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에서 고추 말리기?…웃음거리 된 지방공항 9개 더 짓겠다는데

지홍구 기자(gigu@mk.co.kr), 우성덕 기자(wsd@mk.co.kr), 송은범 기자(song.eunbum@mk.co.kr) 2023. 8. 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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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양양공항 만년적자
예천공항은 아예 문 닫아
“지자체가 직접 짓고 운영해야”
3천억 들인 영암F1 경기장
연 수입은 30억 원대
동호인·기술 테스트 용으로 전락
2조원 든 ‘3대 문화권 사업’
주요사업 대부분 적자
2002년 개항 이후 만년 적자 수렁에 빠진 양양국제공항. 이 곳을 모기지공항으로 둔 플라이강원은 400억 원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 5월 법원에 회생신청을 했다. [사진 제공 = 한국공항공사]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아쉬움 속에 마무리된 가운데 이번 행사가 지방자치 부활 이후 덩치와 권한이 커진 지방자치단체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뒤 급할 때는 기업과 중앙 정부에 손을 벌리고, 책임은 외면하는 등 지자체들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1960년 5·16 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는 1991년 지방의원(기초·광역) 선거가 실시되면서 31년 만에 부활했다. 1995년에는 시도지사, 시·군·구청장까지 선거로 뽑으면서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가 완성됐다.

이를 기점으로 지자체 권한은 막강해졌다. 단체장은 각종 인허가권과 인사·예산을 주무르며 지방의 ‘제왕적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인구 100만명 이상 기초단체는 특례시로 지정돼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제주도와 강원도는 특별자치도로 격상되는 등 최근 권한은 더 세지고 있다.

문제는 위상이 높아진 지자체들이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앞다퉈 대규모 사업을 유치하지만 정작 흥행에 실패하거나 혈세 낭비로 그치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중앙 정부와 국민이 뒷처리하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방 공항이다. 13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인천공항을 포함한 전국 15개 공항 가운데 인천·제주·김해·김포공항 등 4곳을 제외한 11개 지방공항들은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공항의 적자는 한국공항공사가 제주·김해·김포공항을 운영해 번 돈으로 메우고 있다.

적자 공항 중에는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이 한 몸이 돼 만든 공항이 적지 않다. 양양·무안·예천·울진공항이 대표적이다. 예천공항은 아예 문을 닫았고, 울진공항은 비행훈련원으로 용도를 변경해 공항 명단서도 제외됐다. 2007년 문을 연 전남 무안공항은 매년 220억 원 이상의 운영비가 들어가지만 지난해 매출은 20억원에 불과했다. 통일 대비 거점공항으로 육성하겠다며 강원도와 영동권 정치인이 밀어붙인 양양공항(2002년 개항)도 국제선이 멈추면서 지난해 142억원의 적자를 냈다. 양양공항을 모기지공항으로 삼은 플라이강원은 400억 원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 5월 법원에 회생신청을 했다.

대다수 지방공항이 적자수렁에 빠졌는데도 ‘지자체·지역 정치권발’ 공항 신설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남부국제공항 건설을 공약했고, 충남도는 20년 숙원 사업이라며 서산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감사원이 ‘수요 과다 예측’을 지적해 2008년 건설이 중단됐던 전북 김제공항은 새만금국제공항으로 부활을 노리고 있다.

이들보다 진도가 더 나간 부산 가덕도·대구경북·흑산도·울릉도·제주 제2공항 등까지 합하면 최소 9개 이상의 공항이 더 생길 판이다. 재정이 여의치 않은 지자체들은 공항은 원하면서도 공항 건설에 필요한 활주로 등 주요 사업비는 정부와 공항 공기업이 부담해주길 바라고 있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자체들이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는 일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힘들다. 정부 도움을 받아 유치한 글로벌 이벤트나 대형 SOC(사회간접자본)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형 사업을 추진할 때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무한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사업에 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판을 벌리는데 그치지 않고 경제성 분석·사후 관리에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국민의 편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교수는 “그동안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 등의 요구로 여러 대형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공항의 경우 대부분 지방공항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고 있다”면서 “정말 공항이 필요하다면 지자체가 돈을 대 짓고 운영까지 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정도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만병 통치약으로 여기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카드도 조심해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경상북도의 ‘3대 문화권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의 전형적인 부작용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북도 3대 문화권 사업은 유교(북부권), 가야(동부권), 신라(남서부권) 문화권 등 각 지역의 역사 자원을 관광화한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국책 사업인 ‘30대 선도 프로젝트’ 중 하나로 시작해 2008년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됐고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추진됐다.

이 사업은 경제성 분석과 수요 조사 등 철저한 타당성 조사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하얀코끼리(수익성 없고 쓸모없는 투자를 일컫는 용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도내 22개 시군에서 각종 테마파크, 문화단지, 공원, 산책길 조성 등의 명목으로 43개 사업을 추진했고,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만 2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개장한 안동의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은 지난해 2억2400만원을 운영수입으로 거둬들였지만 운영비로 19억 3800만원이 나갔다. 2020년 개장한 영천 화랑설화마을도 운영비가 수입보다 많아 14억 3700만원이 적자다. 연간 방문객 수도 2021년 7만 2035명에서 지난해 7만 3157명으로 큰 변동이 없다.

전라남도가 영암에 4300억원을 투입해 문을 연 국제자동차경주장(F1 서킷)은 사후 관리 부실이 문제가 된 경우다. 국비 728억원, 행안부 특별교부세 110억원, 전남도비 3447억원을 들여 지은 F1 경기장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간 F1 대회를 개최하기로 약속했지만 2014~2016년 대회를 치르지 못하면서 국내 대회나 동호인, 개발 기술 시험용으로 전락했다. 방문객도 2016년 19만명에서 2019년 13만명, 지난해 11만명으로 매년 줄고 있다. 연간 수입은 30억 원 안팎에 불과해 운영비를 겨우 건지는 수준이다.

최진혁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는 실효성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상호 견제는 물론 사업의 효율성과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특히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사업이 엎어지고 변경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법적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홍구·우성덕·송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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