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지상낙원이 폐허로… “나무 뿌리들 땅속서 불타는 중” [뉴스 투데이]

이지안 2023. 8. 13. 19: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마우이섬 화재 닷새째… 사망자 93명으로
美 100년來 ‘최악 산불참사’
엘니뇨·가뭄 탓… 여의도 3배 불타
수색 시작… 재건 비용 7조원 추산
85% 진화에도 잔불 재확산 우려
주 정부 초기 대응 실패 논란
사이렌도 안 울려… 檢 “조사 착수”
한국인 인명피해 없어… “대피 지원”

바다 위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옛 하와이왕국 수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이 닷새 만에 제도(諸島)는 물론 미국 최악의 자연재해 참사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큰 피해를 남기고 있다.

하와이 당국은 화재 닷새째인 12일(현지시간) 오후 10시30분 기준 사망자가 93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에서 100여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산불 참사다. 2018년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번진 산불로 8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가 1918년 이후 근래 가장 큰 참사였으나, 이번 하와이 산불 사망자가 이를 뛰어넘은 것이다.
바다는 푸르른데… 잿빛 변한 휴양지 옛 하와이왕국의 수도이자 유명 휴양지인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의 라하이나가 11일(현지시간) 산불이 휩쓸고 간 뒤 잿더미로 변해 황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8일 시작된 산불은 기후변화 영향으로 건조해진 토양, 수백㎞ 떨어진 곳에 있던 허리케인 도라가 일으킨 강풍 탓에 빠르게 번지면서 사망자만 93명에 달하는 최악 참사를 낳았다. 라하이나=EPA연합뉴스
하와이주 역사에서도 이번 산불은 최악의 자연재해 참사다. 지금까지 주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재해는 1961년 발생한 지진 후 해일(쓰나미)로, 사망자 61명을 기록했다. 마우이섬 서부 지역에 대한 실종자·시신 수색이 이제 막 시작되면서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이날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작업이 계속 중”이라며 “사망자가 상당히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시신을 찾는 수색견들은 아직 수색 예정 면적의 3%밖에 돌지 못한 상황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마우이 카운티 경찰서장이 밝힌 실종자 수(10일 기준)는 1000명에 육박했다. 아직 섬 전체 통신망 중 30% 정도가 먹통인 상황이라 실종자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긴 이르다는 분석이 있지만, 불에 탄 가옥이나 건물 등에 대한 수색이 본격화하면 인명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인명피해뿐 아니라 물적 피해도 역대급 규모를 기록 중이다. 태평양재해센터(PDC)와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산불 피해 조사 내용에 따르면 마우이 중심 라하이나 지역에서 화재로 파손되거나 전소한 건물은 11일 기준 2207채에 달했다. 화재 피해를 본 건물의 86%는 주택으로 조사됐다. 라하이나의 주택 대다수가 목재로 이뤄져 특히 불길에 취약했다고 미 CNN방송은 전했다.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사흘째 산불이 확산하는 가운데 10일(현지시간) 서부 해변 마을 라하이나에 차량 수십 대가 불에 타 있다. AFP연합뉴스
라하이나의 화재 면적은 총 2170에이커(8.78㎢)로, 여의도 면적(2.9㎢)의 약 3배에 달하는 규모로 추산됐다. 이는 라하이나의 피해 상황만 반영한 수치로, 풀레후·키헤이, 쿠라 등 산불이 진행 중인 섬 내 다른 지역 피해를 합산하면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 산불에 따른 재건비용은 55억2000만달러(약 7조3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FEMA는 계산했다. 그린 주지사가 12일 밝힌 피해 규모도 60억달러(약 7조9920억원)에 이르렀다.

산불 장기화 가능성도 제기됐다. 11일 기준으로 라하이나 지역의 불길은 85%가량이 진압된 상황이지만, 땅속 곳곳에 남은 잔불이 언제든 다시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우이섬의 화재 상황을 촬영 중인 사진작가 대니얼 설리번은 12일 CNN에 “나무뿌리들이 여전히 땅속에서 불타고 있다”며 “현재 토양 온도가 82∼93도로 올라 있기 때문에 언제든 불이 튀어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산불의 원인으로 어김없이 기후변화가 지목되고 있다. 하와이 역시 엘니뇨(적도 부근 수온이 올라가는 현상) 등의 영향에 따른 가뭄이 최근 몇 주간 이어지면서 토양이 매우 건조해졌고, 쉽게 불이 붙고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 통합가뭄정보시스템(NIDIS)의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주 마우이섬의 83%가 ‘비정상적으로 건조한’(D0), ‘보통 가뭄’(D1), ‘심각한 가뭄’(D3) 단계였다.

이런 상태에서 화재가 처음 시작된 8일 하와이 근처를 지나간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으로 최고 시속 129㎞의 돌풍이 불면서 산불은 순식간에 마을 전체로 번져나갔다.
지난 8일(현지시간) 대형 산불이 발생한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라하이나에서 교회와 선교회 건물이 불길에 휩싸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주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와이주는 쓰나미 등 갑작스러운 자연재해에 대비해 마우이섬 내 80개를 포함해 주 전역에 약 400개의 옥외 사이렌 경보기를 갖추고 있지만, 8일 마우이섬에서 화재 경보 사이렌이 한 대도 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하와이주 검찰은 주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살피는 “종합적인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현지 전력회사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하와이 전력 수요의 95%를 공급하는 하와이 일렉트릭이 허리케인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전력 차단을 하지 않아 불길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2일 보도했다.

한국인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는 영사를 파견해 여행객 등의 대피를 지원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