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용산어린이정원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부근에 있는 용산어린이정원은 ‘공원’이 아니라 ‘정원’이다. 환경오염 기준이 더 엄격한 도시공원법 대신 수목원·정원법이 적용됐다. 일본군에 이어 해방 이후 미군이 주둔하던 부지 243만㎡ 중에서 지난해 58만㎡를 돌려받아 일부를 개방한 것인데, 과거 기름유출 사고 및 쓰레기 소각에 따른 토양오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다.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기준치 36배를 넘고 납은 5배, 비소는 3배 초과한다.
부지에 대한 막대한 정화비용 책임을 둘러싼 한·미 간 외교협의는 생략된 채, 지난 5월4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정원이 일반에 개방됐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건물로 옮긴 윤석열 정부는 취임 1년을 맞아 “국민과의 소통 접점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120년 만에 반환된 용산이라는 상징을 대통령실 이전이라는 치적 홍보용으로 끌어 썼다는 비판이 나왔다. 환경단체들은 어린이가 다수인 이용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될 것을 우려하지만, 정부는 부지에 15㎝ 이상 두께로 흙을 덮거나 콘크리트로 차단해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어린이정원 논란이 환경을 넘어 정치로 번지는 중이다. 이곳의 토양오염 문제를 줄곧 제기해온 김은희 용산시민회의 대표를 비롯한 주민 6명이 온라인 ‘예약 불가’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사실상 출입 금지다. 김 대표는 지난달 22일 정원에서 진행된 윤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도안으로 한 ‘색칠놀이’를 비롯해 대통령 홍보 일색인 ‘특별전시’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비판한 바 있다.
대통령경호처는 12일 “불법적인 행위가 확인된 당사자에 대해 대통령 경호·경비 및 군사시설 보호 등을 고려해 통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색칠놀이’ 도안 공개는 ‘예약 불가’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정원 내 환경오염을 지적한 활동이 문제라면 그에 맞게 대응하면 될 일이다. 특정한 행위나 물품이 아닌 특정인 자체를 출입금지시키는 정원의 규정도 인권침해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어린이들이 뛰놀 데가 너무 없는 것 같아 어린이정원으로 이름 붙였다”는데 이처럼 삭막한 분위기라면 일반 시민들조차 출입이 꺼려질 판이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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