 “친오빠 집에 머무르다 왔다”는 A씨의 말을 믿지 않고, 오후 11시50분쯤 A씨의 친오빠 집으로 향했다. B씨가 “너희 집 식구 모두 죽이겠다”며 흉기를 챙겨 가자 A씨도 과도를 챙겨 차에 탔다. B씨가 차 안에서 위협을 이어 가자 A씨는 B씨 가슴을 과도로 찔렀다. 배심원 7명 중 6명은 형법 제21조 3항의 ‘불가벌적 과잉방위’로 인정했다. 야간이나 공포, 경악 등의 불안한 상태에서 적극적인 공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재판부와 배심원의 판단이 엇갈려 최종 유죄로 확정된 경우에도 배심원은 약자의 편을 들었다. 전주지법은 2010년 C(29)씨의 눈 부위를 때린 혐의로 기소된 D(45)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배심원 7명은 모두 정당방위로 보고 무죄 의견을 내놨다. C씨는 오후 11시30분쯤 지인과 함께 “D씨가 자신의 장모를 성폭행하려 했다”며 따지러 왔는데, 배심원은 늦은 시간 중년의 남성이 젊은 남성 두 명을 상대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법과 제도가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불가벌적 과잉방위는 실제 인정된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영림 법무법인 선승 변호사는 “불가벌적 과잉방위의 경우 법조인들은 사문화된 규정으로 인식하지만, 배심원들은 그런 배경지식이 없어 상식적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범죄 상황을 피해자 시각에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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